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사람의 힘

곽아람, <공부의 위로>

by 꿈꾸는 앤

내가 어려서부터 꾸준히 해온 게 딱 한 가지 있는데 그건 바로 책읽기다. 해보고 싶은 것도 있었고, 잘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슬럼프 없이 말그대로 꾸준히 읽었다. 나의 독서 목록은 특별히 깊이 있지도 않았고, 내세울만한 것도 아니며, 나의 독서 활동을 기록하거나 책 읽기 활동이 다른 영역으로 확장되지도 않았다. 마치 숨쉬듯 그냥 읽어왔다.


생의 전환점을 지나가는 요즘에 와서 그 동안 삶에서 내가 이뤄온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니 막상 수 많은 시간들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내 손안에 내가 이뤄서 만들어 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허망함과 공허함. 그래도. 그래도 한 가지 뭐라도 계속해서 해온 것이 뭐냐고 한다면 그건 계속해서 읽어왔다는 것뿐.


그렇다면 '읽기'라는 행위가 나의 삶에서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취업이나 승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자체로 경제활동이 되지도 않는다.(물론 요즘은 북인플루언서로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하고 감상을 이야기하며 돈을 버는 사람들도 많다는데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어찌보면 무용한 일을 수 십년 해왔다. 무용한 정도가 아니라 그 동안 책 사는데 쓴 돈을 생각하면 오히려 마이너스일지도.


<공부의 위로>의 곽아람 작가는 책 읽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누구에게나 마음 속에 바닥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누군가에게 바닥을 보여야 하는 순간이 오는데, 그 바닥이 정말 최악은 안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책 읽기라고. 그 순간 절대로 잃지 말아야 할 인간성과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


나도 그럴까. 내가 읽어 온 수 많은 책들이 나를 조금은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줬을까. 돌이켜보면 가장 적절한 순간에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만났던 책들이 있었다. 나의 심장을 내려앉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들었던. 그런 책들이 절망과 우울의 늪에 빠진 나를 끌어 올렸다. 두 발을 땅에 딛고 살아가게 만들었고, 아침에 눈을 뜨고 출근하게 만든 것이다.


오랜 시간 놓지 않고 계속 해온 것이 있다면 나에게 필요한 것이고, 나와 맞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당장은 효용 가치가 있는 것 같지 않더라도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알 수 없다. 어린 시절 책꽂이 앞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꺼내 읽고 오랜 시간 내 손에 책을 쥐고 읽을 수 있었던 삶이어서 감사하다.


나의 독서 활동이 약간의 변화를 맞은 건 최근 몇 년 동안이다. 북클럽을 통해 여러 사람과 글을 읽었고, 책을 읽은 후의 나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기 시작했고, 내 취향이 아닌 책들도 읽어 보았다. 책 읽기는 개인적인 활동이지만 요즘처럼 온라인으로 연결된 세상에서는 책 읽기 활동이 다양하게 연결되어 공동의 경험이 되기도 한다. 책 읽기의 경험이 무르익고 세상이 변해감에 따라 나의 '읽기'도 달라진 것이다. 가능하면 더 깊어지고 넓어지길 바란다.


마음을 끌어올려 신에게 드리는 일은 공부를 통해 정신을 고양시키는 일과도 닮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건 그 어떤 신도 아닌 스스로에게 기꺼이 바치는 제물이라고 여기면서 오래전 라틴어 수업 시간에 배운 문장을 하나 옮겨 적어본다.
Sapiens nihil facit invitus nihil iratus (현명한 이는 어떤 것도 마지못해 하거나 분노한 채로 하지 않는다.)
교양이란 학식과는 다르다. 교양은 비정한 현실 속에서, 더 비정하거나 덜 비정한 세계를 상상하고 그에 틈입할 여지를 준다. 그러한 자유라도 있기에, 우리는 지치지 않고 생의 수레바퀴를 유연하게 굴릴 수 있는 것이다.
교양이란 완벽한 지식 체계가 아니다. 자신의 세계를 공고히 하되 다른 세계가 틈입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교양이란 겹의 언어이자 층위가 많은 말, 날것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일, 세 치 혀 아래에 타인에 대한 배려를 넣어두는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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