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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해 Apr 22. 2023

킬힐을 벗지 못한 이갈리아의 딸들, <퀸메이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3/04/19 여성신문 리뷰​ 기사는 이 글을 바탕으로 편집되었습니다.

​​



최근 한국 드라마 업계의 안전한 성공 공식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

1) 있는 자들의 비겁한 유착을 없는 자들의 처절한 연대로 부순다.

2) 그 ‘없는 자’들이 자본을 갖지 못했을 뿐 아니라 성별 권력을 갖지 못한 자들이라면 더욱 좋다.

김희애와 문소리를 필두로 해 서이숙·진경·김선영·김새벽 등 묵직한 배우들을 내세운 <퀸메이커>도 이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여기에 <퀸메이커>만의 탁월함이 있다면, 강력한 여성 인물만으로 극을 꾸려 <이갈리아의 딸들>을 연상시킬 만큼 판타지에 가까운 성비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껴지는 것은 최근의 트렌디한 여성 서사 드라마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퀸메이커> 역시 언더독 여성 서사의 깊이를 고민하기보단 그 여성 서사가 ‘잘 팔린다’는 사실에만 집중한 듯해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본격적인 긴장은 바닥부터 기어올라와 대기업 오너 일가의 유능한 해결사가 된 황도희(김희애)가 오너의 사위에게 성폭행당한 여직원을 내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믿어주지 않은 후배 여성의 자살에 큰 충격을 받은 황도희는 더 이상 옥상에서 떠밀리는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해 애쓰다가 인권 변호사 오경숙(문소리)과 조우하고, 너무나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여자가 ‘더 좋은 세상’이라는 다소 밋밋하지만 낭만적인 이상을 위해 의기투합한다는 이야기다.

권력이 역사적으로 남성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권력을 잡으려는 (여)자는 필연적으로 남성을 모방하고 남성을 사랑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면, 황도희와 오경숙은 결국 그 중간 과제에 실패하고 권력에 도전하는 대안적 방식을 제시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내민 무기는 물론 이해와 공감과 애착에 기반한 정석적인 여성 연대다.

‘옥상’이란 역린이 생긴 후 고인이 된 성폭력 피해자의 마지막을 상상하며 밑을 내려다보는 황도희의 표정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것이 바로 공감이며 공감을 할 줄 아는 자는 본래 권력자가 되기 어렵다는 슬픈 선고가 내려지는 것만 같다. 10년간 오너의 충견으로 일했으면서도 빈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회장님의 방식’엔 동의하지 않는다는 언급부터 그의 각성은 예고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황도희는 사냥개와 떨어진 새 중 차라리 사냥당한 새가 되어 약한 자의 긍지를 지키기를 선택한다.

반면 오경숙은 등장부터 부당 해고된 여성 노동자를 위해 고공농성 중인 변호사로, 그야말로 타인의 고통을 자기 것처럼 생각하는 이다. 싸움의 명분도 있고 본능적 감각도 있는데 기술이 없던 투사와, ‘안정제가 통하지 않는’ 재래시장의 현실을 모르던 쇼 비즈니스 전문가가 서로의 앎을 채워주며 목표한 권력의 정점에 도달하는 과정은 분명 감동적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 “나한테 인생을 바친 그런 여자를 버리란 말이냐"라며 화내는 오경숙의 대사는 정통 로맨스를 방불케 한다.



여기에 대여한 권력에 눈먼 여자, 동료 여성에 대한 공감을 포기하고 권력자 남성의 사랑놀음에 동참하는 여자, 전통적인 남성 악인의 롤을 흉내 내며 사다리를 걷어차는 여자 등 역시 성별이 바뀐 악인들이 얹어진다. 유력 정치인 서민정이 예쁘고 젊은 남자와 저지른 불장난이 발각될까 동요하는 장면이나, 은성그룹의 큰딸 서진이 ‘장녀 노릇’을 하겠다며 굴러들어온 남자를 제거하기 위해 용쓰는 장면, 둘째 딸 채령의 애정결핍이 (몇백 년 동안 인기 있었던 서사처럼) 부자 관계가 아닌 모녀 관계에서 연유했단 사실이 암시되는 장면 등에선 성비의 반전을 넘어 성역할을 반전시키는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순간 기대가 들기도 한다.

그렇듯 고위 정치인이나 기업가가 여성이란 점을 유난스럽게 강조하지 않고 오히려 힘을 빼 ‘당연하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한 것은 분명 이 드라마의 놀라운 진보다. 하지만 은성백화점 여성 노동자들이나 재래시장의 상인 등 권력의 하층부를 그리는 데에는 상층부의 묘사만큼 공들이지 않아, 주요 인물의 성비 반전을 넘어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이 한계로 남는다.

게다가 극적 효과를 위해 고인이 된 성폭력 피해 여성의 동의 없이 전 국민 앞에서 실명을 노출시키는 경솔함, 딥페이크를 악용한 성범죄에 대한 가벼운 소비, 남용되는 ‘가스라이팅’이나 ‘성적 학대’라는 용어들이 불러오는 실망은 덤이다. 드라마 제작진이 한국 정치의 미흡한 면면에 대한 사실적 구현을 의도했다 하더라도, 이제 현실의 사실적 재연 이상으로 나아갈 때 아닌가.

