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이 화제의 다큐가 공개되자마자 당장 봤는데, 1화부터 토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느낀 불편함은 사람도 아닌 정명석이나 이재록 같은 범죄자들뿐만 아니라, 그 범죄 사실을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노출시키는 막중한 과제를 맡은 연출진의 미숙한 태도 때문이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신이다>가 채택한 사실주의라는 키워드는 반쪽짜리로 느껴진다. 이 다큐에는 사실에 대한 사실적인 재연만 있고 그 사실을 가능케 한 구조에 대한 추적은 없다. 막말로 JMS와 만민중앙교회, 아가동산 등의 모든 신도가 다큐 속 추악한 진실을 알고 충격받아 빠져나오고 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여전히 종교 집단 내의 권력형 성범죄는 이단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발생할 테다. '이번' 차례의 범죄 집단의 확장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리고 성착취의 경험이 축적되기까지 사회가 무엇을 보태고 무엇을 묵인했는지 다루지 않은 채 아주 구체적인 성적 피해 증언(과 심지어 녹취를 그냥 까버리는...;)에만 의존하는 다큐는 큰 의미가 없다.
그리고 현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빼곡히 선명하게 담겠다는 의도가 이 다큐의 가장 주요하고 근원적인 목적이라 치면, 그 리얼리즘에 반드시 동반되어야 할 요소가 바로 ‘현재 고발을 결심한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추후에 그 상황을 빠져나올 여지가 있는 잠재적인 피해자들의 입장 역시 고려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 다큐에 다른 여자들을 정명석에게 대준 '포주'가 된 여자들처럼, 피해자이자 enabler였던 여성들에 대한 고려는 전연 보이질 않는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정명석에게 말도 안 되는 음란물을 찍어보내며 ‘주님’을 외친 욕조 속 여자들의 얼굴만 지워주고 나체를 고스란히 남겨둔 채 두 번이나 송출하면서, 그들이 추후에 또다른 고발자가 되어 대중 앞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점을 고민했단 티가 나는가? 내가 느끼기엔 전혀 아니었다(실제로 고민을 했다고 치더라도). 그 부분만 특별히 문제 삼으려는 건 아니지만, 부정할 수 없는 건 이 다큐가 그들을 오히려 숨게 만들지도 모르는 또다른 수치심의 낙인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단 것이다.
그래서 난 <나는 신이다>가 (PD가 공언한 대로) 사회적으로 순기능을 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따져보자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래의 문제의식들을 지표로 수량화해서 무엇은 몇 점, 다른 것은 몇 점 매기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따져보자면..
1. 많은 (사이비 종교 바깥의) 사람들이 몰랐던 범죄 사실과 가해자들의 면면을 알게 되었는가?
→ 이건 부정할 여지없이 맞음
2. 적은 수의 사람들이라도 이 다큐를 보고 자기들의 사이비 종교를 탈출하고 있는가?
→ 이건 아직은 아닌 것 같지만 두고 봐야겠음. 근데 솔직히 PD는 이 목적에 가장 방점을 찍고 있는 것 같지만, 사이비 종교 내의 그악스러운 세뇌와 폐쇄성을 생각할 때 우르르 집단 탈교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3. 이 다큐가 최소한 그 사이비 집단 내의 여자들이 더 당하는 것을 막고 있는가?
→ 이것 역시 장담할 수 없지만 앞으로 차차 어느 정도 역할을 하리라 희망을 걸고 기대하는 수밖에 없음
4. 피해자들의 얼굴과 신상과 피해 사실이 대중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었는가?
→ 너무 성공적으로 각인되어서 바로 그 지점이 문제.
