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가 발표되었던 1947년은 2차 세계 대전이 막을 내린 직후입니다. 이 작품이 7년 동안 쓰여졌고 실제로 독일의 나치당에 저항했던 지하운동가 카뮈가 전쟁 중에 집필한 소설입니다.
이 소설의 무대는 프랑스의 한 평범한 도시 ‘오랑’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쥐들이 거리에 나와 기괴한 모습으로 죽어갑니다. 곧이어 도시 전체는 폐쇄되고 별안간 도시에 갇혀 버린 시민들은 집단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쥐들이 사라진 이 도시에서는 연이어 사람들이 비슷한 증상으로 죽어나가기 시작합니다.
무서운 전염병이 거대한 휘파람 소리를 내며 도시의 하늘에 소용돌이 치는 가운데 이 소설의 서술자 이자 의사인 리유와, 파늘루 신부, 랑베르, 타루, 그랑, 코타르와 같은 등장 인물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의 재앙에 대응하면서 소설 전반의 스토리를 이끌어 갑니다.
도시로의 모든 교통이 통제되고 물품 조달이 제한된 것은 사랑하는 가족들 간의 생이별과 연락 두절 상황에 비하면 차라리 견딜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인간의 목숨을 마치 파리의 목숨처럼 앗아가는 전염병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무력함과 극한의 고통은 오랑의 시민들에게서 기다림과 희망이라는 단어의 의미 마저도 앗아가버립니다.
소설의 여러 인물들 중에서도 특히 주목하고 싶은 두 인물이 있습니다. 랑베르와 코타르 입니다. 랑베르는 도시가 폐쇠되기 직전 취재차 오랑을 잠시 방문한 기자 입니다. 그는 이 도시의 재앙이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며 자신은 오랑의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도시를 빠져나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자신의 고장으로 돌아가려는 랑베르의 시도는 번번히 실패하고 맙니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오랑을 탈출하는 것 뿐입니다. 막대한 돈을 들여서라도 보초병을 매수할 계획을 세우며 오로지 도시 탈출의 목적에만 몰두하던 그가 불현듯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의사인 리유를 도와 환자들과 격리된 가족들을 돌보기 시작합니다.
또 한명의 주목할 만한 인물은 코타르입니다. 그는 소설이 묘사하는 가장 부정적인 인물입니다. 페스트가 도시에 창궐하기 직전 자살 기도를 할 정도로 불행했던 코타르는 도시에 닥친 불행으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불행해지자 오히려 살맛이 납니다.
이토록 하향 평준화된 사람들의 심리 속에서 그가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경찰의 눈을 피해 도망다니는 범죄자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에서는 구체적으로 그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밝히고 있지 않지만 서술자가 코타르를 묘사한 내용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코타르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죄악은 어린아이들 그리고 인간들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옳다고 긍정했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카뮈가 독일군에게 점령된 프랑스에서 적과 협력한 사람들을 코타르라는 인물을 통해 묘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코타르와 랑베르라는 두 인물만을 비교해 놓고 볼때 오로지 도시를 벗어나 자신의 행복만을 갈구하던 랑베르는 오히려 모든 인간이 평생을 추구해 마지않는 행복과 사랑을 위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21세기 팬데믹의 시대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가 묘사하는 시대상은 물론 많은 부분 차이가 있겠지만 이 시대에 만연한 개인적 사회적 고통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절대 놓쳐서는 안될 그리고 여전히 완수해 내야할 사명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