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진 ‘편견’은 게으른 고정 관념이라는 오명을 떨쳐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뇌의 입장에서 보면 신속한 결론을 내리고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뇌는 판단을 유보하기 보다는 즉각적 결론을 내리는 쪽을 선호하게 되었고 이것은 곧 우리의 편견으로 고착화 되기 쉽습니다.
물론 ‘편견’을 합리화 하고 옹호하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신속한 판단을 강요하는 뇌에 맞서서 최대한 오래 판단을 보류하고 편견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책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떠난 여행기 입니다. 한마디로 가짜 여행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신선한 여행기는 당대 학자들의 과잉확신 편향을 뒤흔드는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유토피아’는 허구의 장소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서술자의 의견에 대해 어떤 결론에 도달해야한다는 압박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유토피아는 정말 이상 사회인가?’라는 질문이 당시 장미전쟁과 백년전쟁으로 피폐해진 영국 시민들의 생각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문학적 이상 사회에 대한 그의 묘사는 절대 왕정과 군주 중심의 통치체제에서 벗어나 자유와 관용의 국가를 이룩하는 것에 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지만, 사유 재산 제도를 완전히 부정하고 철저한 질서와 통제 속에 있는 ‘유토피아’가 오히려 전체주의를 표방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팽배했습니다.
여러 상반된 견해 가운데 어떤 주장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독자들은 판단을 유보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 가짜 여행기를 읽은 독자들은 하루나 일주일 심지어 몇 년 동안이라도 유토피아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보류할 수 있습니다.
뇌과학 분야에서는 판단의 보류가 인간의 정신적 웰빙을 개선해 준다는 연구결과를 밝혀냈습니다. 즉각적인 판단은 뉴런을 흥분시켜 감정적 우월감에 빠지게 하지만 장기적으는 사람들을 불안에 빠뜨리고 호기심과 행복감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반면 최대한 오래 판단을 늦추고 얻게 된 결론은 편견의 늪에서 벗어나 정확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에 뇌의 행복지수가 그만큼 상승하게 됩니다. 여러 문학작품 중에서도 여행기가 바로 우리 뇌에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합니다.
특히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나 조너던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같은 가짜 여행기가 우리의 뇌를 행복하게 해주는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