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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해 Jul 26. 2022

<헤어질 결심>,
꼿꼿하고 불쌍한 당신의 이면

이 지극한 사랑 앞에서 무슨 말을 보탤 수 있을까.


불타는 집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예전에 죽도록 우울해지면 자주 상상했던 일련의 이미지가 있다. 아주 깊은 숲 속으로 기름 한 통을 들고 들어간다. 숲의 중심부에 도착하면 거기 공터가 있고, 다 허물어져가는 3층짜리 폐가가 있다. 낡은 목재가 눅눅해질 정도로 기름을 뿌리고 나면, 가장 높은 층 가장 구석의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무릎을 모아 앉고 불을 붙인다. 집이 전소될 때까지 아무도 방 안의 사람을 구할 염두도 낼 수 없고 집과 사람은 재가 된다.

어디서 연유했는지도 모르겠고, 과한 자기연민과 자학에서 비롯된 망상이라 지금은 다시 떠올리기도 부끄럽긴 하지만, 그 불타는 집의 상상은 꽤 오랫동안 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어왔다. 나 대신 그때그때의 내 걱정을 이고 지고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예비 자살자-은 나이기도 했고 내가 아니기도 했다. 새까만 밤에 낡은 집이 활활 불타는 광경이 카타르시스를 선사했고 불타 없어진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할 때, 유치하지만, 개운하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보통 누굴 잃은 후에야 소중함을 깨달으니까, 나 역시 그랬었으니까, 나를 잃은 사람(들)도 내가 없어진 다음에라도 자길 생각하던 내 마음이 얼마나 깊고 큰 것이었는지 한 번쯤 깨달아주면 좋겠어서.


불타는 집과 <헤어질 결심>의 바다. 영화 마지막 장면의 넘실대는 파도에서 그 불길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금 떠올렸다. 내가 널 사랑하는 방식대로 네가 날 받아들일 수 없다면 차라리 최악의 방법으로 헤어져 주겠다는 마음, 절대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겨 너는 영원히 괴로워하고 나는 열반에 도달하겠다는 그 괴로운 마음을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지나치게 희생적이라서 기어이 극적인 자학으로 완성되고 마는 사랑을 연인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공동체에든 품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했듯이.

그러나 망상이 망상으로만 남은 이유가 있으니. 그 마음을 간직하거나 아예 지워버리고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과, 마음을 결심으로, 결심을 행동으로 만드는 사람의 간극은 얼마나 넓은가. 후자의 결단에 어린 품위를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전자 - 범인凡人으로서, 서래의 사랑(해준과 서래의 사랑이 아니다)을 슬프고 아린 경외의 마음으로 되짚어본다.



믿음직함과 꼿꼿함



영화를 두 번째 볼 때, 정신없이 영화를 따라가던 첫 번째 관람과는 달리 몇몇 씬에서 넘어가는 일이 오래 지연됐다. 특히 영화의 2막 후반부 해준과 서래가 호미산에 올랐을 때다. 잔뜩 약이 올랐던 해준은 “내가 왜 서래씨를 좋아하는지” 아냐고 버럭 소리 지르더니, 서래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서래가 “꼿꼿해서” 좋아했다고 말한다.

“긴장하지 않고도 그렇게 꼿꼿한 사람은 드물어요. 난 그게 서래씨에 대해서 많은 걸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평서문의 덤덤함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울분이 동반된 말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서래를 ‘꼿꼿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그것에서 서래의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처음부터 해소되지 않은 의문을 남겼으나 몰아치는 대사의 향연에 미처 깊이 생각할 틈이 없었던 이 말을 두 번 듣고 나니, 서래는 왜 긴장하지 않고도 꼿꼿한 사람이었는지, 왜 그렇게 보였는지가 더 궁금해졌다. 결국 서래가 ‘그냥’ 꼿꼿한 사람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남았다. 서래는 ‘긴장하지 않고도 그렇게 꼿꼿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해준 앞에서조차, 돌보는 할머니들 앞에서조차 ‘긴장을 놓지 못해 꼿꼿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물론 “죽은 남편이 산 노인 돌보는 일을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라는 말에서 그의 강렬한 품위가 순간 사람을 압도하긴 하나, 꼿꼿함의 근원을 따진다면 과연 품위 하나뿐이었을까.

