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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니아니 May 26. 2022

#24 로고스호프에 승선하는 아이들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전세계 60여 개국의 400여 명의 젊은 청년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그리고 중동지역의 수많은 항구들을 돌아다니며 봉사와 선교활동을 하는 배가 있습니다. 선교단체 오엠의 선교선인 로고스호프(Logos Hope)입니다. 이 배는 50만 권의 도서를 보유한 세계 최대 선상서점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로고스호프가 항구에 정착하면 그 지역민들에게 배를 오픈하고 문화와 소식들을 교류합니다. 배 안에는 서점 뿐만 아니라 카페, 레스토랑, 공연장, 숙소, 헬스클럽, 의료시설 등 웬만한 시설들을 갖추고 있어서 작은 마을을 연상하게 합니다.

아이들의 학교 1기 선배중에 이 로고스호프를 타고 2년간 전세계를 항해한 선배가 있습니다. 1기 졸업생 찬민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대학진학을 잠시 미루고 전세계의 사람들과 배위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전세계를 여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처음에 로고스호프에 승선하기로 결심하고 나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언어공부였습니다. 배가 정박하는 곳은 영어와 스페인어를 주로 사용하는 국가들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공부하기 위해  선교회 센터가 있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플로렌스로 갔습니다. 그곳은 완전한 시골 마을이어서 주변에 넓은 들판과 나무들이 무성한 곳이었습니다.

선교회에서 빌려주는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로고스호프로 서적을 공급해주는 일을 도우며 영어공부를 했습니다. 함께 그곳에 간 4명의 한국인들과 다양한 국적의 자원봉사자들도 같이 지냈습니다. 처음에는 식사를 비롯한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고 찾아해야 한다는 사실에 약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차츰 동료들과 함께하는 생활에 적응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전세계로부터 온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플로렌스에서 생활하다보니 그들과의 소통을 위한 언어공부가 더욱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친구들과 서로 다른 문화의 특성을 나누며 서로 소통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 찬민이에게 더 없이 소중한 경험이 되었고 앞으로 2년 동안 로고스호프를 타고 전세계를 누비게 될 만반의 준비도 할 수 있었습니다.

로고스호프에 승선하기 전에는 언어 공부와 단체 활동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했을 뿐만 아니라 배가 정박하는 각 지역의 문화의 특성들에 대해서도 미리 공부했습니다. 승선하기 전 일정 기간 동안은 컨퍼런스와 훈련 프로그램에도 참여했고 배 위에서의 안전 교육을 비롯해 앞으로 해상에서 생활하게 될 크고 작은 어려움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그 시간들을 통해 자신이 선택한 2년간의 선교와 봉사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도 충분히 가질 수 있었습니다.


2주간의 훈련 기간이 끝나고 드디어 실제 항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영어과 스페인어 공부를 열심히 했음에도 처음에는 외국어로 소통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자세히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 답답했던 적도 많았고 육지에서와는 다른 배 위의 환경에 적응하느라 하루하루 바쁘고 정신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훈련 받는 기간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간섭하거나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혼자서 모든 상황을 다루어야 했습니다. 비슷한 듯 다른 전세계의 다양한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생활해가는 동안 찬민이의  생각과 시야는 더욱 넓어졌습니다. 고된 일정으로 힘들고 지치는 날에도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한국에서 기도해주시는 가족들과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는 방법을 스스로 배워나갔습니다.  

