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우리는 ‘휘게’라는 단어를 쉽게 접하고 듣게 되었습니다. ‘휘게’의 정확한 뜻은 ‘편안하고 기분 좋은 상태’라고 해요. 노르웨이어의 ‘웰빙’을 뜻하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말도 있고, 영어 단어 ‘hug’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단란하게 모여서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하는 것, 그리고 그런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소박하지만 삶의 여유를 즐기는 라이프 스타일을 ‘휘게’ 또는 ‘휘겔리 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높은 행복지수를 자랑하는 덴마크 인들의 행복비결이 바로 이런 휘겔리한 삶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휘게’는 덴마크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의 문화적 정체성이기도 하지요.
2016년에 덴마크의 행복연구소에서 <휘게 라이프, 편안하게 함께 따뜻하게 A little book of Hygge> 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어요. 이 책이 영국에서 출간되고 영국의 BBC 언론이 ‘휘게’를 소개하면서 그 열풍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고 해요.
우리나라에도 그 즈음 ‘휘게’라는 생소한 단어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관련된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던 적이 있어요. 저 역시도 호기심 때문에 ‘휘게’와 관련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책의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따뜻한 주황색 계열 조명이 곁들여진 사진이 있었어요. 벽난로가 있는 배경에서 사람들이 어깨나 무릎에 담요를 두르고 있고, 손에는 따뜻한 커피나 코코아가 들려 있는 사진들이에요. 눈 내리는 창가 테이블 위에는 양초나 인형이 있고, 간혹 두터운 외투와 모자를 쓰고 산장에서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를 하는 장면도 어김없이 눈에 띄었어요.
책장을 넘기면서 사진만 보더라도 따뜻함, 포근함, 편안함 등이 느껴지고 책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대번에 알아챌 수 있는 그런 책이었어요. 요점은 덴마크인들은 행복을 중요시하는 ‘휘게’적 삶을 살아가고 그것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내용이에요.
그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단어가 생겼어요. ‘소확행’이라는 단어이지요. ‘소소하지만 확실히 실현 가능한 행복’이라는 의미의 단어 ‘소확행’은 2018년 BBC에서 ‘오늘의 단어’로 선정하기도 했어요. 2018년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트랜드로 이미 자리를 잡아가는 ‘소확행’의 개념도 어쩌면 ‘휘게’를 우리의 정서에 보다 걸맞게 재해석 한 단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비슷한 의미의 단어들이 있어요. ‘워라벨’이라든지 ‘욜로YOLO’라는 단어들을 쉽게 들어보셨을 거에요. ‘워라벨’은 ‘Work-Life Balance’를 줄인말이고, 욜로는 You Only Live Once의 두문자 입니다. 쉽게 말해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라는 것과, ‘단지 한번 뿐인 인생을 이 순간 가장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는 단어들이에요.
저도 처음 이런 단어들을 접했을 때, 덴마크인들의 행복한 삶과 "휘게" "휘겔리" 이런 용어 자체가 주는 느낌에 매료되었어요. 집안 분위기를 좀 더 휘겔리하게 바꿔보기도 하고 이제부터 나도 ‘휘게’스럽게 살아야겠다고 생각도 했어요. 저만 그런 건 아니었던 모양인지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 속에 이런 단어들이 생겨나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도 변해가고 있는 것을 보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 적지 않은 갈망을 가져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자주 이런 분위기와 마주할 때마다 한편으로는 염려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나머지 치열하게 자신의 인생에 모든 열정을 쏟아 부어야 하는 삶을 혹여나 덜 가치롭게 여기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나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등 최근 서점가의 책 제목들 에서도 그런 단면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삶의 진정한 ‘휘게’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휘게’란 나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삶, 오늘 하루를 열정을 다해 후회 없이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집안의 분위기를 바꾸고 담요와 코코아를 준비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내면의 가치를 따라 오늘도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고 어제보다 더 나은 나로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 그 안에 진정한 ‘휘게’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