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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해 Nov 21. 2021

<사마에게>, 난민이 벼슬이냐고 외치는 무지에 부쳐

※ 2020년 1월에 작성했던 리뷰입니다.


시리아의 내전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아랍의 봄이 전 세계에 가져다준 희망과 경이만 함께 누렸을 뿐, 그 후의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완전히 잊고 살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전 세계에 계속 메시지를 보내고 있어요. 유엔의 개입이 필요하다고요. 대체 왜 아무도 우릴 돕지 않는 거지?’라고 답답해하는 영화 속 목소리에 죄스럽고 몸 둘 바를 모르겠는 기분이 되었다. 성공한 혁명 뒤에는 흔히 그렇듯이, 정치·종교 갈등으로 내분이 격화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찾아보았다.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대립뿐만 아니라 칼리프 국가를 세운 이슬람 근본주의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 등 더 복잡다단한 행위자들이 개입해, 이제는 시민들이 더 이상 자유를 바라는 하나의 목소리로 결집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알 아사드 정권만 치우면 해방될 줄 알았던 시리아 시민들의 순진한 낙관 뒤에는 과연 몇 배의 좌절감과 공포가 찾아왔을까.


그러나 오로지 딸 사마를 위해 이 다큐멘터리를 찍었다는 와드 알-카팁은 사상과 종교의 갈등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대신, 그 복잡하고 절망적인 싸움에서 ‘대체 왜 도망치지 않았는지’를 담는다. 그녀가 끈질기게 채집해온 약 500시간의 기록은 아랍의 봄 당시 알레포 대학의 동기들과 학교 벽에 자유의 메시지를 새기던 순간부터 시작된다.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로 불붙었고 흐지부지 종결될 줄 알았던 작은 투쟁은, 이내 강물에서 사망자가 대거 발견되며 사뭇 다른 분위기를 띠게 되고, 알레포에 남기로 결정한 이들은 서로의 힘이자 족쇄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와드의 필름에는 반정부 시위가 어떻게 조직되고 구현되는지에 관한 직접적 정보는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 시위는 ‘저 멀리 어딘가’의 일처럼 거리를 두고 언급되며, 싸움과 전선의 긴박함보다는 싸움에서 이미 져버린 사람들 혹은 영문 모르고 말려든 아이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다치고 생을 마감하는지가 훨씬 자세히 묘사된다. 의사인 남편 함자와 동료들이 모두 모인 생활공간이 병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알레포라는 도시 자체가 그 모든 ‘행동’에서 가장 철저하게 고립당해 단지 ‘생존’하기 위해 아등바등 힘써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러시아군과 손잡은 정부군의 강경 진압으로 가장 심하게 핍박받는 곳, 폐허가 된 도시로서의 상징성을 띤 알레포.


와드와 함자는 그런 알레포에서 도망치지 않을 뿐 아니라 비교적 안전한 양친의 도시로부터 다시 알레포로 돌아가기까지 한다. ‘사마라도 두고 가라는 부모님의 말에 머리로는 그래야 한다고 이해했지만, 그냥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를 꼭 데려가야만 할 것 같았다.’라고 괴로워하며 진술하는 와드의 내레이션을 들으며 그 심경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운동이란 건, 사람들을 결집시킨 가치라는 건 항상 생각보다 훨씬 취약하고 무의미한 것이라서 단 한 사람의 이탈만으로 쉬이 파동을 만들기도 하니까. 드물고 귀한 운동권 의사와 단 한 명의 기록자인 부부, 전쟁 중에 결혼했고 출산했다는 사실만으로 (아이 없이 그 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마스코트의 역할을 하게 된 부부가 일선에서 사라진다면 동료들의 동요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와드와 함자도 그것을 알았을 테고, 그들은 손에 잡히는 현실적 안정을 위해 멀고 무용한 가치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기에는 너무 착하고 순진하고 낙관적인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투쟁을 포기하고 얻은 안전을 행복으로 생각할 수조차 없었을 사람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가장 효과적인 프로파간다이기도 했다. 와드가 그것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죽은 아이들과 우는 어머니들, 임시로 만든 병원 바닥에 늘상 낭자한 피, 어른들도 화들짝 놀라는 공습과 폭발음에 전혀 놀라지 않고 빤히 엄마를 쳐다볼 뿐인 갓난아이 사마... 이런 이미지들의 힘은 너무나 강력했다. 대체 누가 이 영상을 보고 죄책감과 도덕적 의무감 혹은 연대의 의지 이외의 다른 것을 내보일 수 있을까. 압도적인 폭력과 잔인성 앞에, 나는 당해보지 않은 불행 앞에 쉬이 입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작년 이맘때 칸에 성공적으로 입성했지만 내게는 백인들의 불행 포르노 구경으로 느껴지는 면도 없지 않던 <가버나움>이 자연스레 연상되기도 했다. 참상을 남이 밝힌다면 아무리 조심스럽게 노출시켰다 해도 제3자에 의해 오독되거나 ‘전시’에 그치기 십상이지만, 이런 경우처럼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당사자가 직접 ‘기록의 의무감’을 갖고 공개한 사실은 또 다른 복잡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당사자들을 가장 깊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방법일지. 이 필름을 어떻게 바라봐야 무례하지 않고 상처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그들을 헤아릴 수 있을지.