개인적으론 모든 피해의 고발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목적은, ‘언젠가 잊히는’ 것,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피해 묘사가 피해자를 포함한 모두의 뇌리에서 지워지고 피해자는 사건의 여파에 영향받지 않는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누군가의 끔찍한 성착취 피해경험을 영원히 망각되지 않고 두고두고 회자될 방식으로 전 세계에 대고 박제한 것에 더 가깝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내게 가장 중요한 지점은 마지막 항목이기 때문에 우려가 크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신이다>는 자극적인 영상화를 통해 폐쇄적인 컬트 집단 내부의 썩은 면에 대한 공론화까지는 성공했으나 그다음 단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이게 많이 바이럴되고 퍼지면 한두 명이라도 더 탈교해서 나오겠지, 하는 듯한 나이브하고 무책임한 소망만 엿보여 아쉽다.
게다가 PD가 (특히 성착취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의 내용이나 세세한 워딩, 그 질문을 할 때의 태도와 말투, 아가동산 피해자의 유족이 자해할 때 ‘사실적 포착’을 위해 수십 초나 말리지 않은 것, 다큐에 삽입한 배려 없는 증거 영상들, 공포스러운 분위기 조성 말고 그 어떤 효과도 없었던 아기 노랫소리 같은 배경음, 1화 정명석 오프닝부터 반복적으로 사용된 ‘베일을 벗고 빛 속으로 나체로 걸어들어가는’ 여자의 이미지 등등으로 보아 판단하건대 그는 (좋은 ‘추격자’일 수는 있어도) 이런 식의 고발 다큐에 별로 적합한 연출자는 아니어 보인다.
조심성 없는 태도 속에 짭언론 인사이트나 패스트뷰(=사회고발의 기능을 하려는 척하면서 실은 기사 안에 언급된 실질적 피해자를 완전히 매장하고자 하는 악의를 숨긴 찌라시 제목장사 쓰레기 매체)가 품은 것과 같은 의도는 없는 듯해서 다행이긴 하지만. 분명한 건 그가 특정 성별에게만 주로 가해진 착취에 관해 사고할 능력이 있거나, 그 범죄 피해자들의 PTSD를 다루는 영상인으로서 정확한 윤리적 기준을 적용할 줄 아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다.
(PD수첩 출신 고연차 방송인인 것도 알고, 오래 준비했단 인터뷰도 다 찾아 읽었다. 또 생면부지의 PD남한테 이입해서 감싸주면서 인터뷰 읽어보긴 했냐, 업력이 몇 년이라더라 울컥하는 분들 분명 나오실 거 같아서^^ 잘 아시겠지만 경력 및 업력과, 섬세한 성인지 감수성과 배려와 통찰력 같은 것은 완전히 별개의 영역입니다.)
어느 부분들은 미숙했대도 이 다큐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일을 알린 것에 대한 공을 당연히 인정해야겠지만. 분명 아쉽고 모자란 지점은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도 좀 도를 넘는다고 느껴진다. 다큐 공개 후 한 달이 되어가는데 많은 설전이 있었고, 이 다큐를 옹호하는 사람들 VS.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럴 필요까진 없었다는 사람들의 주장도 각기 조금씩 살을 붙여가며 구체화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신이다>의 연출적 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논지가 가닿은 곳은, “현실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으니 외면하지 말고 모두가 있는 그대로 봐주어야 하며, 그걸 보여주는 렌즈의 무참함을 비판하는 자들은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나약하고 순진한 사람들”이라는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한데 정말 그러한가?
비슷한 맥락에서 왓챠의 일부 유저들은 이 다큐의 선정성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두고 ‘얼마나 좋고 귀한 것만 봤길래 겨우 이 정도도 못 버텨서 보기 싫어하냐’고 말하기도 한다. 요지는 뭐 쾌락적 심미주의 고어 예술에는 극찬을 보내놓고 이런 ‘현실의’ 문제에는 눈을 돌리냐는 건데, 일단 사이비가 사람 풀었다는 가능성만으로 비판 전체를 싸잡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논리적으로 몇 가지나 틀린 주장.