박찬욱 감독과 배우 탕웨이가 직접 덧붙였다시피 서래의 삶은 사랑할 여유도 없이 오로지 생존만을 모색하며 연명되어 온 것에 가깝다. 재중교포 3세대(경계인), 외국인 이주민(디아스포라), 젊은 여성, 매 맞는 아내(가정폭력 피해자), 간병인(돌봄 노동 종사자)이라는 약자적 지위의 중첩. 경계인이자 난민이자 ‘젊고 예쁜 여자’로서, 한국사회의 최약체일 수밖에 없었던 그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첫 남편 기도수를 죽였고 사람으로 살기 위해 사랑하는 해준을 끝까지 성실히 속여왔다.

그렇다면 ‘긴장하지 않고도 그렇게 꼿꼿한 사람’이라서 최초의 애정 어린 호기심을 품었다고 하는 해준의 생각은 결국 서래에 대한, 서래의 존재론적 위기에 대한 아주 거한 오해라고밖에 할 수 없어진다. 당연한 일이다. 그는 직업이 형사이기 때문에 위험한/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일반인보단 많이 보았다는 특이점을 가질 뿐, 그를 이루는 요건 중 그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없다. 그의 국적도 성별도 신체적 장애도 성 정체성도 계급도 그를 해칠 수 없다. 서래와는 완전히 반대편에, 즉 ‘보편’에 서서, 서래의 긴장한 등과 어깨를 보고 오로지 품위에서 비롯된 꼿꼿함만을 읽어낸 해준의 사랑은 처음부터 자기 본위의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서래는 해준을 어떤 사람으로 보았고 그래서 사랑하게 되었는가. 서래가 해준에게 직접 말한 이유라면 ‘현대인치고 품위가 있어서’였지만, 역시 호미산에서 나눈 대화들로써 서래 자신도 명확히 언어화하지 못했을 - 서래가 해준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드러난다. 서래는 돌아가신 엄마에게 조곤조곤 말을 걸면서, 엄마와 할아버지의 유골을 뿌려줄 남자로 해준을 데려왔다며 그를 이렇게 표현한다: ‘믿음직한 남자’.

일찍이 해준이 잠복하며 서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때, 서래는 ‘믿음직한 남자가 잠도 안 자고 날 지켜주는 것 같아서’ 안심하고 좋아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애플워치의 녹취록 번역을 통해 알려진다. 자기 집안을 훤히 들여다보는 형사에게 피의자가 품은 것치고는 일반적이지 않은 마음이다. 여러 번 반복된 이 말을 통해 서래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는 ‘믿음직함’ 즉 신의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안전함의 보증이었다는 슬픈 사실이 다시 한번 뚜렷해진다.


그러나 서래가 말한 만큼 해준이 ‘믿음직’하기만 한 남자였냐면 또 그건 아니다. 해준의 부인 정안의 입장에서 해준은, 아름답고 엘리트인 부인과 자식을 낳고 멀쩡한 가정을 이뤄서 16년 8개월 동안 잘만 살고 있는데도 피와 살이 낭자한 살인사건 없이는 결핍을 느끼는 희한한 가장이다. 해준은 정안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지만, 잠자리를 가질 때도 사건 생각에 정신이 팔릴 정도로 부족한 남자기도 하고, 정안이 수시로 확인받고 싶어 하는 애정에 늘 어긋난 대답을 내놓는 (해준: “그러니까 사람들이 우릴 싫어하지.” / 정안: (반색하며) “우리?” / 해준: “경찰”.) 얄밉고 이기적인 남자기도 하다.

