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현실

by 유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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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름으로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사랑받는 나'는 누군가의 마음이 덧붙여져야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시작된 이야기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내 가치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을 때 나는 사랑을 더 넓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원했던 사랑의 모습과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우리는 사랑을 사랑이라 부르지만 그 안에 숨겨진 다양한 주제와 감정의 얼굴들은 저마다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제 나는 그 사랑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보려 한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에 서툴렀던 우리 모두의 이야기, 혹은 아직은 그 길 위에서 헤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은 흔하고 자주 하는 이야기다. 특히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혹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사랑 얘기는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 '사랑이 무엇이다' 라고 정의를 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뭉뚱그려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사랑이 어디에나 있는 이유는 영원한 신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생각하는 식의 사랑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은 늘 영원한 신비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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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사랑이라 부르는 이 감정의 실체는 사실 다양한 방식의 모호한 만남들이다. '인간과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서로 맞춰지게 되는가'에 대한 여러 방식, 우리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다양한 모습, 그리고 그 다양한 모호함을 우리는 그저 '사랑'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 뿐이다. 마치 무지개 빛깔의 여러 색을 그저 빛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모두 외롭지 않은가? 이것이 진실 아닌가? 누구를 사랑하든지, 그 사랑이 얼마나 깊던지, 그것이 부모든, 자식이든, 연인이든 우리는 모두 그것이 '그' 사랑이 아님을 언제나 알고 있다. 우리가 이 육체로는 그 완전한 사랑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궁극의 사랑에 도달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사랑을 찾아 헤매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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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나와 너’라는 환상 속에서 사랑을 잃는다. 사랑은 설명되지 않는다. 설명될 수 있는 사랑은 언제나 어딘가 미완성이다. 사랑을 설명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은 온전함일 것이다. 모든 것이 함께 경험되는 온전함. 나와 당신이 서로에게 분리되지 않은 존재로서 남는 것.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혹은 그리워하는 궁극의 사랑일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사랑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와도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각자는 사랑의 다른 조각일 뿐이고, 사랑은 언제나 우리를 넘어 존재한다. 그러니 이제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일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그 믿음이야말로 사랑에 있어 슬픔을 만든다. 사랑에 대한 모든 고통은 그렇게 사랑이라는 것을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정의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되곤 한다.


한때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랑받는 나’가 되는 길을 찾아 헤맸다. 그 시절의 고통은 결국 사랑이라는 환상에 기대어 외로움을 달래려는 집착이었다. 이제 나는 그 환상에 더는 갇히지 않으려 한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우리가 사랑이라 착각해 온 다양한 이름들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그것들은 우리 삶에서 가장 깊고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사랑의 얼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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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계산법 1 : 사랑과 조건


사랑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지 못할 때 우리는 이 사랑의 덫에 빠져 깊은 혼란과 고통을 겪게 된다. 대체로 사랑을 할 때 사람들은 둘 사이의 관계의 불균형 때문에 괴로워한다. 나는 이만큼 사랑하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고 느끼며 상심에 빠지기도 한다.


사랑이 시작될 때 우리는 무의식 중에 저울을 꺼내든다. 한쪽에는 내가 사랑을 위해 쏟아부은 헌신과 노력, 다른 한쪽에는 상대방이 나에게 돌려준 애정과 관심이 올라간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너는 고작 이만큼밖에 안 하는 거야?"라는 질문은 사랑에서 가장 흔한 이야기 중 하나다. 이 저울질은 사실 사랑의 깊이를 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고 그에 대한 보상을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를 따지는 계산이다.


이러한 감정은 자신도 모르게 사랑의 가면을 쓰고 관계에 깊숙히 들어선 이들에게서 특히 자주 발견된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이 텅 비어 있다고 느끼고 누군가가 자신을 채워주기를 갈망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관계는 곧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고된 과정이 된다.



사랑을 주제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실제 인터뷰를 진행했다.