놀라운 존재감을 자랑한 손영심 회장(서이숙)이 이미 정경유착 카르텔의 수장처럼 버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진짜 머리는 이 사람’이라고 하는 듯 뒤늦게 등장한 이경영의 존재 역시 여성 서사를 표방하는 창작물치곤 너무나 잘못된 선택이다. 왜 손영심 정도 되는 인물이 욕심 많은 총수 단신으로 성공할 수는 없고 반드시 늙은 남자 칼 윤을 뒷배 삼아야 하는가.


능력 있는 여성은 외모까지 완벽하게 자기관리해야 한다는 낡은 믿음이라도 멋지게 파훼되길 바랐건만, 겨우 코르셋을 벗어던지는 동작으로 간단한 카타르시스를 노린 부분은 드라마를 통틀어 최고로 유치한 장면으로 기능하고 만다. 탈코르셋이란 시대정신에 편승하기 위해 먼저 몇백 년 전 유행했던 코르셋을 입혀야만 하는 게, 여성의 의지와 자존감을 나타내기 위해 매일 킬힐을 신겨야만 하는 게 아직은 벗어날 수 없는 시대적 한계일까. 이왕 판타지가 되겠다면, 탈코르셋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선언해야만 했다면, 기왕 오랫동안 외모 평가의 덫에 걸려있던 능력 있는 여배우들을 대거 기용한 참이라면, 여성 정치인과 기업인이 ‘아주 당연하게’ 화장을 하지 않는 세계관을 상상해 봐도 좋지 않았을까.​


애초에 황도희의 노동은 태생적으로 여자를 치장시키는 비주얼 노동이다. 그는 총수 일가의 문제투성이 딸들을 지키기 위해 제대로 된 블레임 룩을 준비하고, 오경숙을 TV에 내보내며 ‘외모의 약점이 도드라지지 않게’ 또 ‘진실된 목소리보다 망가진 이미지만 기억되지 않게’ 라인이 확 살아나는 코르셋을 채워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황도희와 오경숙의 투쟁 방법이 계속해서 대비되며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 중에 표면적으로는 황도희가 오경숙에게 더 많이 감화된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오경숙의 방식에 황도희가 아름다운 패배를 보여주지 않고 끝까지 고집을 지킨 단 하나의 요소가 바로 이 꾸밈노동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결국 제작진이 진단한 ‘여성이 이기는 방식’은 아름다움을 놓지 않는 것을 포함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오경숙의 선거 캠프에서 중히 쓰이는 여성들의 자질은 화수 언니나 온원을 위시한 복직 노동자 여성들의 의지나 연대감이 아니다. 그 캠프에서 가장 중요한 협조자는 뜬금없게도 도희가 데려온 스타일링, 메이크업 전문가 여성들이다. 주인공보다 더 튀는 린조의 패션이 전반적인 화면 톤을 망친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그 ‘메이크업 전문가’들의 지나치게 높은 화면 점유율은 충분히 거슬릴 만한 요소이며, 이 점유율이 암시하는 바는 명확하다. 황도희와 오경숙뿐 아니라 현대 한국에서 권력을 잡으려는 여자들은 ‘자신을 프로로 보이게 해 줄’ 꾸밈노동을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경고다.

이 드라마의 제작진은 여성이 권력이 잡는 일에 대해 줄곧 이야기하고 있으면서도 애초에 잘못되어 있던 전제에 대해서는 단 한순간도 의문을 품지 않은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정말 ‘탈코르셋 선언’을 하고 싶었다면 최소한,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수감되기 전의 황도희가 한 번쯤 킬힐에서 내려와 오경숙의 자리에 서 보는 연출 정도는 필요하지 않았을까.


결국 세습형 자본주의 하에 형성되는 권력자들의 카르텔을 꼬집는 체 시작한 <퀸메이커>가 마지막에 이뤄낸 것은 성별 반전된 자본가 개인에 대한 복수에 불과하다. 여성을 치장시키는 자본주의, 저임금 노동에 영원히 머무르게 하는 자본주의에는 시원한 반발 없이 현실 그대로의 모습에 천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진부한 드라마를 옹호하고 싶은 것은 그간 방송가에서 이만한 작품이라도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회에서 황도희는 오경숙에게 “난 널 만나서 진짜 좋은 세상을 알았고 분에 넘치게 좋은 사람들을 얻었어. 오경숙 아니었으면 죽어서도 몰랐을 행운이지. 내 행운을 네가 끝까지 지켜줬으면 좋겠어.”라고 이 드라마가 의도한 감정선을 총정리하는 말을 남기는데, 이는 손 회장이 사위 백재민에게 전한 “내 딸이 네놈의 평생 대운이니 꽉 붙들”라는 말과 완벽한 대구를 이룬다. 눈에 띄는 헤테로 로맨스 없이 온통 서로에게 애틋한 눈길을 보내는 원숙한 여성 배우들의 호연으로 서사적 구멍을 메꾸려는 시도만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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