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숲 속 요정들이 나타날 것 같은 마을 라스토케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또 이른 아침부터 일정이 시작됐다. 이 날 일정은 라스토케,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스플리트. 크로아티아 한 나라 안에서 도는 일정이지만 하루 세 개 일정은 빡빡한 편이다.
인솔자는 처음 유럽에 도착해서 이동하는 동안 버스 안에서 일정 브리핑을 했었는데, 크로아티아까지의 일정 테마를 ‘힐링’으로 규정지었었다. (이후 가는 헝가리부터의 테마는 ‘역사’라고 했다.) 더불어 숲 속을 산책하고, 좋은 공기 마시면서 복잡하고 정신없는 한국에서의 삶을 좀 잊어버리고 지낼 수 있는 일정이라고 설명했다.
라스토케는 tvN 예능인 <꽃보다 누나>에 나온 곳이다. 방송 이후 유명해지면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게 되었다는데, 이 작은 마을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오자 크로아티아 관광청에서 한국 정부 기관에 ‘도대체 이 작은 마을에 왜 이리도 많은 한국인들이 찾아오는지.’ 문의를 했단다. 한국 측에서는 방송 촬영이 이 마을에서 이뤄져서 그렇다고 답변을 줬는데 그 이후로 입장료가 생겼다고 한다. 1인당 10€... 근데 10 유로가 안 아까워요. 인솔자 설명으로는 이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입장료를 받아서 모은 다음에 마을 공동체 단위의 생수 공장을 짓는 게 목표란다... ^-^; 사실 확인을 해 볼 방법이 없으므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그리고 마을 구석구석을 살펴보려면 마을에 있는 민박집에서 숙박을 해야 한다고 한다. 아니면 마을엔 들어가 볼 수 없다고...
나는 솔직히 <꽃보다 누나> 편을 보지 않았다. 여러 모로 봤을 때 <꽃보다 할배> 시리즈보다는 매력이 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짐꾼 캐릭터부터 이승기보다는 이서진이 매력적(투덜거리는 캐릭터가 더 재미있지 그저 완벽만 기하는 착한 이승기 캐릭터는 재미가 없다.)이고, 누나들 캐릭터도 할배들 캐릭터보다 입체감이 덜했다. 게다가 여행지도... 내가 보고파하는 그림이 없는 국가들이었는지라... 근데 내가 매력을 느끼지 못한 크로아티아에, 그것도 그들이 머물렀던 곳을 따라간다.
Background Music - 그리그 : 페르귄트 모음곡 1번 中 1번째 곡 ‘아침의 기분’
https://youtu.be/kzTQ9fjforY
라스토케에 도착한 시간은 7시 반 남짓, 마을 건너편에 버스가 멈춰 섰다. 하차해서 보니 온통 짙은 안개 때문에 풍경을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안개에 가려진 풍경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인솔자는 “여기 건너편에서 보는 풍경이 예쁜데, 건너가면 여기보다 안 예쁘다.”며 어떡하냐고 했다. 우리는 너무 일찍 도착한 것이었다.
하지만 동편에서 해가 솟아오르고, 서서히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셔터를 누를수록, 걸음걸음을 뗄수록 안개와 폭포, 나무와 올망졸망 아기자기한 집들이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모습을 자아내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30분 남짓 흘렀을까, 천천히 산책하는 동안 그토록 짙게 끼여있던 안개는 완전히 걷히고... 아름다운 마을 라스토케는 우리에게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집과 집 사이, 마을 중간을 흐르는 물과 폭포들... 마치 곧 동유럽 숲의 요정들이 툭 툭 나무 사이에서, 그리고 물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은 모습들... 언어가 너무 초라해서 적절한 표현과 수식어를 찾기가 힘들었다.
계곡 건너편을 연결해주는 다리를 건널 때가 되어서야 이 마을에 흐르는 물의 색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꼭 옥색 같은 물 색과 키가 커다란 나무들, 그리고 아기자기한 집들... 이 모든 조화로운 풍경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보지 못하는 특별한 것들이었다. 특히 물빛이 너무 고와서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듯했다.
다리를 건너 마을에 들어섰고, 인적조차 발견하기 힘든 마을 가장자리에서 반대편에 위치한 주차장으로 향했다. 마을 구석구석은 둘러보지 못해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여유를 느낄 수가 있어 기분이 무척 상쾌하고 좋았다.
주차장 어귀에 다다랐을 때, 저 멀리 언덕 너머에 있는 또 다른 마을을 발견했다. 마을 한 켠에는 지붕이 없는 건물도 보였다. 동유럽 국가들은 수많은 내전이 있었던 곳이라 폐허로 남겨진 전쟁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고 한다. 가까이 가서 보지는 못하지만 먼발치에서 지붕이 날아간 채 남은 건물을 보며 ‘저 건물도 전쟁의 흔적일까?’하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마치 하늘과 지붕이 맞닿은 듯한 건너편 마을을 카메라에 몇 컷 담고 나니 주차장에 도착했고,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일정인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