소라(가명)의 이야기


“처음 남편이 결혼하자고 할 때 저는 조건이 몇 가지 있었어요. 우리는 둘 다 모아놓은 돈이 별로 없이 시작했거든요. 남편에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함께 한다고 해 주면 결혼하겠다'고 했어요. 그건 자기계발 공부였어요. 제 결혼 조건이었죠. 물론 제 속마음은 ‘이런 것을 공부해야 당신과 내가 성공하고, 우리가 생존할 수 있다'는 계획이 깔려 있었어요.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에 사랑을 할 때도 현실적인 성공과 물질적인 안정을 놓칠 수가 없었죠.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제가 세운 조건들이 오히려 관계를 빡빡하게 만들었어요. 사랑은 동업자 관계라며 함께 성공을 위해 달려가자고 밀어붙였지만 결국 남편은 점점 지쳐갔죠. 저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에게는 제가 너무 야심차고 정이 없는 사랑이었던 거예요. 그제야 깨달았어요. 사랑은 성공만을 향해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휴식과 여가를 함께 나누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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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가명)는 결혼 생활을 하면서 사랑에 있어 더는 계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마음속에는 늘 또 다른 계산이 있었다고 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것, 이게 아니라면 저것. 둘의 성공을 위한 프로젝트는 계속 되었다.

그녀에게 사랑은 곧 생존과 성공의 문제였고 그건 언제나 경제적 문제였다.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사랑조차도 성공적으로,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소라는 자신의 그런 뜨거운 열망을 사랑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남편은 서서히 지쳐갔다. 소라가 밀어붙인 사랑은 상대에게는 야심차고 정 없는 계약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끝내 알게 되었다. 사랑은 반드시 한 걸음 물러섬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같이 밥을 먹고, 가끔은 나른하게 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들 속에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그녀는 점차 깨닫게 되었다.


소라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종종 사랑을 통해 함께 성공이라는 보상을 얻으려 한다. 이러한 사랑은 함께 부유해지고, 성공하는 것에 집중하는 사랑이 된다. 그런 사랑은 ‘우리가 함께 잘 해냈다'는 느낌을 통해 사랑을 더 돈독히 한다. 돈이 없으면 아무리 사랑해도 고통받는 관계의 현실 속에서 함께 이루는 성공은 곧 사랑의 증거가 된다. 이 때문에 이런 사랑은 함께 보내는 시간 그 자체가 아닌 서로의 재능과 가능성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가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근본적인 애환이 숨어 있다. 바로 의존성이다. '너 없이는 내가 성공할 수 없어', '너를 위해 내가 너를 물심양면으로 도울게'라는 생각은 결국 관계를 지나치게 의존적인 형태로 만들 수 있다. 누군가에게 강하게 의존할수록, 우리는 상대에게 '사랑으로 성공하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에 빠지게 되고, 이는 곧 ‘성공할 수 없는 상대에 대한 분노와 무관심'이라는 차가운 보호막을 치게 만들기도 한다.


채연(가명)의 이야기


"저도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름 그림이 있었죠. 그런데 강요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주 무관심한 척하는 게 저만의 사랑 방식이었어요. 제 마음 속에는 상대에 대한 기대와 조건은 있었지만 그래도 상대에게 조건을 따지지 않으려고 했고, 그것이 저의 사랑에 있어서 정직함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런 것이 오히려 관계에서는 무관심으로 보였을 거예요. 저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끔 상대는 저의 차가움에 오히려 더 실망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무관심했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불안했어요. '이 사람과 함께 가는게 맞나?'라는 두려움이 가득했죠. 겉으로는 무관심했지만 속으로는 불안과 분노가 가득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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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연의 말처럼 사랑을 무관심으로 표현하는 이들은 종종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너는 왜 나만큼 신경써주지 않느냐'며 분노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사랑하는 상대는 채연이 속으로 그려본 성공의 그림을 잘 몰랐을 수 있다. 그것은 채연 혼자만의 기대이거나 착각이었을 수 있다. 채연은 상대에게 자기 속내를 말하거나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은 오히려 관계를 단절시켰던 그림자가 되었다.


