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나를 남긴다

by 유후용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릴 적에 난 막연히 사랑받고 싶었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주고, 내 옆에 있어주고, 나를 먼저 불러줄 때마다 세상이 조금은 더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아니, 지금도 잘 모른다. 다만 분명한 건 내가 원했던 사랑은 어떤 특정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는 특정한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게 아니라 사랑받고 있는 ‘나 자신’을 보고 싶었던 거다.

사랑받는 나는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다. 결점도 용서받고, 실수도 이해받고, 하루의 울퉁불퉁한 감정들까지도 고요히 안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건 마치 내 존재 자체에 도장이 찍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너는 여기에 있어도 된다고.

그러니 어쩌면, 나는 사랑이 아니라 한없이 받아들여지기를 갈망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사랑이란 걸 하게 되면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원래의 내 말투가 변하게 되고, 웃음이 조금 더 자주 터졌고, 상대의 취향에 관심이 생겼다. 그것은 자연스럽고도 낯선 변화였다. 마치 내가 나 스스로를 조율해서 사랑받을 만한 주파수에 맞추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받는 순간은 어딘가 비어있던 내 안에 조각 하나가 맞춰지는 듯한 안도감을 주었다. 불안으로 일렁이던 내면은 잠시 잔잔해졌고 타인의 긍정은 흐릿했던 나를 선명하게 채색하는 물감 같았다. 그래서 나는 상대가 원하는 모습의 조각들을 찾아 헤맸다. 날카로운 모서리는 다듬고 흐린 부분은 광택을 내면서.


사랑은 때론 보이지 않는 저울 위에서 무게를 재는 듯 위태로웠다. 나의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잃고 상대가 좋아하는 형태로 끊임없이 변형되기를 스스로에게 강요받았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구겨 입듯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벗어던질 수 없었다. 그 옷이 곧 '사랑받는 나'라는 이름표였으니까.


상대의 작은 변화에도 나의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상대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하루 종일 내 마음을 둥실 거리게 했지만 반대로 상대의 굳게 다문 입술은 밤새도록 풀리지 않는 불안을 그림자처럼 드리웠다. 상대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나의 존재 의미가 매달려 있는 것처럼 나는 늘 초조하게 상대의 반응을 살폈다. 상대는 나의 세계를 비추는 유일한 빛이었고 그 사람의 표정은 곧 나의 존재 증명과 같았다.


나는 사랑할 때마다 그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애썼던 것이다. 다정하고, 배려 깊고, 상처 주지 않는 사람. 처음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변했고 오랜 연애를 한 이후엔 그게 진짜 나인 줄 알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상대방에게 칭찬받거나 감동을 줄 때마다 더 외로워졌다.


어쩌면 나는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사랑받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꾸며낸 사랑이 오래갈 리 없다는 걸 내 안 한 켠에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사랑에 빠질 때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계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정도의 나를 보여주면 사랑받을 수 있겠지.” “이 정도는 참아야 그 사람이 나를 떠나지 않겠지.” 그렇게 사랑은 흥정이 되고 내 마음은 자꾸만 나에게 맞는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옷을 상대에게 맞춰 입으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런 옷을 입고 있었을까? 왜 나는 그토록 누군가에게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을까? 그 질문의 끝에는 늘 같은 단어가 있었다. 그것은 '두려움' 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사랑할 줄 몰랐기에 상대를 빌려 내가 괜찮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 혼자 있는 나를 견딜 수 없었던 시절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거울을 붙잡고 있었다. 그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을 때만 나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 사랑이 떠나가면 나는 다시 투명해지고 아무도 발견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사랑은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참 절박했다.


한때는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스스로를 믿지 못할 때 타인의 시선은 너무나도 쉬운 위안이 되었고 또 위험한 기준이 되었다.


사랑받는 순간에는 모든 것이 괜찮아 보인다. 내가 한 실수조차 “그럴 수도 있지”로 치환되고 못나 보이던 내 모습도 따뜻하게 감싸안는 시선 속에서 다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그 모든 따뜻함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불안을 안고 있는지를 말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사랑하는 상대의 기분을 살피는 데 하루를 다 쓰고 있었다. 그 사람이 웃는 날이면 마음이 놓였고 말수가 줄어든 날이면 내 잘못은 없었는지를 반추했다. 그리고 그런 내게 너무 익숙해졌다는 사실에 가끔 스스로 놀랐다. 내 하루가, 내 기분이, 내 존재감이, 누군가의 판단에 좌우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충분히 슬픈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날 사랑해주지 않으면 나는 의미 없는 존재인가?”