1) 이 다큐의 연출 태도에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과 고어한 아트 영화의 ‘체험적’ 면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아주 일부나마 겹칠 수는 있어도 완전히 같은 세그먼트는 전혀 아니며 (당장 나부터도 둘 다 싫어하는데;)
2) 같은 현실을 두고 다르게 연출할 수만 가지 방법이 있는데 (좋은 예로 계속 언급되는 <스포트라이트> 외에도, <신의 이름으로>나 <그녀가 말했다>처럼 소리나 ‘나체 사진 없는’ 플래시백과 음향, 재연과 대역 배우 등등 실존 인물들의 노출 없이 정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방식들) 냅다 사실 그대로의 화면에 의지하고 집착하는 지금의 노선을 택했다는 점이 당연히 아쉽고 화날 수 있고
3) 지적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이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의 유사한 성착취 범죄를 이미 너무 잘 알고 오래 봐와서 다시 마주하는 일 자체가 힘들었을 수 있음
4) 피해 사실 증언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보여줘야’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반이나마 ‘믿어주는’ 한국 사회 특유의 가해자 이입식 사고에 대해서는 저 리뷰 작성자조차도 전혀 의문을 품지 않고 있음
특히 3번과 4번이 가장 많이 간과되는 듯해서 아쉽다. 선정성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아마 평균적인 인지보다 이 부분에 훨씬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들이라서, 어쩌면 이런 피해를 직접 듣고 보거나 겪어보아서, 그래서 ‘잘 아는’ 일이기에 피해자들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자꾸 이야기하는 것일 텐데 ‘너희가 끔찍한 현실을 회피하는 거고 물정을 모르는 것이며 나는 이성적으로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였다’라고 하면... 글쎄 누가 공감 능력 부족일까.
실화 기반의 성착취, 성범죄 고발 영화를 두고 ‘000 엑기스’가 인기 검색어에 오르는 나라에서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건 아니냐고 나야말로 되묻고 싶다. 이 다큐에서 지적된 많은 장면을 오로지 야하고 자극적인 상황으로만 받아들여서 ‘나는 신이다 엑기스’를 돌려보는 남자들이 정말 없을 것 같나요?ㅋㅋ (당장 내 블로그에도 어제부터 열 명쯤이 그렇게 검색해서 들어오고 있다)
지금도 나는 신이다를 구글 검색하면 ‘나는 신이다 반신욕’과 정명석 피해자의 실명이 제일 먼저 연관 검색어에 뜨는데, 당신은 한국 남자를 아직도 그렇게까지 믿으십니까?
글 쓰느라 남초 반응도 좀 찾아보다가 더 역겨워져서 껐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다큐를 보면서 피해자의 '하드웨어'를 얘기하고 피해자를 은근하게 탓하거나 조롱하면서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르는 새끼들, 중년 여성 사이비 교주를 '할카스'로 지칭하는 새끼들이 청년을 대의한다고 자부하는 나라에 산다니까요.
피해자의 의지? 물론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피해자의 의지를 존중하는 것과 그를 보호하는 것은 다른 문제고, '피해자의 의지를 무조건 따라야 하기 때문에 연출자인 나는 어쩔 수 없었다'는 뉘앙스로 말하면서 그 뒤에 숨는 것은 또 완전히 다른 문제다.
권력형 성범죄 피해 당사자로서 말해보자면 피해자도 사건 고발 이후의 일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옳은지 잘 모를 수 있다. 혹은 고발 당시의 절박함,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에 ‘과하게 자세하게’ 피해 사실을 밝힌 후에 수년 후에 그 결정을 약간이나마 후회할 수도 있다(나는 그랬다).
대중과 피해자분들의 유일한 소통 창구인 PD는 ‘피해자들이 솔직한 고발 다큐를 원했다’ ‘피해자들이 왜 더 얘기하지 않았냐고 답답해했다’고 항변했지만, 설사 그분들이 정말로 성착취에 대한 면면을 정말정말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낱낱이 이야기해주길 바랐다고 하더라도 (난 그 '솔직함'에 대한 추구가 그 의미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감히 추측해보지만..) 그것이 피해자의 남은 삶에 어떤 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게 PD의 책임이고 의무 아닌가.