그런 해준이 정안보다 훨씬 어리고, 약하고, 공격받기 쉬운 위치에 처한 다른 여자에게 “서래씨가 나랑 같은 종족이라는 건 처음부터 눈치챘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묘한 씁쓸함을 남긴다. 같은 ‘종족’이라니, 겨우 ‘말씀 대신 사진’으로 망자의 시신을 확인하고 싶어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엄청난 경계짓기의 단어를 쓰다니. 해준이 그 말을 함으로써 의도한 효과는 ‘당신(서래)과 나는 닮았다’는 귀여운 동질감을 심어주는 수준이 아니라, ‘당신과 나를 뺀 모든 인간은 - 나의 부인을 포함해서 - 우리와 다르고, 그들은 우리를 이해할 수 없고, 오로지 당신과 나 같은 인간들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완전한 일체감을 서래와 자기 자신에게 못 박는 일이었을 테다.

그러나 정안도 해준에게 꼭 맞는 짝이었던 때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그러지 않았다면 해준 같은 사람이 감히 결혼을 도모했을 리 없으니까). 아마도 그들의 연애 시절. 가늠할 수 없는 엉뚱함이나 흘러넘치는 지성이나 형사인 해준을 꼼짝 못 하게 할 정도로 몰아치는 기세로 정안이 해준을 사로잡았을 16년 8개월 전. ‘같은 종족’인 줄 알고 결혼했으나 이제는 내 팔을 저리게 하고, 내가 보답할 수 없는 수준의 애정을 제멋대로 부어주고, 나보다 똑똑하고 기가 세서 도무지 이겨먹을 수가 없고, 나의 사소한 기호까지 통제하려 드는 부인 대신 당신이 좋다, 당신이 새로이 찾은 나의 ‘같은 종족’인 것 같다 - 는 함의를 담은 해준의 말에서 나는 너무나 익숙한 종류의 언어들을 감지한다.

1) 폭력이 자주 수반되는 직업군에 몸 담은 남자 특유의 과잉된 자아, 2) 외도하는 늙은 남자들의 자기합리화. (그래서 불현듯 해준을 비웃고 싶은 마음이 치밀었다면, 당신도 나와 같은 종족이다.)


해준을 비웃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의 얕은 그릇, ‘남자다운’ 바닥이 드러나는 단서들은 이 말고도 셀 수 없이 많다. 예를 들면 서래에게 입술을 붙잡혀 립밤이 발리면서도 끝까지 내뱉고야 만 “나는요, … 깨끗해요.” 그 말을 기어이 끝내버려서, 해준은 역시 ‘깔끔한’ 성격이라고 평해진 다른 남자와의 공통점을 저도 모르는 사이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바로 서래의 첫 남편 기도수다.

또 물고 물리는 복잡한 관계 속 부인들과 구별되는 남편들의 제스처도 눈여겨볼 만하다. 서래와 해준이 이포에서 각자의 배우자를 옆에 달고 재회했을 때, 배우자들은 그들 사이에 흐르는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지만 반응은 사뭇 다르다. 정안이 예의 있게 서래와 서래의 두 번째 남편 임호신에게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이끈 것과 달리, 임호신은 서래에게 정신이 팔린 해준을 똑바로 쳐다보며 손깍지를 꺾어 위협적인 뚜둑 소리를 낸다. 이 유치하고 졸렬한 ‘남성적’ 제스처가 뒤에 한 번 더 반복되는데, 해준의 수상함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짐을 챙겨 나가버리는 정안을 데리러 온 동료 이주임(유태오)을 만났을 때 해준의 반응이 정확히 그것이다. 남자인 줄도 몰랐는데 심지어 미남이기까지 한 이주임의 등장에 해준은 지금껏 제가 저지른 부정은 잊은 듯 주제넘은 분노를 느끼고, 손을 뚜둑 꺾으며 새까맣게 가라앉은 눈으로 이주임을 노려봐 그를 머쓱하게 만든다.

즉 해준은 ‘다른 남자들과는 뭔가 다른’ 남자처럼 등장했다가, 영화가 흘러가는 동안 한꺼풀 한꺼풀씩 그 멀끔한 포장이 벗겨지며 다른 남자들과 다를 바 없는 면모를 들키고, 결국 영화의 끝에서 제 발 밑의 진실조차 찾지 못하는 답답한 남자로 완성된다. 박찬욱의 솜씨대로 아주 부드럽고 변태적인 방식으로 드러나는 해준의 실체: 아무것도 아닌 남자.


