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자연을 그대로 보존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앞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꽃보다 누나> 시리즈를 보지 않았다. 그래서 인솔자가 꽃누나에 나온 곳이라고 미리 얘기를 해 줬어도 내 반응은 그냥 시큰둥~ ‘그게 뭐.’ 정도랄까. 그런데 그런 사전 반응과는 달리 경탄에 경탄을 계속하게 만든 곳이 바로 이번 여행지였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었다.
국립공원이라는 게 뭐 그리 특별하다는 건지, 직접 맞닥뜨리기 전에는 몰랐다. 뭐 산에 물 좀 흐르고, 폭포 좀 떨어지고... 그런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고... 그러면 국립공원이지 뭐. 그런 생각도 없지 않았고. 이 국립공원이 뭐 그리 특별하여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건지도 와 닿지도 않았다. 공원 입구까지만 하더라도...
Background Music - 라벨 : 물의 유희
https://youtu.be/cumoVX7x3Zo
하지만 공원의 입구에 발을 들이자마자, 내가 얼마나 안일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했는가 느낄 수 있었다. 산책로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반겨주는 거대한 폭포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마주한 쪽빛의 호수까지...
곧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던 폭포까지는 꽤 걸어가야만 했다. 높은 데서 봐서 가까워 보였던 것이지 실제로는 거리가 좀 있었던 모양. 하지만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도, 꽤 오랜 시간 걸어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걸음걸음을 떼는 곳마다 풍경이 바뀌고, 그에 따른 아름다움도 바뀌어갔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스마트폰 메신저로 이렇게 담은 사진을 보내줬더니 다들 아름답다고 극찬을 했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카메라가 담은 건 10분의 1도 안 될 거야... 이 아름다움을 다 전할 수가 없어서 안타까워.’ 일 정도로 플리트비체는 아름답다는 수식어로 다 표현이 안 되는 그런 곳이었다.
그레이트 폴른(Great fallen) 앞에 서자, 높이서부터 안개비처럼 뿜어져 나오는 폭포수에 점퍼의 모자를 뒤집어썼다. (그전에 블레드 갔을 때 모자 안 써서 모자에 빗물이 다 고였던 적이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멀리서 봤을 때가 더 마음에 든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이랬는데, 폭포도 멀리서 봤을 때는 웅장하고 멋지지만 가까이서 보니 안개에 튀는 폭포수에... 우산이라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까. 나는 폭포에서 사진 몇 장만 찍고 얼른 그곳을 벗어났다. (물 튀는 거 싫어...-_-;)
폭포를 지나 유람선 선착장으로 가는 길. 전날까지 비가 많이 왔는지 플리트비체 공원 곳곳에 물이 넘쳤다. 그리고 산책로까지 물이 넘쳐 산책로가 물에 잠기기까지 했다. 가뜩이나 좁은 산책로에 물이 들어와 불편한데 반대편에서 오던 중국 & 대만 관광객들 때문에 한동안 앞으로 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더러 어떤 사람들은 신발과 양말까지 벗어버리고 맨발로 물에 잠긴 산책로를 지나가기도 했다. 나는 물을 피하려고 무척 노력했는데 결국 신발 바닥에서 물이 올라와서 신발이 쫄딱 젖어버렸다. 물이 많아서 아름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불편하기도 했다.
플리트비체는 태초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라고 한다. 나무가 쓰러지면 치우지 않고 그대로 놔둔다. 만약 나무가 산책로 위에 쓰러지면 산책로를 지나는 부분만 잘라내고 나머지 부분은 산책로 옆에 그대로 놔둔단다. 그렇게 나무가 썩으면서 미생물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그 위에 석회질이 쌓이면서 나무는 단단하게 변하게 된다. 그리고 그 위와 옆에 또 다른 나무가 쌓이는 작업이 반복되며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곳에 또 다른 작은 폭포가 생기게 된다고 한다. 산책로가 없는 곳에는 길을 잇기 위해서 나무로 만든 다리나 계단을 이용하고... 이런 식으로 인간의 손길을 가장 최소화 함으로써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려고 노력한다는 거다. 우리 한국에도 이런 공간이 있을까? 있는 강도 둑으로 막아버리는 판에...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겠지.