더 파고들면 결국 이 모든 사태가 1) 구체성 2) 실명성이 담보되지 않은 성범죄 고발은 ‘진짜를 말하고 있지 않다’고 일단 의심하는 유구한 정서 때문에 야기된 일일 텐데, 아무도 그런 인식에 대해선 얘기하고 있지 않은 게 더 이상하고 여전히 멀었다 싶다.
예를 들면, 몇 년 전 정치인 A의 피해자가 완전히 신상을 노출하기로 결정하고 당대 최고 시청률의 뉴스 방송사 황금타임 뉴스룸에 나와서 자기의 피해 사실을 이야기했을 때. 그렇게 하고 나서야 아 진짠가 보네, 하고 넘어가주던 분위기(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꽃뱀 정도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만)를 다들 똑똑히 기억할 테다. 그렇게 피해자가 자기를 다 걸어야 고발의 기회라도 얻을 수 있는 위험하고 일방적이고 불평등한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게 왜 문제적인지는 왜 아직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지? 왜 한국 사회는 “모든 피해자가 완전히 안전한 상태에서 익명성을 유지하며 고발하는 경우”에는 일단 무고를 의심당하고 반박당할 여지가 너무나 많아지는지, 그걸 먼저 따져보지 않으면 이 다큐에 얹어지는 모든 설왕설래도 아직 시기상조라고 느낀다.
나는 정명석의 가장 최근 피해자이면서 가장 먼저 얼굴을 보이고 기자회견을 열었던 그분이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 투쟁하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그 사람이 당시엔 달리 방법이 없어서, 너무 수세에 몰려 있어서 그렇게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나중을 위해 이제부터는 잘 숨어서 안전하게 싸웠으면 좋겠다. 다른 길이 있다고 말해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PD는 진짜 가슴에 손을 얹고 이 다큐가 바이럴 잘 되길 바라는 마음과 피해자들을 돕고 싶은 마음 중에 뭐가 더 컸는지 잘 생각해 보면 좋겠음. 단 하나의 장면이라도, 단 하나의 효과라도 '자극적이라 회자될 수밖에 없는 다큐를 만들기 위해' 넣은 게 없는가?를 생각하면 절대 아니기 때문에…
더 다듬을 힘이 없어서 3월 중순에 작성한 이 러프한 메모만으로 마무리해야겠다. 이것은 저의 나약한 멘탈리티와 역량 부족이 맞고요ㅎ
아무튼 보지 말라는 건 절대 아니라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어 나는 다소 불편했고, 그럼에도 이 다큐로 물꼬가 트인 모든 논의들이 유의미한 결론까지 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의견. 그리고 당연히 피해자들에 대한 연대와 지지의 마음이 가장 우선함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정말 소올직히 말하면 이단이든 아니든 이런 일은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데 이제 와서 세상에 마상에 어떻게 이런 반인륜적인 흉악범들이..! 하는 사람들도 짜증나고 우습다ㅎ <나는 신이다>에서 고발당한 사이비 집단들이 가장 누가 봐도 웃긴 형태로 사람을 통제하면서 대규모 미친 짓을 해서 그렇지 위력에 의한 (성)범죄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다고요. 기상천외하게 자극적이면 놀라고 안 자극적인 보도는 늘상 있는 일이니까 그냥 넘어가는 거야?
이번 일에 "정말이지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졌다고 깜짝 놀랄 수 있는 당신의 일상이 나는 여전히 부럽다.
원본은 저 모자이크마저 없다. 앞에서 차차 누적되던 불신이 여기서 폭발. 진짜 좀 많이 짜증나고 정말로 이런 폭로만이 최선인가 싶었음... 대안 없는 비판이라 저도 죄송한데요ㅎ 공영방송 PD의 경력과 머리로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이것밖에 없었는지 정말정말 안타깝다.
PD 인터뷰를 읽으면 시각적 재연을 주로 채택한 연출 의도가 좀 이해될까 싶어 열심히 찾아봤지만 여전히 100% 납득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느꼈을 위협감을 하나도 경험하지 못한 채 안전하게 사실을 전달받은 일개 수용자로서 공정함을 위해 인터뷰도 한 번쯤 함께 읽었으면 좋겠음.