역설적으로, 그래서 서래의 사랑이 더욱 위대해진다. 품위 있는 현대인이자 성실한 경찰이자 믿음직한 남자로 보였던 해준이 실은 흔하고 어리석고 평범한 남자였다는 사실을 관객이 인정하는 순간. 완벽하고 멋있고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 흠결 있는 인간을 그토록 열심히 사랑했기 때문에 서래라는 사람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이가 재조명된다. 그런 남자를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남자로 잘못 봐서 사랑한 게 아니라, 그런 남자임을 알고도 사랑했기 때문에 위대한 사람. 서래는 해준처럼 아무것도 아닌 남자를,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봐줄 수 있는 너그러운 사랑의 소유자다.



느리게 도달하는 말, 마침내 어긋나는 언어



물론 박한 평가를 받은 해준도 마냥 못나기만 한 남자는 아닐 것이다. 서래의 사랑이 너무 깊고 지혜롭고 대단해 비교됐을 뿐, 해준 역시 ‘다른 남자들보다 나은’ 사랑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패왕별희>에서의 데이와 주샨의 정신 나간 사랑, 그리고 샬루의 범인다운 사랑 중 전자가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던 것을 떠올려본다.) 그렇다면 서래의 사랑과 해준의 사랑을 나누어 보지 않고, 둘이 나눠가진 사랑만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지켜보는 누구나 당연히 ‘종이에 잉크가 퍼지듯’ 스며들 수밖에 없다.

서래와 해준이 상대의 사랑을 확인한 은은하고 눅눅한 순간들: “마침내”, 초밥, 치약, 데일밴드, 향수, 아이스크림, 재떨이, “굿 모닝”, 깃털, “심장”, “단일한”, 립밤, 수면과 호흡, 과하게 클로즈업되거나 어둡게 비네팅 된 사진들, 안개, 애플워치로 녹음하는 버릇. 조심스러워서 더 아름다웠던 (<화양연화>다운 절제가 떠오르기도 하는) 사랑.


그 순간들(소재들) 외에도 박찬욱이 사랑의 매개로 선택한 것이 바로 언어다. 중국어 사용자이며 드라마로 한국말을 배운 서래는 “마침내”와 “단일한”, “운명하셨습니다”처럼 듣는 이를 멈칫하게 하는 한국어를 구사한다. 그는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을 때마다 핸드폰에 내장된 통번역 어플을 사용하는데, 서래의 말이 통역을 거쳐 해준에게 전달되는 동안 짧지 않은 지연이 발생한다. 밀항 과정을 설명하며 몸을 앞뒤로 흔들던 부가 설명 역시 어렴풋이 짐작할 수만 있고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는 미결의 영역에 남아있다가, 통역된 한국어 기계음이 해준에게 들려올 때에서야 비로소 명백한 의미를 갖게 된다.

또 피의자와 형사의 녹취록이 번역되어 서로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도 약간의 지연이 있다. 이포에서 해준을 창밖으로 몰래 지켜보며 녹음한 서래의 중국어 음성이, 사건 발생 후에야 증거물로 수집된 애플워치에서 발견되고 한국어로 된 증거물로써 번역되어 한국어 문서로 전달되면 해준이 그걸 읽으며 서래의 마음을 뒤늦게 확인하는 식이다.


생존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만 했던 서래의 사랑은 사랑으로만 남을 수 없어서 늘 해준의 의심을 샀다. 부산에서 서래의 감정은 언제나 사랑과 범죄 두 범주에 동시에 아슬하게 걸쳐 있다.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라며 연인의 마음을 돌리려 일어나기 전에도 몰래 녹취 버튼을 눌러야 하는 사랑의 이면. 그러나 동시에, 녹취된 목소리를 들으며 ‘무너지고 깨어짐’이라는 글말에 홀로 눈물이 터지고야 마는 음모의 이면.

