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무튼 시리즈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아무튼, 하루키> 라는 책 때문이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이보다 덕스러울 수 없는 책 제목에 이끌려 고민없이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에세이 였어요.
그 이후로도 <아무튼, 메모> <아무튼, 스웨터> 등 작고 깜찍한 외모의 책 속에서 찐덕후들을 만나는 일들이 그렇게 신나고 재밌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소개할 아무튼의 주인공은 바로 ‘양말’ 입니다.
구달의 에세이 <아무튼, 양말>을 읽다보면 ‘이 정도는 되어야 양말 덕후라고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흔한 말로 “책 한 권은 쓰겠다.”라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겠지만 ‘양말’ 하나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살면서 한 곳에 유독 시선이 고정되는 때가 있습니다.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물건이 어느 날 부터 갑자기 인생의 주요 무대로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마침내 감고 있던 눈을 뜬 것과 같은 희열을 느낍니다.
어린 시절에 한동안 우표 수집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초록색 표지의 우표 수집책에 하나 둘씩 우표가 채워질 때마다 뿌듯하게 차오르던 만족감 때문에 어딜가나 우표 얘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우체국에 가면 매년 새로운 디자인의 우표를 살 수 있었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우체국 직인이 찍히고 봉투에서 고이고이 뜯어낸 우표였습니다.
어쩌다 외국에서 날아온 편지봉투에서 뜯어낸 이국적인 우표 한 장을 수집한 날에는 세상에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우표를 다 수집하고 싶다는 야무진 꿈을 꾸며 매일 밤 잠자리에 들던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니 그 때 느꼈던 행복감도 함께 떠오릅니다.
고가의 미술품이나 사진기 렌즈를 모으는 프로 수집러들로부터 연필이나 엽서를 모으는 사람, 티스푼을 모으는 사람, 시계를 모으는 사람, 잡지를 모으는 사람, 심지어 택시를 타는 경험을 소중하게 하나씩 모으는 사람과, 명문장을 수집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자신만의 인생 스토리 안에 빼놓을 수 없는 수집의 대상이 있습니다.
양말 이야기를 빙자해 인생사의 희로애락을 털어놓는 덕후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흥미진진합니다. 문학 작품 속 주인공의 양말을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치기도 하고, 셀럽들의 양말 예찬을 공감하는 순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찐팬이 되어버리는 구달씨의 양말 사랑이야기는 늦은 밤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읽다보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것 같습니다.
“인생이란 건 그래야 하지 않겠어요?” 자신이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을 사랑하며 사는 것, 그게 인생이라고 오늘도 구달씨는 저에게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