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순한 부다페스트의 아침
Danubius Hotel Budapest에서 먹은 조식은 그간 다녔던 여러 호텔 중 최고였던 것 같다. 종류도 다양하고... 식당에서 보는 풍경도 좋고... 객실만 로비와 식당 정도 됐어도... 누가 그랬는데 꼭 수용소 같은 구조라 좀 무섭기도 했다. 시설도 너무 노후됐고. 제발 님들 레노베이션 좀...
Background Music - 리스트 : 피아노 협주곡 1번 E 플랫 장조
https://youtu.be/xm_m4pBxxk8
우리 팀은 이전에 묵었던 호텔들처럼 이 호텔에 묵었던 팀 중에 가장 먼저 식사를 시작했고, 가장 먼저 출발했다. 부다 언덕으로 가는 길, 우리 버스는 전날 만났던 부다페스트 현지 한인 가이드를 픽업해서 첫 번째 일정이었던 부다 언덕에 도착했다. 해가 막 떠오르기 시작한,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부다페스트의 하늘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부다 언덕은 옛 헝가리의 왕궁과 마차시 성당 등 옛 헝가리 귀족들의 활동 중심지라고 해도 될 유적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반대편인 페스트 지구에 위치해 있는 국회의사당 건물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인다. 전날 밤에 화려한 조명으로 치장한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언덕을 오르자 ‘어부의 요새’라는 건축물이 보인다. 백색의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이 요새는 건너편 페스트 지구를 조망하기에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헝가리 건국 기념 1천 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건축물로 일곱 개의 고깔 모양 첨탑은 헝가리 건국의 중심이 된 일곱 개의 부족을 상징한다. 어부의 요새라는 이름은 이 성벽의 끝에 중세시대 생선시장이 있었던 곳이 맞닿아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어부의 요새 옆에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 일명 마차시 성당이 세워져 있다. 마차시 성당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곳 남쪽 탑에 헝가리의 왕인 마차시 1세의 머리카락과 왕가의 문장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대 헝가리 국왕의 즉위식과 결혼식이 진행된 곳이란다. 성당의 지붕은 타일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어 무척 특색 있는 모습이다.
이 성당이 완공되기 전에 부다가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당하자, 가톨릭의 성지로 건축되고 있던 이 성당은 이슬람의 모스크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이 통치 시대가 끝나자 다시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난 후에 20년 동안 전쟁으로 파괴된 곳을 복구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마차시 성당의 옆에는 헝가리의 성인으로 시성 된 이슈트반 1세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헝가리 왕국의 첫 국왕으로, 헝가리와 그 주변 지역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힘썼고, 그 공으로 교황 그레고리오 7세로부터 ‘헝가리의 사도 왕’이라는 호칭을 하사 받았다고 한다. 그의 손에 쥐어진 십자가는 가로줄이 두 개인데,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왕권과 신권 두 가지 모두를 인정받았다는 의미이다. 이 두 줄 십자가는 헝가리에서만 쓰이고, 이슈트반 왕의 상징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 한다. 그리고 그의 머리 뒤에는 광배가 표시되어 그가 시성 되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차시 성당 앞 쪽의 광장에도 여러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페스트가 물러간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세워진 성 삼위일체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마차시 성당을 지나서 부다 왕궁으로 가는 길. 곳곳에 헝가리의 역사들이 여전히 살아 숨 쉰다. 기념물 혹은 유적지라는 뜻을 가진 Műemlék 마크가 붙어 있고, 헝가리 최초 ˙ 부다페스트 최초의 우체국 건물이라는 노란 건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우편물을 받아 전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한국이라면 그냥 두지 않을 전쟁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는 거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 맞은 그 자리를 복구하는 곳도 있는가 하면, 폭격 당시 그대로 터를 보존하고 있기도 했다. 헝가리는 이런 건물들을 바로바로 복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수년에 걸쳐 복원을 할지 말지, 하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지, 그리고 복원을 할 때 쓰일 돈의 예산은 어떤 식으로 마련할지 끊임없는 토론과 토의를 통해 결정이 되기 때문이란다.