그렇기에 이포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사랑을 사랑으로만 남겨보고 싶었을 서래는, 두번째 남편의 업보로 인해 범죄에 또다시 휘말리고 만다. 이번에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준을 위해 피를 없애고, 해준을 위해 (서래가 사건의 결정적 증거라고 오인한) 피해자의 핸드폰을 없애고, 해준을 위해 무고한 노인을 죽이는 서래. 일련의 행동에는 더 이상 부산에서 자주 보였던 머뭇거림이 없다. 서래는 일이 마땅히 어떻게 되어야만 하는지 사리에 통달한 사람처럼 모든 것을 거리낌 없이 처리한다.


13개월의 간극을 두고 부산과 이포에서 보인 서래의 변화는 태도뿐 아니라 바로 그 통번역기의 음성에서도 드러난다. 부산에서 서래가 말한 후 그것을 통역해주는 기계음은 낮은 남자의 음성이다. 아마도 핸드폰의 디폴트 설정이었을 그 남성의 목소리는 서래의 고요하고 우아한 중국어와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이질감을 선사하고, 이는 곧 서래가 한국 사회의 '표준'에서 얼마나 동떨어진 존재인지를 다시 실감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포에서 재회한 후 서래가 해준 앞에 통역기를 들이댈 때 기계는 여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전히, 해준이 이해할 수 있는 온전한 형태의 한국말은 서래의 목소리가 아니라 남의 목소리를 빌려야만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여자의 목소리로 전해진다는 것.

늙은 출입국관리사무소 공무원이 데리고 살던 매 맞는 간병인에서, 주식 애널리스트를 자처하는 사기꾼 남편의 일을 도와 중국인 고객을 연결하고 사기 피해자의 폭행에 맞서기도 하는 기세 좋은 브로커로 서래의 신분이 달라졌음을 생각하면 더욱 흥미로워지는 지점이다. 고된 육체노동을 해야 할 때마다 머리를 질끈 묶던 서래가 이포에서는 항상 가발을 착용하거나 멋들어진 염색을 유지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 한국 사회의 이방인인 자신의 이상치들을 은폐하거나 제거하는 방식으로 서래는 차차 '표준'에 적응하고 가까워지고 있던 것이다. 혹은, 해준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지연된 언어의 도달, 사랑과 범죄 사이 명확히 소속을 결정할 수 없는 단어들, 빌려온 타인의 목소리.

여러 방식으로 드러난 언어적 층위의 어긋남은 곧 서래가 딛고 서 있는 세계와 해준의 세계가 완전히 다른 높이에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는 장치다. 밑바닥 범죄자를 아무리 많이 만나도 해준은 영원히 서래에게 부과된 약자성을 100%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서래를 서래로서 온전히 이해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은 오히려 부인 정안이나 이포 부임 후 후배 형사로 만난 연수(김신영) 쪽이다.

임호신이 변사체로 발견된 후 서래를 심문하던 중, 해준은 같은 형사의 관할지에서 같은 여자와 관련해 발생한 두 번의 살인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서래를 몰아붙였다. 자긴 “참 공교롭네.”라고 말할 것이라면서. 그에 대한 서래의 답은,

“참, 불쌍한 여자네.”

그 순간 취조실 바깥에서 피식 웃는 연수가 비친다. 서래와 연수의 슬며시 웃는 얼굴을 ‘굳이’ 한 숏에 집어넣은 것이다. <친절한 금자씨>를 위시한 박찬욱 초기작부터 영화의 이면에서 꾸준히 태동해왔고 <아가씨>에서 처음으로 뚜렷해졌으며 <헤어질 결심>으로 완전히 피어난 분명한 의도가 여기 숨어있다. 소수자성을 공유하는 이들끼리 쌓아올리는 대항적 언어에 관한 박찬욱 나름의 구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정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안은 서래를, 서래의 결심을, 서래의 이해 못 할 말들을 어쩌면 해준보다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남자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처럼 그려졌지만 결국 그들은 해준을 두고 떠났다는 점에서, 그리고 여성이라는 점에서 동질한 인간이니까 말이다. 서래와 호미산에 다녀와서 진이 빠진 채 귀가한 해준이 목격한 것은 떠나는 정안과 그를 데리러 온 이주임이다.

