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치기의 악몽만 남은 자그레브
일곱 번째 날이 밝았다. 자다르에서 자그레브까지는 네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이 날도 7시 반에 출발했다. 언제 호텔에 체크인을 하건 출발은 무조건 7시 반에서 8시 사이. 강행군이긴 하다. ^-^;
이날도 전날처럼 날씨가 좋았다. 워낙 날씨가 좋아 기분도 무척 좋았다. 오늘 여행도 좋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들었고.
마이클의 뛰어난 운전 솜씨도 있었지만, 날씨가 좋아 자다르에서 자그레브까지 오는 고속도로 통행에도 문제가 없었다. 강풍 주의보 같은 게 떨어지면 고속도로 통행이 금지되어 우회도로로 가야 했지만 다행히 예상 시간보다 한 시간여 일찍 자그레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하차하기 전, 인솔자는 자그레브에 소매치기가 많으니 소지품 관리에 주의하라는 안내를 했다. 나도 전날까지는 슬링백을 뒤에 메고 라이트 다운 조끼를 입는 식으로 다녔지만 조끼가 가방을 다 못 덮어서 가방을 다시 앞으로 다시 고쳐 멨다.
Background Music - 모차르트 : 레퀴엠 D장조 中 라크리모사
https://youtu.be/G-kJVmEWWV8
차에서 내리고, 우리는 자그레브 대성당에 당도했다. 꽃누나에 등장한 두 개의 하얀 첨탑이 아름다운 성당. 성당 앞 중앙광장에는 흑사병이 물러간 것에 감사하고 기념하며 세워진 삼위일체 상이 서 있다. 자유시간을 가질 예정이니 성당은 외관만 보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로트르스차크 타워로 가는 길, 피토 크림을 사야겠다고 하는 일행이 있어 피토 크림 가게에 들렀다. 김희애 크림으로 입소문이 나 찾는 사람이 그리 많단다. 그 맞은편에는 거대한 넥타이가 걸려있는 넥타이 가게. 아... 스플리트에서 실크 넥타이 샀어야 했는데...
자그레브의 피토 크림 정품샵은 국내에서 파는 가격의 3분의 1 가격이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비쌈. 환산하면 한 통에 4만 원 정도라는데... 산 사람들은 그리 좋다고 알려줬지만 비싼 돈 주고 사갔는데 안 맞으면 돈 아까우니까... 패스.
로트르스차크 타워 쪽으로 가면서 스톤 게이트를 지났다. 스톤 게이트로 향하는 입구에는 중세의 성인인 성 조지의 기마상이 있다. 성 조지 상을 돌아 언덕을 오르거나 아니면 계단을 이용하여 올라가 보면 바로 보이는 문이 바로 스톤 게이트이다.
스톤 게이트에는 성모 마리아의 성화로 유명한데, 18세기 이 일대의 대 화재에서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아 기적의 성화로 불리며 이 때문에 소원을 이뤄주는 기도 장소로 유명하다. 게이트 안쪽이 무척 어둡고 기도하며 눈을 감고 묵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곳 또한 소매치기들의 주요 활동 무대라고.
스톤 게이트를 지나니 성 마르코 성당이 보이기 시작했다. 책이나 TV 같은 매체에서 한 번은 봤을 자그레브의 명소다. 지붕의 프레스코화가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왼쪽에는 크로아티아 국가 문장, 오른쪽에는 자그레브 시 문장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성당 바로 그 왼쪽에는 크로아티아 대통령 궁이, 오른쪽에는 크로아티아의 국회의사당이 위치하고 있다. 크로아티아 국기와 유럽연합 국기가 걸려 있다. 우리나라 국회 앞이나 청와대를 생각하면 쉽사리 출입하기 힘들게 경호하는 의경들이 있고, 담과 울타리도 쳐져 있는데 크로아티아의 국회는 그런 위압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건 좀 보고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성 마르코 교회 정면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가면 오른편에서 자그레브 역사박물관, 에디슨의 라이벌이었던 크로아티아 출신의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 부조, 바로 옆에 성인 키릴과 메토디우스를 기리는 성당도 만날 수 있다.
로트르스차크 타워 앞 전망대. 이 곳에 서면 자그레브의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 모두를 볼 수 있었다. 외관만 보고 발길을 돌렸던 자그레브 대성당의 위풍당당한 모습도 아주 아름답게 볼 수 있었다. 이곳이 바로 베스트 포토존이라고... ^-^
이 곳에서 찍은 사진이 이 날 자그레브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 자그레브에서 더 이상의 관광은 없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반 옐라치치 광장에 들어섰는데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서서 굉장히 소란스럽고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일행 중 자매팀 언니분께서 ‘어머 내 가방 지퍼가 왜 열려있지?’라고 하셨고, 이내 가방 안의 지갑이 사라진 것을 깨달으셨다. 다행히 잃어버린 것 중 환전해간 돈은 한화로 약 10만 원 정도 나머지는 카드였다고. 하지만 여권을 잃어버린 게 큰 일이었다.