순간 어떤 심신미약자로 인해 불타버렸던 숭례문 생각이 들었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복원해버리고, 복원에 쓰이기로 결정되었던 금강송을 빼돌렸네 어쩌네 했던 사건과 부실 복원 논란이 생각나 씁쓸해졌다.
부다 왕궁 옆. 헝가리의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해 있다. 자그레브도 마찬가지였지만, 대통령 집무실에 일반인 접근이 어렵지 않다. 물론 실탄을 장착한 경호인력이 배치되어 있는 것은 당연지사. (걔네들 건드리면 큰일 납니다... 멀찍이서 바라봅니다... 말 걸지 맙시다...) 운이 좋으면 대통령이 집무실 출근하는 것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척 이른 시간에 갔기 때문에 대통령 출근 모습은 못 봤다.
이런 모습을 보고 나니 드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 한국은 언제쯤 권위적인 리더십이 사라질 것인가? 우리도 아이슬란드 대통령처럼 피자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대통령을 가질 수 있을까? (사심 듬뿍 얹어 젊고 잘생긴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1971년생- 같은 대통령은 어떤가?) 청와궁이라 불리어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인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와 어마어마한 규모의 국회의사당을 보면 여전히 우리 대한민국은 권위적인 리더십의 나라인 것 같다. 의회란 토론이 이뤄져야 하는 공간인데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은 제대로 된 토론이 이뤄지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본회의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거대한 건물에서 일하는 국회의원은 자신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것을 쉽게 만들지는 않겠나. 본회의장 좌석도 널찍널찍, 의원들 책상 앞에는 최신 컴퓨터까지... 의회 정치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의회를 생각하면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은 너무 화려하고 거대하다.
좀 더 자기비하 하자면 여전히 우리는 현대판 왕조시대에 살고 있다. 대통령이라는 이름만 바꾼 왕과 사대부에서 국회의원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귀족들 아래서... 그러니 아직도 대통령을 국부니 국모니 하며 칭송하는 백성들이 천지에 널렸지.
어쨌든 헝가리 대통령 집무실 옆, 도나우 강과 맞은편에 보이는 국회의사당과 페스트 지구.... 어쩌면 도시의 경계일지도 모르는 저 멀리 지평선 근처에서 솟아오르는 해가 완벽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부다페스트의 아침이었다.
대통령 집무실 건물 바로 옆에는 옛 왕궁, 부다 성이 있다. 로마 제국에서 자치 승인을 받은 후 시작된 헝가리의 역사. 이후 이어진 헝가리 왕국의 벨러 4세에 의해 요새의 기능으로 이 성이 세워졌다. 이후 흐르는 역사에 따라 하지만 오스만 제국의 침략과 이어진 천도(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로 천도했었음). 그리고 합스부르크 왕가와 오스만 제국, 트란실바니아 공국으로 나눠 통치한 3 분할 시대, 흡수 합병되어 제1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진 합스부르크의 통치,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 잠시 형성되었던 짧았던 헝가리 왕국까지... 부다 성은 이 모든 헝가리의 역사를 부다 언덕을 지키며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약 30분 남짓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우리 일행 모두는 각자 흩어져 부다 왕궁 곳곳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왕궁 앞에도 작은 기념품 가게가 있었는데 막 문을 열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구경을 시작했는데 마음에 쏙 드는 가죽 팔찌를 발견하고 구매했다. 6€... (하지만 혼자 끼우고 빼고를 못해서 그냥 장식품이 되었다고 한다. 또르르...)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입장료가 있더라도 입장료를 내고 미술관도 들어가 보면 좋았겠지만... 역시 패키지... 이렇게 아쉬움을 남기고...
부다 성에서 언덕을 내려오는 길... 다뉴브강 반대편으로 내려와 버스를 탔다. 그리고 부다페스트 조망 최고라고 하는 치타델라로 향했다.
