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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하고 산다

by 유광식

올해 서울로 나가는 일이 많다. 문득 인생에서 인천과 서울만 알고 지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역으로 가는 길목에는 신축 아파트 담벼락 길이 있다. 건설에 힘쓰고 있을 시간을 틈타 자란 들풀이 군락을 이루던 장면이 엊그제 같다. 그러던 중에 비가 한 번 왔고 공사 소음이 자신감을 얻어갈 때쯤 풀은 뽑히고 경사면은 마치 이발을 한 것처럼 시원하게 깎였다. 한쪽에 덩그러니 남겨진 식물을 보며 또 당했다며 분통을 터트린다. 이러한 과정이야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것도 신기하지만 미리 쪽지라도 하나 적어 주면 좋겠다. 얼마 후부터 새빨간 땅에 아파트 임플란트 시술처럼 경계석을 박고 쌓는다. 곧 기고만장할 식물이 자라 새 정원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도 당하고 사는 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감춰뒀던 연약함이 찬비로 내리는 걸 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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