그 질문은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을 열기도 했다. 그 사람 없이도, 아니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여기에 존재하고 있고, 숨 쉬고 있고, 모든 것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은 그토록 외롭고 고된 과정 끝에 깨달은 것이었지만 동시에 진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내 가치는 누구의 말로도, 감정으로도 규정될 수 없다."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아무리 누군가가 날 사랑해도 그건 잠깐의 위로일 뿐 나는 또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그렇다 해도 사랑은 여전히 소중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랑이 나의 전부일 수 없을 뿐이다. 나는 나를 잃어가면서까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지 않다. 내 가치는 누군가의 사랑이 덧붙여져야만 완성되는 무언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시작된 이야기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랑받는 사람이기 이전에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사랑의 끝에서: 내 안의 지도를 다시 그리다


상처는 예고 없이 다가온다. 어쩌다 사랑을 했고 그것이 끝났을 뿐인데 그럴 때마다 나는 멈출 수 없는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허우적거렸다. 어떤 날은 분노가, 어떤 날은 자책이, 또 어떤 날은 그리움이 나를 점령했다. 감정은 정신없이 요동치고 나는 그 안에서 종종 길을 잃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고. 하지만 그 ‘괜찮아진다’는 말이 얼마나 무의미하게 들릴 수 있는지도 나는 안다. 상처는 시간 속에서 희미해질 수는 있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 자리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아주 작은 일에도 다시 욱신거린다.


그러나 시간이 가르쳐준 것도 있다. 나는 결국 살아남았다는 것. 아팠고, 부서졌고, 울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 졌고 다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상처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유연하게, 더 조심스럽게, 더 솔직하게 만들었다. 아파도 결국 나는 밥을 먹었고, 잠을 잤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했다.

상처는 피해야 할 낙인이 아니라 지나온 마음의 연대기일 뿐이었다. 그 모든 과정의 기억은 내가 사랑했고, 전심으로 다가갔으며, 진심으로 연결되기를 바랐다는 것의 작은 역사다. 나는 냉정하게 역사를 써 내려가는 자세로 나의 기억을 보며 그 과정의 흔적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상처가 있다는 건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었던 적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상처가 아니라 단지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사랑은 때때로 우리를 아프게 한다. 그러나 그 아픔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섬세해지고 조금 더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지난 기억을 천천히 돌아보며 사랑의 상처는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진실한 방식으로 나를 만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상처를 끌어안는다. 그 안에 아직도 남은 부끄러움과 두려움과 미련까지도 말이다. 그것마저도 나를 만든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사랑의 시작: 내 안의 풍경을 마주하는 용기


헤어진 이후 사랑 없이 지낸 시간이 처음엔 낯설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무언가 중요한 걸 놓친 듯한 공허함이 하루를 따라다녔고 나는 자주 외로움과 혼란 사이를 오갔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나,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않는 나는 왠지 공기처럼 흐릿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채로 지내면서 점차 깨닫게 되었다. 사랑이 없다고 해서 내가 비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오히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고 보내는 하루, 나 스스로가 괜찮아 보이려고 애쓸 필요 없이 흘러가는 시간, 내 감정이 오롯이 나의 것이라는 느낌 속에서 말이다.

나는 더 이상 어떤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는가의 유무로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 외로움이 찾아와도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여행을 떠나는 그 순간들이 이제는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채워지는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구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는 하루가 아니라 내가 나를 다독이고 바라보는 하루. 그것이 얼마나 편안하고 따뜻한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사랑이 전부였던 시간을 지나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아무도 나를 보아주지 않아도,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나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삶의 한 방식일 뿐이었다. 그러니 오늘 이 하루가 사랑 없이 지나간다 해도 괜찮다. 나는 여전히 나를 살고 있으니까.

다만 여전히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늘 내 안에 있었다. 하지만 진짜 사랑이란, 받기만을 원하는 마음에서 머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늘 사랑을 갈구했다. 누군가가 나를 안아주기를, 이해해 주기를, 먼저 다가와주기를.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상대가 원하는 사랑을 주는 존재였던 적이 있었을까?”


누군가의 진심을 깊이 알아차리고, 조용히 곁에 있어주고, 내 사랑을 먼저 건네는 사람. 어떻게 보면 가볍게 다가가는 동시에 단단하고 야무진 상태.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어느 날, 매우 힘든 일을 겪고 괴로워하는 친구의 문자를 받고는 몇 시간 동안 답장을 고민했다. 어떻게 말해야 위로가 될까, 너무 건조하게 느껴지진 않을까, 나까지 버거운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조심스럽고 서툴게 사랑을 건네는지를 깨달았다.


사랑은 단지 마음이 아니라 용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은 때로 거절당할 수 있고, 어긋날 수 있고 변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먼저 마음을 내민다는 건 나를 스스로 괜찮은 사람으로 믿는다는 뜻이었다. 사랑받는 내가 되기 위해 애쓰던 시간을 지나 나는 사랑을 줄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을 나 자신의 삶에서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건 완벽하거나 멋진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내가 나를 믿는 만큼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온기를 더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나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그 사랑받는 나를 나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오랫동안 '받아들인다'는 말을 오해하고 있었다. 그건 그냥 묵묵히 참는 거라고, 말없이 참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눌러 견디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랑도 그런 거라고 믿었다.
상대의 못난 점을 참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 말들을 묵인하고, 그 사람의 서툰 모습에도 괜찮다 말하며 삼키는 것. 그게 사랑이라 여겼고, 그래서 나는 자주 지치고 멀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받아들인다는 건 단순히 참고 견디는 일이 아니다. 그건 상대를 더 깊이 바라보고 싶어지는 마음이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했을까?’를 비난이 아니라 진짜 궁금함으로 바라보는 마음. ‘아 저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고 속으로 되뇌며 그 사람의 말 너머에 있는 시간들을, 그리고 서투름을 떠올려보는 마음.

