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별무리에서 버클리까지
Part 1 대안학교 8년차 엄마의 리얼 체험기
Part 1 대안학교 8년차 엄마의 리얼 체험기
#13 별무리에서 버클리까지
큰아이의 쿼터 발표회가 있는 날이었다. 학교에 가서 아이의 한 쿼터 평가 발표를 듣고 학교 현관을 나오는데 마침 교감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나오고 계셨다.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문득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머님, 이번 주에 휴먼라이브러리에 강사로 오신 백하슬기 교수님이 강의 하실 때 예린이가 함께 즉흥으로 연주 하는 모습을 보고 칭찬을 많이 하셨어요. 정말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 같다고 하시던데 예린이 말로는 음악공부를 하고 싶지만 어머님이 반대하셔서 못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순간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갑자기 멍한 느낌이 들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아이의 진로에 대해서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에게 행복한 꿈을 펼치라고 말은 했지만 막상 아이의 꿈이 나의 기준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됐을 때 전적으로 응원하고 격려할 수 없었던 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아이는 기타를 사달라고 졸랐었고 중학교 입학 때 선물로 받은 기타를 밤낮없이 품에 앉고 살았었다. 중학교 때부터 전국의 기타대회에 직접 연주한 음원을 보내고 본선에 진출하면 혼자서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런 아이의 음악에 대한 열정들이 하나하나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내가 왜 아이의 앞길을 막고 서 있는거지? 무엇을 위해서?’
교감선생님과의 짧은 대화가 있었던 그 주 주말에 아이와 집에서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대화하는 중에 내 기분이 허탈하기도 하고 약간 화가 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정확하게 내 기분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날 아마도 아이를 향한 나의 욕심을 내려놓는 고통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아이에 대한 신뢰가 내 안에 생겨났다. 내가 전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한다면 분명히 잘 해낼 것 같은 아이의 중심이 느껴졌다.
그때부터 아이는 학교의 모든 생활과 음반프로젝트에 더욱 열정을 다했다. 엄마가 갑자기 자신의 가장 적극적인 지지자와 응원자가 되자 아이는 날개를 단 듯 날아올랐다. “정말 교감선생님은 참 고마우신 분이야. 엄마한테 뭐라고 하셨길래 이렇게 엄마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바뀐 거지?” 아이는 웃으면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열심히 할 자신이 있다고도 말했다. 어른들의 지지와 신뢰가 아이를 성장하게 한다는 진리가 가슴 깊이 새겨졌고 나의 욕심을 내려놓자 아이가 비로소 활짝 피어오른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음악을 전공하기로 결심한 그 때부터 아이는 학교의 돔하우스에서 하루도 악기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필수 교과과정인 인문학의 이해와 글쓰기 수업에도 열심히 참여했고, 친구들과 동아리 활동도 즐겁게 했다. 자신이 처음에 별무리에 와서 선배들로부터 기타를 배웠던 것처럼 중학교 후배들에게 기타레슨을 해주기도 했다.
매 쿼터마다 학업계획서를 세울 때에는 필수교과와 전공에 관련한 과목을 시간표 안에 채워 넣었다. 유명한 보컬인 홍이삭 군에게 멘토링을 받기도 했고, 음반 프로듀싱을 위해 주말마다 남서울 대학교의 녹음실에 친구들과 함께 가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며 꿈을 위해 준비하는 아이의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재즈기타를 연주하며 영화음악 작곡을 전공하고 싶어 했던 아이는 버클리음대에서 공부하고 싶어했다. 합격이 될지도 미지수 였지만 합격된다하더라도 높은 학비가 문제였다. 쉽사리 아이에게 준비해보라는 말이 잘 안 나왔다. 아이의 이러한 진로를 놓고 계속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은 마음가운데 평안함을 주셨다. ‘그래, 아버지의 뜻이라면 길을 열어주시겠지’ 우리는 하나님의 빽을 믿고 일단 도전해 보기로 했다. 어떤 길로 인도하시든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선하시다는 믿음을 잃지 않으며 예린이는 별무리고등학교를 졸업한 첫해에 SJA음악학원을 등록하고 재수를 결심했다. 본격적으로 버클리음대 입시 준비가 시작되었다.
버클리음대 입시는 탁월한 연주실력 뿐만 아니라 TOEFL이나 IELTS와 같은 공인영어 성적이 필요했다. 아이는 악기 연습에 최대한 많은 시간을 확보하면서 틈틈이 영어공부를 했다. 방학이 되면 1평도 안되는 컨테이너 연습실에 들어가서 하루 종일 연습을 했다. 이때부터는 마냥 즐거운 시간만은 아니었다. 말그대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새벽에 밥을 먹이고 연습실 앞에 내려주면 아이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하루 종일 의자 하나 들어가는 공간에서 연습만 해야 하는 시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지루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하루도 연습을 게을지 하지 않았다.
