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인하 Oct 29. 2018

여행을 떠나는 이유

내 돈 주고 고생을 사서 하는 이유

여행 왜 가니?


여행을 떠나는 목적은 여행자의 성향에 따라 많이 달라지곤 한다. 크게는 휴양과 관광으로 분류할 수 있고, 관광에도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느냐에 따라 문화 탐방, 맛 탐방, 건축 탐방, 유물 탐방, 쇼핑 등으로 세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그 지역의 문화와 유산 탐방, 자연경관 구경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면세점 쇼핑도 즐거움 중 하나지만 그건 아주 작은 즐거움일 뿐...) 그런 이유에서 다른 어느 여행지 보다도 유럽을 선호하는 편이다.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이 그들의 삶과 역사에 녹아있고, 전공했던 영화(영상학 전공자다)의 태동 또한 그 지역에서 이뤄졌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가장 찬란하게 꽃 피웠던 곳도 그곳이기 때문에. 2016년 서른몇의 나이로 첫 해외여행을 유럽으로 떠나게 된 것은 내게 큰 의미가 있었다.


첫 여행을 떠났을 때 나는 첫 번째 책 출간을 하고 번 아웃이 된 상태였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 초고를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넘겼고, 책 성격상 자료와의 싸움이 엄청났기 때문에 내 몸에 남아있던 모든 에너지와 영혼을 마지막까지 쥐어짠 뒤였다. 책이 출간되고 나서도 한동안은 뭔가를 쓰고 싶다는 욕구가 들지 않았다. 그토록 좋아하던 영화도 많이 보지 못했다. 공연도 마찬가지. 그냥 ‘무언가를 하고 싶다’라는 욕구 자체가 들지 않았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이모들 가겠다고 예약해둔 패키지여행에 끼워 넣어주셨다. 그 여행 프로그램이 클래식의 본향이라 하는 동유럽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남동생은 일찍이 해외여행을 할 기회가 많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다니던 영어학원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미국 아이비리그 견학을 간다고 하여 미 동부를 3주 정도 다녀온 적도 있었고, 수험생활이 끝날 때마다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학생이 돈이 어디 있겠나, 그 비용이 다 부모님 주머니에서 나왔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부모님은 내게 내심 미안해하셨었다. 동생은 몇 번이나 여행을 보내주는데, 누나는 한 번도 보내주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 남들 대학교 방학기간 동안 유럽 배낭여행 다닐 때 여행 한 번 못 보내준 것을...


나는 솔직히 부모님이 그렇게까지 내게 미안해하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그게 그리 서운하지는 않았다. 물론 어렸을 때 여행을 하는 것은 견문을 넓히고 꿈을 키우기엔 무척 좋은 동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대학교를 빨리 졸업하고, 빨리 취업을 해서, 방송작가로서 빨리 자리를 잡는 게 당시 내가 생각하던 목표였고, 그것에 정진하기 위해서는 옆을 돌아볼 새가 없었다. 그래서 해외를 나가는 것은,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과거의 나와는 꽤 먼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여행을 떠나서도 부모님은 이제야 보내줘 미안하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하셨더랬다. 그때마다 나는 “괜찮다. 나는 지금 와서 더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 입에 발린 얘기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20대의 나는 넘쳐나는 에너지를 가지고 노는 것 좋아하던 아이라 유럽 배낭여행 보내 놨으면 유럽에 있는 동안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녔을지 나 자신조차도 장담할 수가 없다. 술 좋아하니 맥주나 와인에 맛있는 것 먹으러만 돌아다녔겠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인지한다’


커뮤니케이션과 매스미디어를 전공한 내가 학부 4년간 배운 것들 중 가장 많이 써먹고, 살면서 가장 많이 와 닿는 전공 이론이 바로 이 인지 이론이다. 사람의 인지 능력이란 그런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또 보인만큼 인지한다, 그리고 인지한 만큼 지식으로 습득하여 아는 것이 된다. 이 과정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무한 반복하게 됨으로 ‘아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30대에 첫 번째 여행을 떠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클래식’이라는 불리는 서양 고전 음악에 애정을 두고 관심을 둔 이후에 떠난 곳이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이라 더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첫 시작은 클래식 음악이었지만, 그것에서 영역을 더 확장해 미술, 건축 등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더욱더 그 시기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철부지 20대 시기 먹고 마시고 놀고 그런 데에 많은 관심을 쏟던 그 시기에 여행을 떠나 봤자, 그것이 내게 큰 자양분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고... 아는 것도 일천한데 뭘 얼마나 받아먹고 돌아왔겠는가 생각하면 외려 그 시기에 경험하지 못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물론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그렇다는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렇게 처음으로 이모와 다녀온 패키지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후, 나는 새로운 여행 계획을 세웠다. 모든 것은 스스로 해 보겠다고, 여행사를 끼지 않고 자유여행으로 남들 하듯이 뒤늦은 배낭여행 계획을 세웠다. 그때 세운 계획은 새로운 글감을 위한 취재를 겸한 여행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아직까지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또 그게 그리 먼 미래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대신 그 전 해에 패키지여행으로 다녀온 코스와 아주 유사하게, 그리고 새로운 국가와 도시까지 끼워 넣어 20일 넘는 기간 동안 유럽을 또 다녀왔다. 친구와 함께. 사건이 없지만은 않았지만 그만하면 무난하게, 무탈하게 잘 다녀왔고... 내게 또 다른 경험과 지식을 채워주었다. 언젠간 다시 돌아가 한동안 머물고 싶을 정도로 정든 곳들도 생겼고...



나에게 여행이란?


내게 여행이란,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지식을 접할 좋은 기회 중 하나다. 직업 특성상 많은 지식과 정보를 처리해야 하고, 그로 인해서 내가 가진 재산을 탕진하면 더 이상 나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꾸준히 새로운 것들을 채워 넣어야 한다. 그렇게 새로운 것들을 채워 넣기 위해서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콘텐츠도 소비해야 하고, 분석도 해야 하고, 혼자서 멍 때리는 시간도 가져야 하지만... 그것들로도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을 때는 여행을 떠나는 게 맞다고 본다.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과정... 작가라는 이름으로, 콘텐츠 크리에이터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올해는 유독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보다는, 강사로 강단에 설 일이 많아 무척 힘들고 고된 한 해였다. (내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힘든 게 강의하는 거다.)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연말 즈음에는 재충전과 새로운 경험을 위해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또다시 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낀다. 새로운 무언가를 접하고 낯선 어느 곳에서 나는 또 무엇을 얻어 돌아올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항공사 핀에어(Finn Ai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