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모두가 함께 걷는 길, 별무리 국토순례
Part 1 대안학교 8년차 엄마의 리얼 체험기
Part 1 대안학교 8년차 엄마의 리얼 체험기
#14 모두가 함께 걷는 길 - 별무리 국토순례
해마다 가을이 되면 별무리 아이들은 국토순례의 길에 오른다. 큰 아이와 둘째 아이도 일 년에 한번씩 50km 가까운 거리를 친구들과 함께 걸었다. 2박 3일 동안 하루에 6시간씩 내내 걷기만 하다보면 처음엔 종알대던 아이들의 말수는 점점 줄어들고 다리는 퉁퉁 부어오른다. 한 달 여 전부터 미리 걷기 연습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먼 거리를 배낭을 메고 줄곧 걷는 다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니다.
평발이 심한 큰 아이는 조금만 걸어도 무릎이 아프다는 소리를 자주 해서 처음 국토순례를 하던 해에 아이가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매일 밴드에 올라오는 사진 속 아이얼굴은 의외로 밝고 활기차 보였다. 마지막 날 터미널에 아이를 픽업하러 갔을 때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땀범벅이 되어 나를 보고 웃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마치 세상을 다 얻은 개선장군 같은 표정이었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완주증을 건내 주었다. 작은 카드에 “김예린 47km” 라고 적혀있었다. 집에 와서 발을 보니 엄지 발가락 발톱이 까맣게 멍이 들어 있었다. 신발이 잘 안 맞았는지 평발 구조 때문이었는지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종아리는 손가락도 안 들어갈 정도도 딱딱해져 있었다.
첫 해의 국토순례는 아이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자리 잡았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이었고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걸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해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또 한 명의 친구가 있다. 별무리 2기 영채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으로 들어가는 혈관에 이상이 생겨서 아기 때부터 심장 수술을 여러 번 한 친구였다. 내가 별무리마을에 갈 때 마다 멀리서부터 다가와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라고 밝게 인사하는 영채로 인해 내 마음까지 밝아지곤 했었다.
그 해 영채도 난생 처음 도전하는 국토순례의 길에 함께 올랐다. 선생님들은 영채가 친구들의 행렬 뒤로 따라가는 자동차로도 갈 수 있다고 말했지만 영채는 할 수 있는 데까지 걸어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영채 부모님도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로 하셨다. 담임 선생님과 부담임 선생님은 아이들과 보조를 맞추어 앞에서 걸으셨고, 교장선생님은 영채의 걸음 속도에 맞추어 뒤에서 천천히 걸어가셨다. 모든 친구들과 부모님들이 영채를 함께 응원했고 영채도 결국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첫해에 아이들을 국토순례에 내보내고 조바심을 내던 내 마음은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한결 여유로워 졌다. 아이들도 걷다가 길바닥에 드러누울 만큼 힘든 2박 3일의 여정이 지나고 나면 웬일인지 국토순례가 참 재미있었다고 말하곤 했다. 아픈 발과 뻐근한 다리를 이끌고 결국 완주해 냈다는 성취감과 그로 인해 얻어진 자신감,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걷던 시간들 속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 특별한 기쁨을 주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선생님들이 실시간으로 밴드에 올려주시는 사진 속 아이들의 모습은 하늘과 들풀을 배경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사진기 앞에서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미소 짓는 얼굴들과 형광색 바람막이 조끼에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들도 하나같이 감동어린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리 아이들은 해마다 친구들과 함께 걸었던 길 위의 가을 하늘과 구름과 들꽃의 향기를 평생 동안 잊지 못 할 것이다. 살면서 인생의 많은 질문들이 생길 때마다 어쩌면 힘들게 한 발 한 발 내딛던 그 길 위의 기억 속에서 대답들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