보통은 훈련 기간이 마무리 되고 난 후에는 배 위에서 일하게 될 직업에 대한 인터뷰 시간을 거치고 앞으로 일하게 될 직업을 선택하게 됩니다. 찬민이가 처음으로 하게 된 일은 선상 카페에서의 일입니다. 로고스호프 전체의 직업 중에 카페 공동체는 비교적 작은 규모라서 처음에 언어를 배우는 찬민이에게 좋은 일터가 되어주었습니다. 카페에서는 아이스크림이나 커피등을 만드는 법을 배웠고 배 위의 사람들이나 배가 항구에 정착했을때 배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음료를 제공하는 일을 했습니다. 배가 항구에 정착하는 날에는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카페로 들어왔습니다. 어떤 날은 항구를 통해 하루에 천 명이상이 카페를 방문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음료를 만드느라 정신없었고 일을 마치고 저녁시간이 되면 말할 수 없이 피곤했지만 그렇게 정신없이 바쁜 날을 제외하고는 보통 때에는 카페로 찾아오는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고 그들과 친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카페공동체에서 일정 기간 일을 하고 그 다음으로 찬민이가 지원한 직업은 북페어(서점)의 일입니다. 50만 권이라는 장서의 규모 만큼이나 선상 서점에서는 할 일도 많았고 북페어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주로 책정리, 포장 등의 일을 맡아서 했습니다. 이렇게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배 위에서의 하루 일정은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공동체와 함께 예배와 묵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후에는 점심식사를 하는데 점심 메뉴는 주로 식빵, 햄, 치즈, 샐러드로 항상 비슷했습니다. 한국의 음식이 그리웠고 매일 같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점심 시간마다 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가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점심 식사 이후에는 각자의 일자리로 가서 서너 시간 일을 더 했습니다. 오후 5시 이후가 되면 각자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는 가족들에게 편지도 쓰고 책도 읽고 언어 공부도 했습니다. 처음엔 서툴렀던 영어도 계속해서 쓰다보니 금새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전세계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의 온갖 영어 발음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영국, 프랑스, 인도, 독일, 한국, 미국이 각각 특유의 영어발음을 가지고 있고 그 나라 사람들이 하는 발음을 비교해 보는 일도 재미있었습니다. 배가 각 나라의 항구에 정착할 때마다 펼쳐지는 새로운 경험도 놀라운 것들이었습니다.

2년 동안 찬민이는 학교 선생님들과 후배들에게도 지속적으로 편지를 보내주었습니다. 찬민이가 로고스호프 배를 타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기도하고 준비하던 처음부터 마지막 항구 정착지인 남미의 브라질에서 보내준 편지를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 졌습니다. 현지인들과 배 안과 밖에서 나누는 다양한 이벤트들을 통해 그들의 필요를 위해 봉사하고 섬기고 또 현지인들을 통해 새로운 문화와 세상을 배워가는 삶이 정말 멋지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매일 무슨일을 하든 새롭게 펼쳐지는 하루하루가 찬민이게는 늘 마지막처럼 아쉬움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더더욱 한 순간의 짧은 만남과 경험도 소중하게 여겨졌습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2년간의 강렬한 경험은 브라질의 산토스 항구와 북쪽에 위치한 아마존에서 정착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마지막 정착지였던 아마존지역에서는 한달동안 현지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책이나 TV에서만 보던 아마존 원주민들과 수상가옥 보트에서 한달 동안 먹고 자면서 그들의 삶 깊은 곳까지 들어가 서로를 알아가며 삶을 나누었습니다. 현대 문명의 영향이 전혀 미치지 않은 그곳에서는 음식, 잠자리, 화장실, 벌레, 날씨, 언어 등등 모든것이 불편했고 살이 쭉쭉 빠질정도로 힘들었지만 투박하면서도 진솔했던 그들만의 삶에 방식과 진심어린 마음에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찬민이는 귀국후에 2년간의 자신의 특별한 경험과 느낌을 학교 공동체의 후배들에게 나누어주며 선한 영향력이 되어주었습니다.
찬민이가 보내준 2년 동안의 편지를 읽으며 감동하고 눈물로 기도하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고 봉사하는 길 위에서 자신의 소명과 비전을 찾아 가장 아름다운 젊음의 한 때를 남을 위해 헌신한 찬민이의 결단과 삶의 모습이 한없이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요즘 찬민이의 소식이 궁금해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로고스호프 귀국 이후에 다시 모로코로 일년간 선교를 다녀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찬민이에 이어 최근에도 졸업생 한명이 대학입학을 보류하고 먼저 봉사활동을 위해 로고스호프 승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분명 진정으로 가슴 뛰는 삶이 어떤 것인지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이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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