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산골짜기 마을에 생긴 베이커리 이야기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초여름 밤 아이들의 학교가 있는 작은 산골마을은 축제 분위기로 들떠있습니다. 2기 졸업생 S가 마을에 베이커리를 오픈하는 날입니다. 빵집은 커녕 흔한 슈퍼하나 없는 산골 동네에 프랑스 제과 제빵사가 직접 운영하는 베이커리가 생겼습니다. 선배가 개업한 베이커리 개업식날 재학생 후배들의 축하공연이 한창입니다.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도 하고 학교의 오케스트라 연주까지 곁들여집니다.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작은 음악회가 열리는 베이커리 앞마당에 모였습니다. 신선하고 달콤한 빵굽는 냄새가 여름밤 야외 음악회의 선율과 참 잘 어울리는 풍경입니다.
S는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의 외식조리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심화된 실습과정과 외국인 교수들의 원어민 수업으로 유명한 그 대학은 대부분의 입학생들이 특성화 조리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어릴 때부터 요리를 했던 학생들이었습니다. 대안학교를 다니며 다른 친구들처럼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던 S는 대학입학 직후에는 자신이 요리의 프로들 사이에 끼어있는 아마추어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체 학생수가 4백명이 넘는 조리학과에서 유일하게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검정고시 출신이었던 S였지만 대학에서의 생활은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이었습니다.
하루 평균 6시간 가량의 조리 실습에 이어 교양 수업까지 듣느라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정도였습니다. 그때마다 S는 자신의 선택한 길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공부하며 요리를 배웠습니다. 한번은 세계음식과문화 수업 중 각 나라의 식문화를 조사하고 평가하기 위해 나라를 정해야 했습니다. 전 세계의 유명한 요리와 나라를 선택하는 중에 교수님이 “인도를 소개할 사람” 이라고 말했을 때는 아무도 자신있게 손을 드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S는 대안학교를 다니던 9학 시절 8개월 동안 인도 이동수업을 하면서 그 나라의 음식 뿐만 아니라 문화를 직접 접하며 살다 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친구들이 인터넷을 찾아 다른 나라의 식문화를 연구하고 발표할 때 S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인도의 음식 문화를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발표 준비부터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순간까지 마음 속에 설렘과 두근거림이 계속되었습니다. S의 생생한 경험으로 부터 우러나온 인도 문화와 음식에 대한 발표는 특별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발표할 때는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만 보고 있던 친구들이 S가 발표를 시작하자 하나 둘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길거리에서 짜이를 사먹던 추억들과 친구들과 방문했던 유명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음식들 그리고 어학원 선생님의 전통 힌두 혼례식에서 경험한 강한 향신료의 다양한 음식들까지 다채롭고도 흥미로운 인도의 문화와 음식이 S의 발표 내용 안에 가득했습니다.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남들과는 다른 다양한 경험을 했던 것이 자신에게 큰 강점이 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습니다.
S가 다닌 대학의 조리학과에서는 해마다 최고의 팀을 선정해 해외 음식문화를 탐방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해주었습니다. 워낙 인기가 많은 프로젝트여서 경쟁률이 대단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팀 프로젝트 수업의 경험이 많았던 S는 4명의 친구들과 팀을 이루어 지원을 했고 결국 최종 선발팀이 되었습니다. 열흘간 그리스로 떠난 여행에서는 그릭 푸드에 대한 값진 경험과 배움을 얻어올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낯선 곳으로 여행하면서 음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함께 24시간을 붙어 지내다 보니 어쩔수 없는 마찰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수년간의 대안학교 기숙생활과 인도 여행의 경험으로 관계의 훈련을 할 기회들이 많았던 S는 친구들과의 문제들까지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대안학교에서 자연스럽게 배운 자기주도적 학습과 공동체 생활의 경험들이 S의 대학생활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신나는 대학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세계의 요리를 배우고 프랑스 제과 제빵사 자격증까지 딴 S가 모교가 있는 마을에 베이커리를 오픈한 것입니다. S의 베이커리는 단순한 베이커리가 아닌 마을과 학교 공동체에 큰 의미가 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마을에 매점 협동조합이 생기기 이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학교에서 쉽게 간식을 사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따금 부모님들이 보내주시는 전체 간식을 제외하고는 주전부리 음식을 개인적으로 가져오는 일도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의 식사시간 사이에 간식을 먹으면 밥을 제대로 먹지 않는 경우들이 많았기 때문에 학부모 교사 회의에서 전체적으로 개인 간식을 금지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매점이 생겨서 누구나 자유롭게 매점을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초창기 아이들은 간식에 대한 갈망이 언제나 아이들 마음 속에 가득했습니다. 배고픔은 심리적인 것이란 걸 그때의 아이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밥을 충분히 많이 먹고도 아이들은 늘 달달한 간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여름이면 아침 일찍 학교 앞 낮은 동산에 올라가 산딸기를 따먹는 아이들이 있는가하면 선생님댁 마당에 열린 보리수 열매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기도 했습니다. 집에서는 시큰둥하면서 먹지도 않던 음식이 학교에서는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둘째 아이 때는 고등학교에 매점이 생겨서 먹고 싶으면 사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간식에 대한 그리움이나 열망이 그렇게 간절하지는 않았지만 첫째 아이때만 해도 잊지 못할 추억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친구 중에는 간식을 가져오는 것이 금지 인데도 항상 주말마다 학교로 돌아갈 때 가방 깊숙히 초콜렛이며 젤리며 사탕 등을 넣고 가서 아이들에게 몰래 나누어 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선생님한테 간식을 들키는 날에는 바로 압수 당했기 때문에 늘 숨길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매번 숨겨도 결국에는 들켜서 간식을 먹지 못하게 되자 한번은 마을의 정자 아래 땅속에 간식을 묻어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가장 친한 친구 공범과 함께 정자에 가서 숨겨놓았던 젤리를 찾아 입에 넣고 몰래 먹었던 이야기를 듣는데 한참을 웃었습니다. 얼마나 간식이 간절했으면 그렇게 까지 했을까 싶다가도 아이들의 기발한 생각에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간식을 갈망하며 아카시아 꽃잎을 따먹고 산딸기에 감동하던 선배가 이제 후배들이 있는 학교와 마을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꿈과 비전을 위해 오픈한 베이커리가 특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시에 S는 자기처럼 대안학교를 졸업한 선배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후배들이 보면서 지금 현재에 자신을 가두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중에 열린 하나의 문을 통과한 자신의 모습이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길 바란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좋은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귀한 공동체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이커리 개업 축하파티가 열리던 날 몇몇 후배들의 손놀림은 바쁘기만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밀려드는 주문에 몸은 분주했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뿌듯했습니다. 마을 공동체와 학교 공동체의 아낌없는 격려와 축하뿐만 아니라 학교의 교육연구소와 금산군 신활력사업의 지원을 받고 있는 베이커리는 더욱 든든하게 첫 테이프를 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