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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하 Feb 23. 2019

가장 영국적인 품격으로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중에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본 글은 2019년 가을 출간될 《이지 클래식 2(가제)》에 일부 수정을 거쳐 수록될 예정입니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Manners, maketh man.’ 이 대사 안 들어보신 분들 없으실 것 같은데요? 2015년 2월 개봉한 영화 킹스맨의 명대사입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개봉했지만 600만이 넘는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하며 일명 ‘킹스맨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흥행했죠. 예능 프로에서도 서로 앞 다퉈 패러디를 할 정도로 붐을 일으켰습니다. 배우 콜린 퍼스의 멋진 슈트핏과 신나는 액션이 이 영화에서 화제가 되었고, 영국의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1번 D장조> 또한 삽입된 씬과 함께 많이 회자되곤 했습니다.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스틸컷


영국의 비밀 요원 후보생 아버지를 둔 에그시 언윈(테론 에저튼 분). 임무 중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불량 청소년으로 자랐습니다. 불량배인 새아버지 딘 베이커, 딘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그와 헤어지지 못하는 어머니 미셸, 여동생까지 넷이서 한 집에서 뒷골목의 양아치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에그시 또한 어머니처럼 그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지 않고 살고 있었죠. 한 번은 딘 패거리의 행동 대장쯤 되는 부하와 시비가 붙어 그의 차를 훔쳐 탔다가 경찰에 체포되는데, 이때 에그시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고를 전하러 왔던 해리 하트(콜린 퍼스 분)가 자신에게 건네줬던 목걸이를 떠올리고 킹스맨과 접촉하여 유치장에서 풀려났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에그시는 해리의 추천을 받아, 코드명 ‘랜슬롯’의 새로운 킹스맨을 뽑는 테스트에 지원하게 되고, 최후의 2인까지 남게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 킹스맨 훈련 시작 때부터 키웠던 개를 죽이는 배포와 담력을 시험하는 테스트를 겪으면서, 정든 개 JB를 차마 쏘지 못해 마지막 시험을 통과를 하지 못해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한편, 코드명 ‘갤러헤드’인 해리(콜린 퍼스 분)는 세상을 떠난 랜슬롯(잭 대븐포드 분)의 임무를 대신하게 됩니다. 죽은 랜슬롯은 지구 온난화를 막는다는 명목 하에, 휴대전화 유심칩을 이용한 대학살(고위층을 제외한 일반인 무작위 학살)을 계획하는 악당 리치먼드 밸런타인(세뮤얼 L. 잭슨 분)의 음모를 파헤치다가 죽임을 당한 것이었죠. 해리 또한 밸런타인의 음모에 휘말리게 되고, 때마침 해리의 집에서 현장 라이브 비디오를 보고 있던 에그시는 해리의 죽음을 목도하게 됩니다. 에그시는 해리 대신 밸런타인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다시 킹스맨 본부를 찾고,  킹스맨 내부에 침투해 있었던 밸런타인의 첩자를 처리합니다. 그리고 남은 요원인 ‘멀린’, 새로이 ‘랜슬롯’이 된 록시와 함께 밸런타인을 저지하기 위해 출동합니다. ‘랜슬롯’ 록시는 밸런타인의 통신 위성을 파괴하기 위해 단독 작전을, 에그시는 밸런타인과 밸런타인의 주장에 동조한 수많은 세계 고위층들이 숨어든 동굴로 멀린과 함께 침투하죠. 에그시는 밸런타인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고위층들에게 심어둔 안전 칩을 역으로 이용해 그들의 음모를 저지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고, 멀린은 그 아이디어를 이용해 밸런타인의 컴퓨터를 해킹해서 –밸런타인의 호위군들을 포함하여- 밸런타인의 의견에 동조하는 모든 사람들을 처리합니다. 안전 칩을 오른쪽 귀 뒤에 심어둔 사람들의 머리가 모두 다 폭발하면서 밸런타인과 밸런타인의 하수인인 가젤(소피아 부텔라 분)만 남아 에그시와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되죠.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스틸컷


안전 칩과 함께 사람들의 머리가 터지는 장면에서 깔린 음악. 이 음악이 바로 가장 영국스러운 노래, 영국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1번 D장조(Pomp and Circumstance No.1 D Major)>입니다. 이 음악은 가사를 붙여 ‘Land of Hope and Glory(희망과 영광의 나라)’라는 제목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영국 제2의 국가라고 할 정도로 영국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이지 클래식』 1권에서 소개해드린 유럽의 클래식 음악 축제들 중 영국에서 열리는 BBC Proms의 경우 매년 폐막일 공연인 The Last Night Concert에서 이 노래가 울려 퍼지곤 합니다. 이때 각국의 국기들을 흔들며 이 ‘Land of Hope and Glory’를 떼창 하는 관객들과, 오케스트라가 아닌 관객들을 향해 지휘를 하는 지휘자의 모습이 참 인상적입니다. 