노컷뉴스의 <나는 신이다> 비평도 글 쓰다가 뒤늦게 읽었고, 전반적으로 공감되는 논지라 함께 올린다.
일부만 발췌해왔으므로 전문 일독을 권합니다.
[다시, 보기]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가 얻은 것과 놓친 것
"... 그런 점에서 '나는 신이다' 속 범죄를 재현한 '영상'은 '사이비' '사실 증명' '반박'을 위한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에 대한 고민은 빠진 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피해자의 '증언' 자체는 전혀 성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다. 문제는 그러한 피해자의 증언을 '재연'하는 방식이다.
성폭력 피해자의 증언을 다루는 방식은 같은 넷플릭스 다큐 시리즈 '착한 신도: 기도하고 복종하라'나 넷플릭스 다큐 영화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만 봐도 알 수 있다.
근본주의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FLDS)의 예언자 워렌 제프스의 성범죄를 비롯한 각종 범죄를 고발한 '착한 신도', 선수들을 성적으로 학대한 미국 체조 대표팀 의사 래리 내서와 그를 비호한 미국체조협회를 폭로한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모두 피해자의 증언과 사건 당시 상황 녹취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착한 신도'나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는 굳이 재연 배우를 써서 상황을 재현해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진 않았다. 피해자의 증언만으로도 이미 당시 사건과 진실을 입증하는 데 충분하기 때문이며, '재연'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또 다른 형태의 미디어인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다룬 영화 '스포트라이트' 역시 영화임에도 피해자들의 증언을 시각적으로 재현하지 않는다.
재연 방식 외에 '나는 신이다'가 놓친 점은 피해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구조적인 문제로 이야기를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사이비 종교의 폐해나 성폭력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피해자가 그 피해 사실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알리지 않아서가 아니다.
개인 대 개인 혹은 개인 대 사이비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사이비 종교가 지금까지도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 하에 비호 아닌 비호를 받고 이어지는 이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위계에 따른 성폭력 등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야 한다. 오롯이 개인에게 맡겨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고 사회적인 고민이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 속 추기경이 신부들의 성폭력을 상습적으로 은폐한 증거를 찾아낸 기자 마이크(마크 러팔로)는 당장 기사를 내자고 하지만 로비(마이클 키튼)는 서두르지 말고 기다리자고 한다. 전체를 파악해야 한다고, 반복되는 성폭력과 은폐에 마침표를 찍을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역시 직접 가해자에서 시작해 이를 묵인하고 은폐한 시스템과 시스템 속 조력자를 찾아나간다. 여기에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영화나 다큐, 보도의 지향점이 있다. JMS 사건이 반복되는 배경은, 과연 피해자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구체적으로 증언하지 않아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이비 교주의 성폭력 사건에서 '사이비 교주'는 '스포트라이트'에서 볼 수 있듯이 '가톨릭 신부' 등 우리가 '사이비' '이단'이라 부르지 않는 또 다른 종교로도 대체할 수 있으며,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처럼 권력형 성범죄의 또 다른 가해자의 이름을 넣어도 성립할 수 있다. 모두 위계에 따른 권력형 성범죄이자 가스라이팅을 통한 성범죄이기에 '믿음'을 악용하는 시스템, '이단'도 종교의 자유 아래 두는 국가와 사법 체계 등 사회 시스템을 살펴봐야 한다.
(...)
우리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알지 못해도, 이미 그가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가해자가 나쁜 사람이고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신이다'나 '착한 신도'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가 성 학대 묘사에 대한 경고 문구로 시작하는 것은 그만큼 피해자와 사건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는 신이다' 속 경고 문구가 더욱더 아쉽게 다가온다. 시청자의 분노와 이 분노가 향해야 할 진짜 목적지를 제시할 때, 우리의 분노가 보다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경고 문구 형태를 빌린 선언을 담은 미디어의 고발이 제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