해준을 살인사건 용의자 겸 불륜한 남편처럼 의심하다가 그 의심이 채 여물기도 전에 아주 신속하게 다른 남자를 부른 아내. 게다가 정안의 한 손에는 해준과의 즐거운 성생활을 위해 만들었던 석류청이, 다른 손에는 해준이 사건의 보상으로 받아온 ('남성에게 좋다는') 자라가 들려있다. 산뜻하고 코믹하게 표현된 이별이지만 이것이 18년 넘게 사랑해온 연인을, 가족을 떠나는 정안의 '헤어질 결심'임을 생각하면 그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갖게 된다.


어긋난 언어가 해준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핑계가 된다면(바다로 향하는 서래의 차를 추격하며 해준이 마지막으로 들은 서래의 중국어에 내뱉은 말: "아이 정말 답답해 죽겠네!"), 서래는 어긋난 언어의 한계를 이미 체화한지 오래면서도 최선을 다해 해준의 경계를 두드린다. 이포에서 다시금 형사와 피의자 관계로 만나 해준이 서래의 집을 막무가내로 수색할 때의 다이얼로그가 그 증거다.

해준: "이포에는 왜 왔어요." (나를 보러 왔습니까?)
서래: "그게 당신에게 중요한가요?" (내가 당신을 보러 왔는지가 궁금합니까?)

한국어로 말해지지만 본심과 가장 멀리 떨어진 말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본심을 숨기려는 노력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말들. 서래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여전히 그렇다는 것을 최대한 숨겨보고자 본질을 피해가려는 해준과, 그런 해준을 놓아주지 않고 나도 이제는 보답할 만한 사랑을 돌려줄 수 있다는 듯 둘러가는 서래.


나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중인데 돌연 "내가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내가 언제요."라며 당황하는 남자의 어리석음까지도 서래는 다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서래는 평생 그렇게 어긋나고 불화하고 뒤늦거나 너무 빨리 도착해버렸던 말들을 견디며 살아온 사람이니까.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知者樂水 지자요수 仁者樂山 인자요산)



서래는 처음부터 자신은 어진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나는 서래가 어떠한 사람이 ‘아닌’ 것보다는 어떠한 사람이 맞다는 것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 나는 바다를 좋아합니다, 라고 전한 서래, 처음부터 결말의 운명을 예고한 그 사람은 결국 “지혜로운 사람”. 지혜로워서 한 사람의 모자람을 처음부터 다 알고도 그를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지혜로워서 파국밖에 되지 못할 관계를 질질 끌지 않고 단호히 끝내기로 결심한 사람. 그래서 마침내 정말로 연인의 지시를 온몸으로 수행해 눈앞에서 증발하고야 만 사람.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트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가 가장 절절한 사랑의 언어임을 제 스스로도 몰랐던 연인에게 그렇게 충실했던 사람. 놓아주는 것이 연인에게 최후의 형벌이 되리란 사실을 정확히 알고 그를 영원히 붙들어 매기 위해 놓아줄 결심을 한 사람.


마침내 도래한 끝, 죽은 새를 묻어줄 때 썼던 청록색 양동이로 제가 잠들 땅을 파고 들어간 서래는 결연한 눈빛으로 술을 들이킨다. 구덩이의 벽에 기대앉은 서래의 등은 끝내 꼿꼿하다. 다만 이제는 긴장과 경계가 아니라 오로지 결심만으로 이루어진 꼿꼿함이다.

이토록 우아하고 비참한, 순종적이고 반역적인, 완패이자 완승인, 영원한 미결이자 종결인 사랑의 실현이 있었던가. 꼿꼿한 자세를 되찾고 싶어지고 누구도 다신 찾지 못할 곳으로 숨고 싶어지고 결국, 마침내, 깊은 바다를 찾게 만드는 사랑.


궁금하다. 해준은 그 바다에서 얼마나 더 머물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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