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갭이어 언제가 가장 좋을까?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갭이어(gap year)는 학생들이 고등학교나 대학에 들어가기 전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흥미와 적성을 찾는 기간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제도는 1960년대 영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고 정착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학생들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가기 전 1년동안 갭이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이 기간 동안은 시험의 부담에서 벗어나 여행, 연극, 영화제작, 요리, 디자인, 스포츠, 심리학, 건축학 등 자신이 배우고 싶은 분야를 선택해서 자유롭게 배울 수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해외봉사나, 인턴쉽, 워킹홀리데이, 그리고 창업 등의 활동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구체적으로 탐색해 보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이러한 제도가 영국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후 아일랜드에서는 ‘전환학년제’라는 이름으로 도입하였고 유럽 국가들에서도 점차 이와 비슷한 갭이어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갭이어 제도가 유럽에서의 취지와는 약간 다르게 학생들의 대학 중도포기에 대비한 대책으로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일본 역시도 2011년에 JGAP 이라는 이름으로 갭이어 제도를 도입해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에 한국갭이어재단이 설립되어 학생들에게 해외봉사, 여행, 어학학습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의 대학생들도 이러한 갭이어의 형태를 띤 휴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빨리 졸업해서 취직을 하기 보다는 대학교 2-3학년 즈음에 일년 정도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자기개발이나 스팩을 쌓고 있는 대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해 본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대학생들이 막상 졸업한 이후에 마땅한 진로나 취직 자리를 찾기 어려운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우려 담긴 목소리도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에 1년을 필수교과로만 이루어진 학업을 중단하고 아이들 스스로 진로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허용된 시간입니다. 우리나라의 중학교에서 현재 시행중인 ‘자유학기제’나 ‘자유학년제’ 보다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화된 형태의 갭이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에 아이들은 책이나 연필을 잠시 내려놓고 실습 위주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1년간 시험의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나 고민을 해볼 수 있도록 그룹활동이나 역할발표 그리고 팀웍과 또래교사 등 상호간의 교류등을 적극적으로 하게 됩니다. 전환학년제를 보낸 이후의 아이들은 더 어려운 공부를 할 준비가 되었다고 스스로 느끼게 되고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좋아진다고 합니다. 영국의 전환학년제에 대한 영상의 내용을 보면서 대안학교의 교육환경 내용과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대안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일 년만 갭이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3년 동안 다양한 학습을 하면서 주도적으로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찾아가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대학에서 도시설계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한 졸업생은 고등학교에서 3년 동안 ‘월든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학교앞 나무 위에 실제로 집을 짓는 대규모의 프로젝트 입니다. 지구온난화와 환경문제를 생각하는 아이들, 인권과 NGO 활동을 계획하는 아이들, 기업경영과 팀웍을 훈련하는 아이들, IT기술을 농업에 이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일에 관심을 가진 아이들 등등 다양한 경험을 바탕을 바탕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이후에는 대학에서 자신들의 배움을 확장시켜가는 학생들이 적지 않습니다. 또한 심리상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마을의 어르신들을 일년 가까이 만나고 대화하면서 그분들의 삶을 자서전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인 ‘이타적 자서전 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국제개발에 뜻이 있는 아이들, 음악이나 영화, 미술과 같은 예술 분야를 통해 자신의 꿈을 펼쳐 가기를 원하는 아이들 역시 다양한 분야의 관심사를 프로젝트나 동아리 활동을 통해 마음껏 경험해보고 직접 도전해 볼 수 있는 환경입니다.
이 외에도 학교에서 기획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 등을 통해 아이들은 책속에 들어있는 지식의 형태로가 아닌 실습을 통해 실제적인 체험을 하면서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방학에는 한달동안 인턴쉽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관심있는 분야의 기업체나 단체와 미리 협약을 하고 인턴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아이들은 실제로 매일 아침 회사에 출근하고 실제 기업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매일 하는 일들을 경험해볼 수 있습니다. 유아교육을 전공하려고 마음먹은 한 학생은 방학중에 유치원에서 인턴쉽을 했고, 국제개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아이는 국내 기업과 캄보디아의 기업을 연계한 회사를 다니며 인턴쉽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인턴쉽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 그리고 동아리 활동에는 교사들의 준비와 지도가 함께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바로 대학으로 진학을 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지만 1년간 학교의 교육연구소에서 주최하는 ‘갭이어 과정’에 참가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올해는 총 6명의 졸업생들이 학교가 제공하는 갭이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올해 갭이어 참여 학생 대부분이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스페인 몬드라곤대학과 미네르바대학의 합격생들은 기업경영과 팀프로젝트에 관련한 갭이어 과정에 참여하고 있고, 학교와 지역 공동체가 후원하는 사업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지역사회의 발전과 홍보를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재학생인 후배들에게도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갭이어를 어느 시기에 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생각이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중학교 시기처럼 비교적 어린 시기에 하는 갭이어는 적성과 관심사를 찾기위한 다양한 탐색의 과정에 가깝다면 고등학교 시기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찹여하는 갭이어는 자신의 전공분야와 좀더 밀접하게 관련지어 전문적이고 실제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꼭 어느 시기를 정해서 갭이를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이나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직접 그와 관련한 직업 현장을 경험해 볼 수 있는 환경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다방면으로 자신의 적성과 진로의 방향에 맞는 탐색과 경험을 지속적으로 해온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조바심보다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자신의 분야에서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반드시 적성과 직업을 탐색하기 위한 갭이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여행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는 시간도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설혜심 교수의 <그랜드 투어>라는 책은 영국 귀족들의 엘리트 교육의 최종 단계인 여행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귀족가문의 자녀들이 사회나 정계에 진출하기 전 비교적 어린 나이에 평균 2~3년 동안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며 견문과 교양을 쌓는 기나긴 이 여행은 일종의 ‘교육 여행’이었습니다. 엄청난 경비와 화려한 준비 그리고 수많은 교사들와 수행원들까지 대동한 이 특별한 여행은 점차 영국 사회 전체에 자녀 교육 트랜드처럼 퍼져나갔고 현재의 서양사회의 갭이어나 우리나라의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는 어학연수등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또한 18세기 무렵에는 전 유럽 사회에 만연한 이 그랜드 투어는 유럽 최고의 지성과 예술가들을 탄생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녀들에게 넓은 세상을 통해 지식과 경험을 쌓게하고 세련된 매너와 국제감각까지 겸비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때로는 과도한 소비와 부작용을 낳았다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갭이어와 여행을 통해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와 교육의 효과는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지금 점점 더 많은 부모들의 공감대와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갭이어 시사상식사전
네이버 동영상 백과 아일랜드 전환 학년제
설혜심 <그랜드 투어>
평생학습타임즈 / 김경현 기자 lltimes@lltimes.kr 세계의 갭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