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첼레스타로 악기 얘기를 꺼낸 김에, 우리에게 익숙할 악기 이야기 하나를 꺼내볼까요? 아마 어린 초등학생들이 피아노 다음으로 가장 많이 배우는 악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 말이죠. 저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 1 때까지 4년간 바이올린을 배웠더랬습니다. 당시 교육과정으로 방과 후 수업을 여러 개 신청해서 시중가보다 싸게 여러 가지 수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제가 들었던 수업 중 하나가 바이올린이었거든요. 처음에는 작은 손가락 끝으로 굵은 현을 누르는 게 무척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늘 왼손 검지에서부터 새끼손가락 끝이 빨갛게 부어 있곤 했습니다. 그런데 배우다 보니 악기 소리도 좋고 재미있었던 것도 있지만, 당시에 또래 아이들이 잘 배우지 않는 악기여서 특별해진 기분이 들었고, 그 기분이 어린 마음의 허영을 채워주기엔 딱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이올린 운지법이나 활을 잡는 법은 제대로 배웠는데,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제 레슨 선생님은 비브라토(지판을 짚는 손을 좌우로 흔들어 음을 풍성하게 표현하는 방법)나 보잉(활질)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된 지금도 악기를 다시 배우게 된다면 가장 다시 배우고픈 악기가 바이올린입니다.
팟캐스트 <이지 클래식>의 팬이자, 알고 지내는 동생 아이린이 저를 처음 만났을 때 제게 주었던 선물은 악기 모양을 가진 책갈피(북마크)였는데, 그 모양이 바이올린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무척 기뻐했던 적도 있습니다.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굳이 악기에 비유하자면 저는 바이올린 같은 사람이거든요. 한없이 달콤한 소리를 내다가도 아주 신경질적인 소리까지 소화하며, 습기와 온도에 민감한 악기. 그리고 바이올린의 몸체는 여체에 가까운 모습이잖아요. (그것도 핫바디...ㅋㅋ) 저와 바이올린의 특징을 모두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저의 이 비유에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바이올린 곡을 들으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사랑하는 클래식 음악가 No. 2인 차이콥스키의 곡이라면 그 시너지가 더 발하죠. (사설이 길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음악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번호 35번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바이올린이 솔리스트로 나오고, 화려한 오케스트라의 음이 바이올린 솔로를 받쳐주는 곡. 그리고 러시아 음악 답지 않게 밝고 경쾌한 것이 꼭 러시아의 여름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작 차이콥스키는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지를 겨울에 여행하다가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이지만...)
차이콥스키의 음악들 중 유명한 곡들로 손꼽는 곡은 대부분 발레곡입니다. 하지만 발레곡은 극의 흐름이 있고, 그 스토리에 맞춰 곡을 써야 하기 때문에 발레곡 만으로 차이콥스키의 음악적 색깔을 따지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요. 그렇다면 기악곡을 위주로 평가를 해야 할 텐데, 기악곡들 중 대표곡을 놓고 따져보았을 때도 차이콥스키 음악 답지 않은 색깔을 가지고 있는 곡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완성도가 높은 아름다운 곡입니다. 처음 차이콥스키는 이 곡을 만들어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레오폴드 아우어에게 헌정했지만, 아우어는 이 곡이 난곡이라서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거절했습니다.
저는 이 곡을 들을 때면 바이올리니스트 야사 하이페츠의 연주 버전으로 찾아 듣곤 하는데, 다른 연주자들의 솔로 파트에서의 기교와 연주의 정확도는 하이페츠를 따라올 이가 아무도 없거든요. 완벽한 연주자는 역사적으로 존재한 적이 없었지만, 완벽에 가까운 연주자를 찾는다면 하이페츠를 찾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하이페츠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스승이 이 곡을 처음 헌정받았던 아우어였다는 사실...^-^; 이런 걸 청출어람이라 표현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