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삶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아이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부모가 된다. 나이, 성별, 국적에 불문하고 부모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그 역할은 정말 어렵게 느껴지지만 반면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아이가 없었으면 느껴보지 못했을 감정과 생각들이 정말 많다. 부모가 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생각들을 적어보려 한다.
몬테소리 여사는 저서 흡수정신에서 부모에게 '두 종류의 삶'이 있다고 하였다. 부모의 희생은 쾌감, 기쁨이 동반되며 이러한 희생은 아이의 세계에서만 발견되는 고귀한 사랑이라고 하였다. 이에 어른(부모)은 아이로 인해 참여하는 삶과 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삶, 두 종류의 삶에 참여한다고 하였다. 이 중 아이와 관련 있는 삶에서 어른의 숭고한 감정들이 개발된다고 보았다. 아이를 보며 몬테소리 여사가 말한 숭고한 감정들을 느낀다. 누군가 나를 새벽마다 깨운다면 매번 일어날 수 있을까. 식사를 할 때 누군가 울면서 자기 밥부터 달라고 하면 먼저 주고 식은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손목과 손마디가 시려오는데 안아주길 바란다면 들어줄 수 있을까. 아이가 이러한 일을 요청할 때 부모는 희생을 한다. 이 희생은 행복한 희생이다. 새벽에도 배부른 미소를 볼 때, 품에 안겨 안심하는 미소를 볼 때 전에 느껴보지 못한 걷잡을 수 없는 행복한 감정이 든다. 이 행복한 느낌은 중독성이 있어 계속 아이를 위한 희생을 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 희생이라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이런 총체적인 감정을 몬테소리 여사는 숭고한 감정이라고 지칭한 것이라 짐작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자신의 아이에게만 국한되지 않게 된다. 타인의 아이들을 볼 때에도 더 너른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식당에서 아이가 악을 쓰며 울 때, 돌고래 같은 소리를 내며 뛰어다니는 경우를 종종 봤었다. 이럴 때 싸늘한 눈초리나 한숨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 부모가 있을까? (비록 아직 우리 아기는 뛰지도, 크게 울지도 않는 작은 아기지만 앞으로 그런 일을 겪게 될까 봐 걱정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아기를 낳아보면 이러한 일들은 미래의 사회구성원을 위해 우리 어른이 이해해주어야 하는 부분이다. 아이는 말을 하지 못한다. 울음은 아이의 유일한 의사소통 방법이다. 울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어른에게 말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또 아이는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기쁘다. 갓 태어나서부터 열심히 팔다리를 움직여 연습해 왔고 드디어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게 되어 기쁜 것이다.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재미있고 신나며, 그것을 통해 자신이 살아갈 환경을 탐색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에 대한 이해를 부모가 되어서야 하게 되었다.
2022년 기준 출산율 0.78명인 대한민국에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참 어려워 보이는 일이다. 아이를 위해 국평아파트, 비싼 유아용품, 영어유치원, 국제학교(또는 사립학교) 등 부모는 이러한 것들을 다 준비해놓아야 할 것만 같다. 나조차도 저런 것들을 시작할 생각을 하면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부모가 되기를 포기한다면 부모가 됨으로써 겪을 수 있는 새로운 삶과 감정, 생각들을 전부 겪지 못하게 된다. 결국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기존과 다른 종류의 삶을 시작하는 것, 그리고 더 넓은 이해의 폭을 갖게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