Land of Hope and Glory, Mother of the Free,
자유인들의 어머니이신 희망과 영광의 땅
How shall we extol thee, who are born of thee?
당신에게서 태어난 우리, 어떤 방식으로 당신을 찬양하리오?

Wider still and wider shall thy bounds be set;
더욱 넓고 더욱 드넓게 당신의 영역 세워지니
God, who made thee mighty, make thee mightier yet,
당신을 장대하게 만드신 신께서 그대를 보다 더 장대하게 하시네
God, who made thee mighty, make thee mightier yet.
당신을 장대하게 만드신 신께서 그대를 보다 더 장대하게 하시네


<킹스맨> 시리즈를 연출한 매튜 본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밸런타인의 의견에 동조한 고위층들의 머리통을 폭발시키는 씬에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사용한 이유를 영국인 감독이 영국에 남아있는 계급사회를 비판하려는 목적을 두고 음악을 사용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가장 ‘영국스러운’, 영국 귀족층과 같은 모습을 가진 킹스맨이... 치즈 햄버거를 좋아하고, 래퍼들이 많이 쓸 뉴에라 모자를 쓴, 누가 봐도 ‘미국스러운’ 리치먼드 밸런타인의 음모를 저지하는 장면. 영화의 가장 클라이맥스인 이 장면에서 영국의 제2의 국가라고 할 만큼 영국스러운 음악이 울려 퍼지는 것에는 또 다른 ‘대영제국의 화려했던 영광’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의도가 숨어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이민자들의 나라 미국이 패권국이지만, 우리는 귀족이 아닌 평민도 품격 있는 킹스맨으로서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 킹스맨이 패권국인 미국의 악당을 처치했다.’는 전개에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거든요. 더구나 배경음악으로 깔린 곡이 제2의 국가라 할 만큼 사랑받는 노래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아니었던가요! 그러니 더더욱 저의 의심이 짙어지는 것은... 무리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가장 ‘영국스러운’ 이 영화에 영국 왕실의 의전에도 활용되고,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응원가인 이 음악만큼 잘 어울리는 음악을 찾기도 힘들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대체할 영국 음악을 몇 떠올려봤습니다만 쉽게 떠오르지도 않고, 떠오른 음악들도 그 장면에 어울리기가 어렵네요.



엘가 : 희망과 영광의 나라(위풍당당 행진곡 1번) at BBC Proms 2014 Last Night Concert




제가 처음 BBC Proms 폐막 영상, 특히 위풍당당 행진곡 연주 영상을 봤을 때... 저는 망치로 제 머리를 쾅! 하고 한 대 맞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양 고전음악이라 불리는 클래식 음악이 턱시도와 드레스 빼입고 고상 떨고 점잖 떨며 관람해야만 하는 음악이 아니라, 이렇게 축제처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거든요.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죠. 그 충격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매년 여름마다 유튜브를 통해 BBC Proms에 마음만은 함께 해 왔습니다. 그런 제가... 올여름 Proms를 관람하러 영국에 가려합니다. 폐막일 공연인 The Last Night Concert 경우 공연장인 로열 앨버트 홀에서 관람하려면 몇 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한 것이라고 할 만큼 어렵다 합니다만... 정 안되면 하이드 파크에서라도 함께 하고 싶어서 일정을 무리하게 조정해 폐막일까지 런던에 머물기로 결정했습니다. (그전에 얼른 『이지 클래식』 2권 초고를 완성해야 할 텐데요...) 


혹시 2019 BBC Proms The Last Night Concert가 열리는 로열 앨버트 홀이나 하이드 파크에서 대형 태극기가 나부끼면, 제가 흔들고 있구나 하고 알아주세요. ^-^; 대형 태극기 가져갈 생각 충분히 있습니다. (일본 관객들이 일장기 흔드는 걸 몇 번 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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