음대 입시를 위해 재수를 시작하기로 했을 때 가장 큰문제가 거처였다. 잠자고 생활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처음에는 세종에서 기차로 통학을 했다. 그렇게 며칠간 기차통학을 하고 있는데, 별무리 2기 동기인 시온이네서 연락이 왔다. 친구가 멀리서 통학한다는 말을 듣고 시온이가 부모님께 사정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시온이 엄마는 당분간이라도 예린이가 시온이 집에서 지내면서 다니면 어떻겠냐는 말씀을 하셨다. 처음에는 그런 신세를 지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 거절을 했지만 두 번 세 번 연락을 해오셨다. 시온이 할머니도 아이 고생시키지 말고 얼른 오게 하라고 하셨다고까지 했다.
정말 말할 수 없이 고맙고 감사했다. 내가 너무나 큰 은혜를 입어 감사하다는 말을 하자 시온이 엄마는 예린이도 나중에 커서 그렇게 누군가에게 은혜를 나누는 사람이 될거라고 말씀해주셨다. 마음에서 눈물이 흘렀다. 시온이네 집에서 그렇게 신세를 지면서 3개월간 서울 생활에 적응한 아이는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가득 품고 학원 근처의 고시텔로 거처를 옮길 수 있었다.
일 년이 지나고 다시 11월 입시가 다가오자 다른 수험생들과 마찬가지로 아이 역시 마음속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아이에게 입시에 대한 부담을 전혀 주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오디션 일정이 다가올수록 아이의 마음 속에 느껴지는 불안함이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로 도움을 구했다. 기도밖에는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아이를 합격하게 해달라는 기도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다만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도를 했다. “하나님, 예린이의 앞길에 함께 계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언제나 선하십니다. 어떤 길로 인도하시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걱정하지 않습니다. 예린이에게도 동일한 믿음을 허락해 주세요”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드디어 오디션 당일 아침이 되었다. 아이는 일렉기타 부문으로 지원을 했고 오디션 현장에서 버클리음대의 교수들 앞에서 공연하듯 연주를 했다. 열심히 준비한 입시곡 연주를 함께 해줄 밴드를 미리 구성했고, 아침 8시 첫 시간에 오디션을 치렀다. 아이가 오디션 시험장에 들어가자 버클리의 교수들이 지원자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이런 저런 농담과 대화를 건냈다고 한다. 토종 한국인 입장에서는 아이스 브레이킹 농담 조차도 긴장하면서 들어야 웃음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다. 무사히 연주를 마치고 시창, 청음, 즉흥 등 몇 가지의 테스트를 더 거친 후에 오디션이 마무리 되었다.
11월에 오디션을 마치고 1월 말경 합격자 발표까지 또 한 번의 기다림이 있었다. 그때는 유학준비를 해야 하는 건지 다시 재수 준비를 해야 하는 건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버클리에서는 공식 합격자 발표 이전에 크리스마스 깜짝 선물로 전 세계에서 지원자들 중 20% 정도에게 미리 합격자 발표를 해주는 제도가 있다. 2019년 겨울 성탄시즌에 별무리학교에서는 연말 축제가 있었다. 아이도 동기들과 함께 별무리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동창회를 하고 있는 날이었는데 갑자기 새벽한시가 넘어 집으로 전화가 왔다.
“엄마, 나 버클리 합격한 것 같아” 예린이의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했다.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버클리의 크리스마스 깜짝 선물에 우리 아이가 당첨된 것이다. 기쁨을 나눈 전화를 끊고 하나님께 무릎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아이의 길을 열어주셨고 인도하고 계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부터 더욱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분의 채우심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갈 생각에 비장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장학금 발표가 났다. 일년에 4만 불이 넘는 학비 중에서 아이가 받은 장학금은 매년 1만 5천불이었다. 합격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장학금 소식을 들으니 그때부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은혜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을 묵상하기 시작했다.
합격자 발표와 장학금 발표가 난 후에 많은 분들이 진심어린 축하와 축복을 해주셨다. 이제부터가 정말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구체적인 것을 알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몇 주 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마음속에 지난 7년간 별무리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블로그와 인스타에 별무리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큰아이와 둘째 아이 모두 엄마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정말 기뻐하고 좋아했다. 아이들은 한편의 글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나의 글을 읽어보고 지난 7년간의 기억을 함께 추억하며 즐거워했다. 인스타에 글 올리는 것이 서툰 엄마를 위해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기도 하고 한글문서에 저장하면 날아갈 수도 있으니 구글 문서로 옮기라고도 했다. 아이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격려가 나로 하여금 조금씩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나의 별무리 이야기 연재는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허락하신 또 하나의 기쁨의 선물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