결국 '누가 더 성공적인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가'라는 질문은 각자의 마음 속에서 맴도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런 추구는 드러내든 감추든, 사랑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저울질하며 한 쪽에게 불공평한 것으로 여겨지게 만든다. 이 모든 불공평함은 ‘나’라는 존재가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기혐오적 불안에서 비롯된다. 사랑을 계산하고 거래하는 순간 우리는 그 관계 자체를 의심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되는 것이다.


사랑 계산법 2: 사랑과 보상


사랑에는 보상을 얻기 위한 고된 형태도 존재했다.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니 너는 나를 사랑해야 해."


이런 요구는 사랑을 거래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는 부모가 자식에게, 연인이 상대에게 던지는 '나는 너를 위해 내 인생을 바쳤다'라는 부채 의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사랑의 방식은 종종 자신을 ‘사랑의 희생양'으로 자처하는 관계에서 발견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희생하지만 그 희생의 이면에는 깊은 인정과 존중을 바라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


모연(가명)의 이야기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나를 증명해야 했어요. 부모님은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라고 말씀하셨죠. 그 말에 저는 부채 의식을 느꼈어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려면 내가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죠. 부모님이 저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면 저도 모르게 부모님께 보복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부모님이 원하는 것과 반대로 살겠다'는 마음으로 오히려 제 삶을 망가뜨리기도 했죠. 그게 저의 사랑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추앙'이라는 단어에 끌렸던 건 제가 사랑을 그렇게 부담스럽고 힘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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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연(가명)은 나지막하고 조용하게 말했다.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그 안엔 억눌린 분노와 실망이 깊이 서려 있었다. 그 분노는 상대방을 향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오래도록 눌러온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와 실망이기도 했다.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부모님의 그런 말들로 인해 그녀에게 부모님이 베푼 사랑은 빚이 되었고 갚거나 증명해야 할 무언가가 되었다. 존중받지 못한 기억은 응어리로 남았고 그 응어리는 고요하게 분노가 되었다.

“나는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 반항은 또다시 사랑을 갈구하는 방식이었다. 어쩌면 사랑을 받아내기 위한 절박한 연기인지도 모르겠다. 희생은 때때로 사랑의 가장 그럴듯한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나는 당신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했다. 나는 당신에게 나의 시간을, 청춘을, 몸과 마음을 내어주었다. 그런데 왜, 당신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가?’


사랑이 고된 거래처럼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사랑 안에서 고립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보상이 없으면 무너지는 사랑은 인정을 받지 못하면 곧 실망과 혐오로 둔갑한다. 이런 사랑은 ‘내가 네게 이런 것을 주었다’는 기억만을 남긴다. 그리고 ‘끝내 나는 받지 못했다’는 상처로 끝난다. 사랑은 정말 ‘받아야 하는 것’일까. 사랑은 정말 상대에게 무언가를 ‘얻어내는 것’일까. 어쩌면 사랑은 누군가의 손길이나 말이 아니라 자신이 행한 사랑에 대한 값을 매기기를 멈추는 곳에서 비로소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지우(가명)의 이야기.


"저는 제가 사랑하는 줄도 모르고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었어요. 상대가 저에게 강하게 다가오면, 저는 그 관계에 온전히 헌신했죠. 사랑을 희생과 헌신으로 여겼던 것 같아요. '이만큼 하면 사랑받겠지'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건 가끔 생색내기에 가까웠어요.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애쓰는데, 너는 왜 내 사랑을 인정해주지 않느냐'며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죠. 그런 사랑은 결국 관계를 나쁘게 몰고 갈 수밖에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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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희생하고 견뎌내며 얻어내는 것으로 여겼던 이들에게 사랑이 끝나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너는 나를 완전히 무시했다'는 환멸에 빠지기도 한다. 이 모든 고통은 사랑이 희생의 대가라고 착각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를 놓아주기: 진짜 나는 어디에 있었나?


