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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것 참…

검암동, 2025

by 유광식

처서(處暑)가 지났으니 가라고 한다.

사람들은 언제 이 더위가, 여름이 가냐고들 한다.


뜨거운 바닷물일지언정 몸을 담그며 멋에 취했고

미지근한 바람에도 두 눈 지그시 감고 종아리 훑는 짜릿함을 감추기 마련이었다.


농로를 따라 걷다 각종 여름 산물을 발견한다.

여름의 정수라면 깨를 놓칠 수가 없다.

식용으로는 들깨가 효능감이 높지만, 참깨의 기골이 좀 더 장대하다고나 할까?

토란잎은 더운 나머지 풀이 죽었고

밭에 뿌린 닭똥의 냄새가 적란운(뭉게구름)처럼 여름의 열기를 묘사해 주었다.


가지조차 탱탱함을 접는 오후의 날씨가

기막힌 기회였던지 참깨는 화사한 녹색의 계단을 만든다.

잠시 내 세상 같지만, 송골송골 땀방울 같은 씨방은

이가 없어도 다 잡수실 어르신들의, 도리깨질로 탈탈 털릴 것이다.

한여름의 기분을 전부 도둑질하는 참깨를 그냥 두기 못마땅해

매미들이 그토록 노래를 부르건만, 들키지 않으니

고것 참…, 신통방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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