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아기를 낳으면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엄마의 연락을 받지 않은 지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어떻게 별다른 이유도 없이 부모의 연락을 받지 않냐며 욕하고 화내고 달래도보던 엄마. 그러나 나는 늘 그 이유들을 자세히 말해왔었다.
어렸을 적부터 엄마는 늘 불쌍한 사람이었다. 시댁도 별로고 남편도 별로고 어쩔 땐 친정도 별로고 친구도 별로고 자기는 늘 당하기만 하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그 모든 한탄들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시절부터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엄마의 말들을 다 믿고 엄마의 주변(그리고 나의 주변)을 전부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그러면 안 된다고 넌 대체 애가 왜 그러냐고 했다. 혼란스러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의 한탄은 끝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해결방안(가족들과 연락하지 않기 등)을 말하면 어떻게 그러냐며 못된 년이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럼 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하면 엄마가 딸한테 그런 소리도 못하냐며 또 못된 년이라는 소릴 듣곤 했다. 주변인의 욕을 하지 말라며 또는 다른 이유로 싸운 날이면, 본인은 불쌍한 피해자가 되어 주변인들(가족과 친척들, 본인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내 욕을 하는 날이 되곤 했다. 왜 그러냐고 하면 평소엔 내 칭찬도 많이 한다며, 가족들끼리 원래 그 정도 욕은 하고 사는 거라는 답변만 왔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시기의 나에게는 이도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선택지들 뿐이었다. 물론 성인이 되고 나서도 최근까지도 반복되었던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너도 자식 낳아봐라 딸을 낳아봐라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기에 아기를 낳으면 엄마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될 줄 알았다. 동시에 내가 낳는 아기가 딸이면, 나도 모르게 똑같은 관계를 반복하게 될까 봐 무의식적으로 두려운 마음을 늘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첫아기가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 마냥 기뻐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2년 가까이 아기를 키운 지금, 나는 엄마의 마음이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작은 존재에게 나의 힘듦을 마구 토해내고 싶지 않다. 오히려 앞으로 연락을 줄여나가야 내가 과거의 어두운 마음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구나 라는 결심이 섰다. 그렇게 엄마와의 연락을 줄여나가게 되었다. 확실히 연락이 줄자 일상이 많이 평온해지고 쉽게 공격적으로 변했던 성격도 많이 누그러졌다.
물론 마음 한편은 아직도 답답하고 찜찜하다. 상대방이 부모라는 존재였기에 받은 것도 많고 상대방의 장점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마음이 나아지면 그때 다시 연락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날이 올 것 같지는 않다. 나의 내면이 더 단단해지고 과거의 일들로부터 초연해질 때 그리고 상대방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하든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다시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