이 모든 사랑의 감정적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로 존재하는 기쁨과 자유를 깨달았던 순간 나는 짐을 내려놓았다. 사랑에 대한 당연함이라는 이상한 짐을 내려놓고, 나다운 나로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어떤 것도 당연하지 않다.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다르고 각자가 느끼는 사랑도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전부였던 시절 나는 어떻게 해서든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썼다. 상대의 기분을 살피느라 하루를 다 보내고, 내 감정을 억누르며 괜찮은 척하는 것이 사랑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나'라는 존재를 잃어가는 과정이었다. 몇 번의 사랑이 무너지고 난 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맞춰 만들어져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 자체로 이미 완전하다는 것을 말이다.


현지(가명)의 이야기


"저의 아버지는 제가 이혼 후 회사를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셨어요. '애도 둘이나 있는데 이제 뭐 할 거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저는 '오늘은 집 청소할 건데요'라고 답했죠. 아버지 입장에선 제가 맛이 간 인간이 됐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실제로 저는 주변의 시선에선 '골칫덩어리'나 '문제아'가 된 거죠. 하지만 저는 그게 기뻤어요. 더 이상 누군가에게 착한 딸이나 훌륭한 아내로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큰 해방이었거든요. 이 모든 부담을 내려놓는 순간 제 삶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걱정하고 신경 쓰던 모든 것들이 멈추고 나니까 비로소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죠. 저는 더 이상 타인에게 나를 사랑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그저 저 자신으로 하루 하루를 사는 것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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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가 말했던 것과 같은 사랑에 대한 깨달음은 내가 나를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때 찾아온다. 우리는 모두 사랑에 대해 '더 나은 나'가 되기 위해 애쓰곤 하지만 사실 바뀌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그 자체로 온전한 ‘나’ 자신이 있을 뿐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내 모습,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서 좋아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은 사실 불필요한 짐이었다.


사랑을 받고자 하는 모든 평가와 기대에서 자유로워졌을 때 비로소 나만의 삶은 자기 얼굴을 드러낸다. 걱정도, 불안도, 강요도 사라지고 나면, 세상은 마치 처음 만난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모두 아기였을 때가 있었다. 걷기만 해도 사랑스러웠고 침을 흘려도 사랑스러웠던 순수의 시절. 조금씩 나이를 먹고 세상을 보며 비교하는 일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누구나 그런 사랑스러운 자신일 것이다. 그런 비교는 아주 일찍부터 시작되곤 한다. 갓 태어나 가는 산후 조리원에선 옆 산모의 아기와 비교의 대상이 된다. 100일이 되어가는 과정에서도 발달에 대한 비교, 돌이 지나고 나서는 먹는 것, 입는 것, 걷는 것, 자는 것 등등의 모든 비교들이 일어난다. 우리 아이는 뭔가는 잘하고 있고, 뭔가는 잘 못하고 있다고 벌써부터 판가름을 시작한다. 언젠가는 모든게 다 좋아질거라고 기대를 하기도 한다. 희망을 품기도 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아기는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는 청년이 되며, '난 정말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일까?' 하는 질문 속에 스스로를 평가하기 시작한다.

사랑이란, 어쩌면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슬며시 놓아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리엔 ‘나’라는 존재만이 조용히 남게 된다.


가장 어려운 것은 나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내가 나를 그대로 두면 나 자신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온전히 알게 된다. 사랑에 의존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의 사랑에 대한 단순한 반영으로 존재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사랑은 나를 통과해 지나가는 것


나는 이제 사랑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과해 지나가는 것’ 임을 깨닫는다. 사랑은 내가 밖에서 찾아 헤매야 하는 보물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통해 세상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빛이었다.


나는 사랑에 의존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의 사랑에 대한 현실적 구현으로 존재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사랑의 본보기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미 내 안에 충만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 삶을 매 순간 사랑 그 자체로 살아가는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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