한 시간 반쯤 걸었을까? 선착장이 나왔다. 배를 타고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좌측과 우측에 또 다른 섬들이 보인다. 운이 좋으면 우측에 있는 또 다른 상류의 섬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럴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 알아보니 상류 쪽이 더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아쉬웠다.
이모는 5일 차까지 다닌 곳들 중에 이곳이 가장 좋다고 했다. 웃돈을 얹어주거나 선택관광이었다 하더라도 돈이 안 아까울 그런 곳들이었다고. 나도 무척 좋았다. 이모가 좋다고 해서가 아니라, 상경한 후 이런 자연을 볼 일이 거의 없어서 그랬던 것도 같다.
Background Music - 슈베르트 : 가곡 <송어>
https://youtu.be/NF9DrUXowBo
배를 타고 선착장에 내리고 조금 걷자, 우리 버스가 기다리고 있던 주차장에 다다를 수 있었다. 꽤 오랫동안 물가에서 걷기도 했고, 신발도 쫄딱 젖어버려서 버스가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플리트비체 인근에는 생선 요릿집이 많다고 한다. 플리트비체의 깨끗한 물속에 사는 ‘송어’를 잡아 구워 팔기 때문이란다. 플리트비체를 산책하는 동안 물속에서 노니는 송어를 볼 수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물이 너무 차서인지 송어의 꼬리지느러미 조차 구경하지 못했었다.
식사를 하러 들어가면서 ‘슈베르트의 가곡은 숭어가 아니라 송어였었지!’ 하는 기억이 번뜩 떠올랐다. 학교 다닐 때 음악시간에 한 번은 배웠고 들었을 슈베르트의 가곡은 <숭어>라는 제목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원제는 <송어(영어 : The Trout, 독일어 : Die Forelle)>이다. 우리나라 초기 도서들은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한국어로 번역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 경우도 일본인이 송어를 숭어로 잘못 번역해놓은 것을 그대로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발생한 오류다. 게다가 이 오역을 그대로 교과서에 실어버렸으니... 그래도 다행인 것은 2010년 교육부에서 이 오역을 바로잡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니 지금 검정 교과서에는 다들 송어로 수정되어 있을 것이다.
참고로 송어는 민물에 살고 숭어는 바닷물에 산다. 그리고 우리가 갔던 플리트비체는 바닷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민물 호수였다. 그러니 슈베르트 가곡 제목에 등장한 <송어>는 그 날의 점심식사가 맞다. ^-^;
(개인적으로 나는 민물이 바닷물보다 밀도가 가볍기 때문에 민물 = 송어 / 바닷물 = 숭어로 기억하고 있다. ㅗ 보다는 ㅜ 가 무거운 발음이니까.)
식전 수프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조개 수프, 그리고 올리브유만 뿌린 샐러드가 나왔다. 그 흔한 발사믹조차 없는 샐러드... 수프는 짰고, 샐러드는 니맛도 내 맛도 아닌 무맛... 그래도 이렇게 채소가 많이 나오는 샐러드를 만난 지 오래되어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메인 메뉴인 송어!!! 와 삶은 감자가 함께 나왔다. 먹으면서 불편했던 것은... 가시가 너무 많아! 원래도 가시 바르는 게 귀찮아 생선구이를 잘 먹지 않는데 어쩌겠나. 주는 대로 먹어야지. 그나마 등과 배 부분의 가시를 먼저 제거한 후 생선살만 발라 먹고, 뒤편으로 뒤집어 먹으니 먹을만했다. 송어 구이가 좋았던 이유는 짜지 않고 담백했다는 점 정도?
감자도 있었는데 감자는 아주 조금만 먹었다. 저 탄수화물을 지양해야 하는 평생 다이어터의 숙명... 후식으로 애플파이가 나왔는데 여태껏 먹던 것보다는 텁텁한 편이었기에 절반 정도만 먹고 남겼다.
화이트 와인을 곁들였다면 아주 괜찮은 한 끼 식사였겠지만... 와인을 별로 즐기지 않는지라 그냥 식사만 하고 나왔다. 우리 식사가 끝날 때 즈음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밀어닥치는 바람에 얼른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버스를 탔고 다음 일정인 스플리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