그러나 발각의 위기를 목전에 두고도,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당면하고도 카메라를 놓지 않는 와드의 시점을 어색해하는 것은 몇천 킬로미터 떨어진 관객인 나뿐이었던 것 같다. 5분 전까지만 해도 형제들과 골목에서 공을 차고 뛰어놀던 아이가 폭격에 당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때, 알레포의 어머니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마에게 ‘찍지 말라’고 화내는 대신 ‘그래, 모두 찍어야 해. 이걸 꼭 찍어서 밖에다 알려줘’라며 울부짖는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삶이 무너지고 산산조각 나는 순간의 비탄을 ‘함부로’ 촬영하는 타인에게 그 어머니들은 거부 대신 ‘어서 나와 내 아이를 찍어가라’고 요구한다. 슬픔과 분노 그 이상의 감정을 목격한 느낌이었다.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 가지만 더 첨언하자면, 아이를 가진 것을 너무너무 기뻐하거나 결혼을 사랑의 종착지로, 절망 속의 축복으로, 모두의 경사로 간주하는 와드의 태도를 착잡한 마음으로 관찰하며 그가 '나이브'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기어이 둘째를 임신한 것을 밝힌 장면에서는 거의 탄식이 나왔다. 함께 시사회에 간 친구도 동감했다. 하지만 우리만큼 어리고 이슬람 문화권에서 나고 자랐으며 훨씬 더 강렬히 자유를 바라 왔을 그이기에, 와드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알라를 외치며 그가 러시아 군의 폭격으로부터 보호해주시기를 바라는 세계의 여성들에게는 아이를 낳는 일이 저항일 수도 있다. 지금 이곳에 사는 나와 내 동료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지 않는 일이, 그렇게 선언하는 일 자체가 저항의 의미를 갖듯이. 결혼과 임신과 출산과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를 ‘희망’으로 간주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불가능하더라도, 와드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고 절실한 일일 수도 있겠지. 죽음과 일상을 구분할 수 없는 곳이란 걸 알면서도 아이를 낳은 와드의 죄책감, 언제 생이별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것을 모두 이긴 각오는 감히 내가 판단하고 비판할 만한 것이 아니다.


‘더 급한’ 투쟁과 ‘더 중요한’ 가치에 밀려 여성 인권은 또다시 해일을 마주한 조개 취급되는 건가, 왜 전 세계 전 시대의 어느 투쟁에서도 여성의 해방은 가장 나중의 일로 치부되는 거지... 하는 참담한 고민을 멈출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너무 모르는 세계인 시리아에는 무언가 다른 맥락이 존재하겠지. 그들의 역사에도 현재에도 무지했으면서 그들의 선택을 평가할 수는 없다. 내전이 종결된 후, 혹은 종결되는 과정에서부터라도, 여권의 불모지인 아랍 국가들에서도 차츰 그곳 문화와 역사에 걸맞은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마가 다 자란 후에 시리아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면 그 애는 과연 어떤 풍경을 목격하게 될까?





영화가 끝난 후의 먹먹함을 오래 곱씹을 새도 없이 당도한 것은 자칭 언론 인사이트의 게시물에 대한 분노였다. 관람 몇 주 전에 본 글이긴 하지만 하도 질려서 잠시 생각을 중단했었는데. 내전과 난민에 대해, 그들이 난민이 되기 전에 어떤 삶을 견디다 못해 도망친 것인지에 대해 두 시간 동안 영상으로 목격하고 나니 새삼 이런 선동형 게시물에 대한 분노가 다시 솔솔 차올랐다.