그리고 조금 뒤에 또 다른 팀, 초등학생 아이를 데리고 온 친구 팀(큰 아이, 아이 엄마, 큰 아이 외삼촌, 큰 아이 외삼촌과 같이 일하는 친구, 그리고 작은 아이와 작은 아이 엄마 -큰 아이 엄마 친구-로 구성된 팀)의 큰 아이 엄마도 돈을 소매치기당했다. 심지어 크로스백의 속 지퍼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돈을 깡그리 털어간 것이다. 유로만 한화로 50만 원 정도, 달러는 세어놓지도 않아 얼만지도 모른단다. 원래는 돈을 그냥 가방에 넣어뒀지만 버스에서 내리기 전 인솔자의 안내 때문에 가방 안 깊은 속 주머니에 넣고 지퍼까지 단단히 잠가 뒀는데 당했다는 것이다.
순간 모든 일행들도 패닉. 그리고 인솔자도 패닉. 자기가 15년 넘게 여러 팀을 안내하고 다녔지만 이런 적이 없었단다. 일단 자그레브 대성당 방향으로 나가면서 모든 일행들이 흩어지지 않고 뭉쳐 다녔다. 그리고 내려가는 길에 인솔자가 바로 즉석 사진관을 발견하여 여권 잃어버리신 분은 사진을 찍고, 나머지 일행들은 모두 자그레브 대성당 앞으로 갔다.
자유시간 아닌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아무도 뭔가를 하고파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모두가 패닉 상태였다. 사진을 찍고 돌아온 인솔자에게 모두 다 자그레브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의욕을 상실했고 너무 무섭다며 빨리 버스로 가자고 했다. 인솔자는 기사에게 빠르게 연락했고 하차했던 곳에서 다시 버스를 탔다. 모든 승객이 버스를 타자마자 기사 마이클은 버스 문을 닫았다. 이미 인솔자가 전화로 설명했는지 상황을 아는 것 같이 말이다. 실제로 버스에 올라타는 정신없는 때를 노려 버스를 타고 버스 안 승객들의 물건을 소매치기 해가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모두가 무서워했다.
그러자 돈 잃어버린 큰 아이 엄마의 친구 아들. 그러니까 작은 아이가 갑자기 외쳤다. “저 아저씨 길 건너간다!” 나중에 설명을 들어보니 우리가 버스를 타러 오는데 어떤 세 사람의 무리가 우리를 따라왔단다. 그리고 우리가 버스를 타고 기사가 버스 문을 닫자마자 한동안 버스를 노려보다가 길을 건넜다는 거다. 우리 주머니를 털어간 소매치기 일당이 그들이었나 보다.
다행히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의 수도였고, 대사관이 있었다. 게다가 소매치기를 당한 것은 대사관 업무시간인 평일 낮이었다. 인솔자는 급히 본사에 연락해 자그레브의 한인을 수배해서 섭외했다. 한 시간에 100유로, 비싼 인건비지만 여권 잃어버리신 분을 모시고 대사관에 갈 사람이 필요했다. 인솔자는 나머지 사람들을 안내해야 했으니 말이다.
점심을 먹기로 했던 자그레브의 한식당 온새미에 도착했고, 여권을 잃은 언니와 그 동생은 우리가 주문한 김치찌개가 끓기도 전에 나온 밑반찬과 밥을 거의 욱여넣다 시피하며 급히 점심식사를 마친 후 임시 가이드와 함께 대사관으로 향했다. 그들은 우리가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대사관 업무를 보고 돌아오게 될 것이다.
엄청나게 놀랐는데, 그 와중에 속도 없이 김치찌개는 맛있었다. 유료지만 라면 사리까지 추가해서 먹으니 꿀맛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다니면서 이렇게 여유롭게 식사한 적도 없었다. 천천히 먹고, 테이블마다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눴다.
그때였다. 소매치기를 당했던 어린이 팀 테이블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이 삼촌이 들고 다니던 고프로 카메라에 다른 여행객들이 소매치기당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힌 것 때문이었다. 동영상을 본 우리는 소매치기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
찍힌 비디오를 통해 보니, 소매치기는 보통 세 사람, 네 사람으로 무리 지어 다니며, 첫 번째 소매치기가 지나가면서 가방의 지퍼를 열거나 칼로 가방을 찢고, 두 번째 소매치기가 바로 뒤에 지나가며 가방에 손을 넣어 지갑을 꺼내 반대편 겨드랑이에 끼운다. 세 번째 소매치기가 두 번째 소매치기 바로 뒤에 따라와 겨드랑이 뒤쪽에서 지갑을 빼고, 자신의 품이나 안주머니에 지갑을 챙긴다.
그렇게까지 작정하고 털어가는데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당하지 않을 방법은 찾을 수가 없다는 게 모두의 중론이었다.
한 시간 반 정도 흐르고, 대사관으로 갔던 자매팀이 돌아왔다. 일정이 지체되었기 때문에 빠르게 부다페스트로 이동해야 했다. 정신없는 일곱 번째 날의 오전 투어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