그렇게 상대의 다름을 그저 이해하고 싶어질 때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너와 나의 풍경이 된다. 마치 내가 그 사람 내부에 있는 마을을 천천히 산책하는 것 같은 느낌, 그런 조용한 도보 여행이 된다.

나는 그 마을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고, 비를 만날 수도 있지만, 여전히 그 풍경 안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킨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은 사실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 마음은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고 부드럽게 만든다.


예전의 나는 관계 속에서 불안을 참지 못했고 상대가 내 기대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당황했고, 그 당황을 분노로 삼키며 상대의 탓으로 돌리기 바빴다. 하지만 사랑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거치며 나는 깨닫게 되었다. 사랑이란 ‘나는 너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너를 투명하게 바라보고 싶어.”


그리고 그런 마음을 품은 나는 이전보다 훨씬 사랑에 대해 견고한 모습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안다.

사랑은 수용이다. 그 사람이 아직 다 말하지 못한 것들까지도 느끼며 천천히 기다리는 일이다. 상대의 말과 행동이 어긋나고 이상해 보일지라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배경으로 느끼려는 것. 나는 당신의 세계에 무전여행을 오게 된 여행자일 뿐, 당신의 세계를 통치하러 온 사람이 아님을 아는 것.


그리고 마침내, 아무 말 없이도 상대 옆에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제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사람을 판단하기보다는 그 사람을 하나의 긴 이야기로 듣고 싶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내 자리를 지긋이 만들고 싶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나는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예전 같으면 참지 않았을 말에 이젠 조용히 침묵하게 되고 전에 익숙했던 방식으로 상대에게 되받아치기보다는 한 걸음 멈추게 된다.
사랑은 누군가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그 사람 곁에서 투명한 나 자신이 되고 싶어지는 변화의 시작이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봐주었는지보다, 내가 어떤 존재로 당신에게 다가가고 있는지를 더 돌아보게 되는 마음이다.

예전엔 사랑이 두려웠다. 사랑은 끝내 상처를 불러오고 상대가 나를 떠나갈 수 있다는 공포를 데려왔다.
그래서 나는 먼저 변하지 않으려 애썼다. 괜찮은 척, 이미 다 그런 줄 아는 척, 나를 바꾸는 걸 약함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이란 내가 나 자신을 다시 쓰게 만드는 이야기다. 그것은 마치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은 여행 같은 일이다. 사랑은 단 하루를 위한 무언가가 아니라 상대와 더 깊이 마주하기 위한 오랜 연습이다.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그 사람 곁에서 얼마나 투명한 나 자신일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사랑하는 나는 너와 대화하는 내 말투를 기억하고 싶다. 내가 한 말과 하지 못한 말들을 곱씹으며 지금을 보되, 너와 함께 하는 미지의 내일을 상상하고 싶다.


사랑은 거울이다. 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면 나는 비로소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안다.
사랑은 나를 고치게 하는 힘이 아니라 나를 새롭게 발견하게 하고 열어주는 부드러운 열망이다.


사랑이 끝나면, 사람들은 흔히 질문한다.

“그 사람과 지내는 거 어땠어?”

하지만 나는 이제 사랑을 끝낸 누군가에게 조금 다른 질문을 떠올린다.


“그 사랑을 지나온 너는 어떤 사람이었어?”


그 사람과의 날들, 그 모든 소란과 고요 속에서 나는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화를 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순간들, 오해하고도 돌아서지 않았던 나날들. 그 안엔 늘 ‘사랑하고 싶었던’ 내가 있었다.

사랑은 타인을 위한 일인 듯 보이지만 결국은 나를 발견해 가는 일이다. 상대를 위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그 사람 때문인 듯하지만 실은 내가 스스로에게 사랑스러운 것이 어떤지를 묻는 나에 대한 질문이다. 사랑은 정답을 찾는 문제가 아니다. 맞고 틀리고의 영역이 아니다. 그건 단지 함께 머물고 싶어지는 풍경이 만들어지는 일이다.

누군가와 함께했던 기억 속에서 아련히 기억하게 되는 장면들은 작은 말 한마디, 조용한 기다림, 혹은 그냥 나란히 앉아 있던 침묵 같은 것들이었다. 특별할 것 없이 그저 서로가 서로를 감싸는 공기 같은 시간이었다.


사랑은 타인을 위한 일인 듯 보이지만 결국 나를 발견하고 완성해 가는 여정이었다. 내 가치는 누군가의 사랑이 덧붙여져야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시작된 이야기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랑받는 사람이기 이전에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