참고: 법무부 설명자료 발췌

□ 난민신청자 생계비와 참전용사 명예수당은 제도의 배경과 내용이 다릅니다.

 ❍ 참전용사 명예수당은 65세 이상 참전유공자에게 생계의 취약성 여부를 불문하고 기간의 제한 없이 사망 시까지 지급되는 수당이나, 난민신청자 생계비는 우리나라에 비호를 신청한 난민신청자 중 취약한 유형을 선정, 최소한의 인권을 보호하고 범죄에 노출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로서, 지급기한도 난민신청일로부터 최장 6개월까지만 입니다.

 ❍ 참전유공자의 경우에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요건에 해당하면 위의 명예수당과는 별도로 기초생계비 지원을 받을 수 있으므로, 난민생계비를 참전용사 명예수당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제도의 배경과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적절치 않은 면이 있습니다.  

 난민신청자 생계비는 난민신청자 모두에게 지급되는 것은 아닙니다.

 ❍ 생계비 지원 대상자는 생계비를 신청한 난민신청자 중 ①소득 및 자산, ②미성년자 등 부양가족, ③임신 또는 질병 등에 대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되며, 2019년의 경우 생계비 지원을 받은 난민신청자는 609명으로 전체 난민신청자 15,452명의 4%였습니다.  

  ※ 일본(월 약48만원), 독일(월 약 46만원) 등 외국의 경우에도 생활빈곤 난민신청자에게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음 



감히 공론장을 표방하고 자처하며 정작 그 안에서 날뛰는 무수한 혐오 발언들은 방치할 뿐만 아니라 이렇게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걸 목격할 때마다 머리꼭지가 도는 기분이다. 이렇게 없는 자와 없는 자 간의 싸움을 전시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허구의 싸움을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서 그들이 얻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현 정권에 대한 비난과 선동을 의도했다고만 보기에는 이 게시물에 내포된 악의가 너무 집요하고 음습해서 말문이 막힌다. 그들이 타격하고자 한 것이 결론적으론 ‘난민을 챙기느라 우리나라 국민을 챙기지 못하는 정부’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인종적/법적으로 명백히 한국인이고 그래서 선순위여야 할 나를 제대로 챙겨주지 않은' 정부만 비판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예멘 난민 사건 당시 재점화되었던 제노포비아와 약자 혐오의 결합은 이런 글들을 통해 더욱 공고해지고 그 힘을 더해간다. ‘이게 나라냐’와 ‘난민이 벼슬이냐’와 ‘우리 국민 먼저 챙겨라’의 홍수 속에서 이런 반응만이 절대적인 여론인 줄 알고 클 미래 세대는 또 어떻게 될 것이며, 실제 난민 인정률은 한국보다 낮은 나라가 없다는 명백한 팩트 앞에선 눈을 가리는 사람들은 과연 앞으로 어떤 이름으로 호명되는 세대가 될 것인가. 현 정부에 대한 악감정 그 자체를 비난하고자 하는 건 전혀 아니다. 그거야말로 사고 수준과 무관한 정치적 자유지 뭐... 하지만 비난을 위한 비난 와중에 가장 약한 자들, 힘없고 갈 곳 없는 자들이 도구로 쓰이는 행태를 보고서도 정말 느끼는 게 없나? 정말로? 흑백논리와 진영논리에 사로잡혀서 최소한의 사고력마저 포기한 사람들을 보면 막막한 무력감이 차오른다. 말이 안 통하니 토론할 자신이 없다. 막말로 저런 사람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는ㅋㅋ 북한의 침략, 제3차 세계대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 우리도 당장 난민이 돼서 뿔뿔이 흩어질 텐데 대체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하게 배척하고 혐오하는 거지 싶기도 하다.


제주 예멘 난민과 페미니즘에 대한 40편의 글을 엮은 <경계 없는 페미니즘>에서 수없이 반복해서 말했듯이, ‘우리는 난민과 무슬림을 얼마나 아는가? 그들에 대한 온갖 뉴스와 통계는 믿을 만한가? 무슬림 남성은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고, 무슬림 여성은 압도적인 피해자인가? 이슬람 사회의 여성혐오는 한국 사회의 그것보다 훨씬 더 억압적인가? 누가 가짜 난민이고, 누가 진짜 난민인가?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대해 단 하나도 답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면서 무지를 핑계 삼는 인간만큼은 되면 안 된다. 되지 않을 것이다. 정말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인권은 제로섬 게임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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