치타델라에서는 부다 지구와 페스트 지구 양쪽 모두를 조망할 수 있어서 부다페스트 조망으로는 최고인 스폿이다. 날씨는 어찌나 좋은지. 일행이었던 부녀 팀 아버님께서 이모와 내 사진을 찍어주셨다. (내 다리가 가늘게 나와서 좋아했다 하더라...^-^;)
개인적으로는 밤에 바라본 부다페스트보다, 이른 아침의 부다페스트가 더 기억에 남는다. 과한 조명으로 치장된 모습보다는 말갛고 밝은 부다페스트가 더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 언젠가 다시 이 곳을 방문한다면 이른 아침 리스트의 피아노 음악을 들으며 다뉴브 강가를 거닐고 싶다.
다시 버스를 타고 페스트 지구의 영웅광장, 회쇠크 테레로 향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이 영웅광장에서 국빈 행사가 있는지 군인들이 행사 세팅에 여념이 없었다. 광장의 중앙에는 대천사(Archangel) 가브리엘이, 그 아래에는 부다페스트의 건국에 중심이 된 마자르 일곱 부족의 기마상이 놓여있다. 가브리엘의 오른손에는 헝가리 왕국의 왕관이, 그리고 왼손에는 헝가리 특유의 가로 두 줄 십자가가 쥐어져 있다. 그 외에도 각 기둥 사이사이 헝가리 왕들과 헝가리 독립을 위해 몸을 던진 투사들의 부조가 놓여 있다. 하지만 총 들고 있는 군인들 때문에 지레 겁먹고 앞까지 가보지는 못했다. ^-^; 쫄보...
광장의 오른쪽에는 뮈처르노크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어떤 전시인지는 모르겠으나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그의 비 엘리자베트(애칭 시씨)의 그림이 아주 크게 걸려 있었다. 미술 작품 좋아하는 우리 이모는 그냥 미술관이라는 설명을 들어도 좋단다. 짧은 영웅광장 투어를 마치고 다음 일정인 성 이슈트반 대성당으로 향했다.
헝가리 왕국에 그리스도교를 포교한 왕이자 성인인 이슈트반 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성당. 성 이슈트반 대성당. 이 성당에는 이슈트반 왕의 오른쪽 손을 미라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 성당 내부에 들어가려면 입장료 개념으로 헌금함에 돈을 넣는다. 많지 않아도 된다. 1유로라도 상관없다.
성당 내부는 어찌나 화려한지. 금칠한 벽과 기둥, 그리고 천장, 스테인드글라스... 모두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 아름다운 성당에서 오늘까지 무사히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 또 앞으로 무사히 이 여행을 끝낼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함께 올렸다.
성당에서 다시 나오자 성물방이 나타났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꼭 묵주(Rosario)를 사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5단 묵주를 골랐다. 가격은 한국의 3분의 1 가격에서 반값 정도. 금빛 비즈로 만든 묵주 하나와 하얀 자연석으로 만든 조금 더 비싼 묵주 둘을 구매했다. 집합시간이 가까웠기에 묵주를 구매하자마자 만나기로 했던 성당 앞 오벨리스크로 뛰어갔고, 모든 일행이 모인 것을 확인한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했다.
이날 점심은 한식! 비빔밥! 부다 언덕에 위치한 ‘서울 하우스’의 비빔밥이었다. 사실 나물 종류가 다양하지 않은 데다가 비빔밥에 어울리지 않는 오이 무침... 하지만 일단 밥이 나오는 데다가 얼마 만에 만나는 계란 프라이인지! 추가금을 주고라도 계란 프라이를 하나 더 먹고 싶었다. 하지만 주는 대로 잘 먹는 류인하... ^-^; 밥 한 공기 싹싹 비벼서 배불리 잘 먹었다. 이런 걸 보면 역시 나는 한국 사람인 것이다.
식사가 끝나고, 부다페스트 현지 가이드와 이별하고 우리는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로 향했다. 브라티슬라바에서 한 시간 정도를 보낸 후 드디어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