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2년 유럽인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관계에 있어 가장 극적인 사건이 펼쳐졌습니다. 마치 우리의 성웅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를 가지고 일본 해군 133척의 배를 전멸시켰던 사건과도 비견할 만큼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스페인의 ‘피사로’는 오합지졸인 군사들 168명을 데리고 페루의 고대도시 잉카제국에 들어갔습니다. 자국과의 연락이 두절되고 지원병도 조달할 수 없는 그곳에서 그들의 목숨은 독안에 든 쥐나 다름없었습니다.
잉카제국의 중심에는 그들이 태양신으로 숭배하는 존재인 ‘아타우알파’라는 절대 권위자가 존재했습니다. 그를 둘러싼 8만 대군의 행렬을 보는 것 만으로도 ‘피사로’와 백 여 명의 그의 군사들은 사지가 떨려 제대로 서 있을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순간 갑작스러운 반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스페인의 ‘피사로’가 잉카족의 태양신 ‘아타우알파’를 순식간에 생포하고 만 것입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위와 같은 흥미로운 스토리로 막을 엽니다. 선사시대 이후로 인류가 만든 무기와 금속, 그리고 병균이 어떻게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꾸게 되었는지에 관한 가설을 검증해 가는 과정을 서술하면서 여러가지 고고학적 증거들과 역사적 사건들 그리고 저자 본인의 상상력을 더한 인류 문명사의 내러티브 안으로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아타우알파’의 생포 사건은 유럽인이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를 정복한 전형적인 예시입니다. 콜럼버스 시대에 이미 유라시아는 신대륙 원주민들에 비해 농업 생산량, 병원균에 대한 면역력, 그리고 정치 조직이나 문자의 발전 등에 있어 월등한 우위를 차지 하고 있었고 이러한 환경적 요인에서 기인한 여러 차이들이 유라시아와 남북아메리카의 역사적 궤적을 바꿔놓은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요약하면, 저자는 인류 역사의 발전이 각 대륙에서 다른 속도 진행되어 온 이유를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환경의 차이로 결론 짓습니다. 저자는 이 책 속에서 독자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서술 방법을 즐겨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독자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유발시키며 생각하면서 책을 읽도록 의도한 것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겨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인류 역사에 대한 흥미롭고 새로운 관점도 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책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인지 몇가지 의구심도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최근까지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계율 80%에 육박해왔던 EBS 영어지문 교재의 출처가 상당부분 이 책 속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았습니다. 1997년에 출간된 저서의 내용이 게다가 일정 부분 저자 개인의 상상력에서 비롯한 가설들 조차 우리나라 어린 아이들이 열심히 외우며 공부하는 교재의 내용으로 아직까지 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의아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 학교교육은 중립이고 팩트일까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교육에 대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질문들이 계속이어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