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인하 Nov 15. 2018

길들지 않는 새, 프레디 머큐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중에서 ‘사랑은 길들지 않는 새(하바네라)’

지난번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삽입된 밴드 Queen의 ‘Love Of My Life’의 얘기를 했다면, 오늘은 같은 영화에 삽입된 클래식 음악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퀸이 성공적인 데뷔 앨범 활동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앨범의 제작에 들어가기 전 음반 레이블 EMI의 레이 포스터와의 미팅 장면, 기억하시나요? 새로운 앨범의 콘셉트에 대해 설전을 벌이는데... 레이는 이전의 흥행 공식을 답습하자고 주장했고, 프레디를 포함한 모든 퀸 멤버들은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죠. 그리고 프레디는 자신이 준비해 온 LP를 틀고 이번 앨범의 콘셉트는 ‘오페라’라며 이 곡을 들려주죠.


이 곡은 프랑스의 작곡가 조르쥬 비제(1838 ~ 1875)의 오페라 <카르멘> 중에서 카르멘의 아리아 ‘사랑은 길들지 않는 새’, 일반적으로 ‘하바네라’로 많이 알려진 곡입니다. <카르멘>은 비제의 오페라 중 가장 유명한 오페라이자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에스파냐의 세비야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불 같이 열정적인 집시 아가씨 카르멘,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군인 돈 호세 하사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오페라입니다. 카르멘이 잠시 투우사 에스카밀로에게 한눈을 팔자, 돈 호세가 질투에 눈이 먼 나머지 카르멘을 칼로 찔러 죽이며 끝이 나죠.


당시 비제는 <카르멘>의 성공에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평단의 평은 후한 편이었죠. 하지만 비제가 갈구했던 것은 대중의 인정이었다는 거 아닙니까...) 카르멘의 초연이 진행된 파리 오페라 코미크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파리 중산층이 주 고객이었습니다. 주말엔 젊은 남녀들이 선을 보러 나오는 공간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런 자리에서 집시 여자가 극의 주인공인 데다가, 주인공이 죽는 비극으로 끝나니 관객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카르멘 작업에 정말 혼을 불사르며 몸을 혹사했던 비제는 작품의 실패에 좌절한 나머지 절필을 했고, 파리의 센 강에 수영을 하러 갔다가 다음 날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를 겪고 발병 이틀 뒤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카르멘> 초연이 이뤄진 후 3개월 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카르멘>은 비제의 대표 작품이자, 유작이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프레디 머큐리가 레이 포스터를 설득하기 위해 이 하바네라의 레코드를 들려줬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퀸의 팬이 아니니까요... 잘 몰라요... -_-a) 하지만 이 아리아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더구나 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가 수록된 앨범 <A Night At The Opera>의 제작을 위한 미팅에서 이 아리아가 쓰였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부여된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봅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삶과 애정사를 투영해 보면 더욱더 그렇게 보이고요.


같이 활동하는 퀸의 멤버들은 영국의 메인 스트림 출신인 데다가 그들의 삶도 메인 스트림이었지만 프레디 머큐리는 철저히 이방인이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살던 나라에서 쫓겨나 영국으로 이주해 온 잔지바르의 난민, 인종차별 심하기로 유명한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유색인종... 그런 그의 모습과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삶을 이어가는 집시 여인 카르멘이 겹쳐 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프레디의 애정사를 돌이켜보면 더더욱 그렇죠. 처음엔 여성인 메리 오스틴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로가 양성애자가 아닌가 하고 고민했고, 실제로 동성애자이기도 했었으니까요. 오페라 <카르멘> 속의 카르멘과 너무나 닮아있습니다. 게다가 카르멘이 부르는 이 노래 ‘사랑은 길들지 않는 새’의 가사에도 프레디 머큐리의 애정사가 함께 투영됩니다.


사랑은 길들지 않은 새
아무리 애써도 길들지 않아
아무리 불러도 소용없어
한번 싫다면 그만이야

겁 줘도 달래도 소용없어
저쪽이 지껄이면 이쪽이 입 다물죠
이 쪽 분에게 마음이 있죠
말은 없어도 좋아져

사랑은, 사랑은, 사랑은, 사랑은!

사랑은 타고난 보헤미안
법도 규칙도 없어
날 안 좋아한다면 내가 좋아해 주지
내가 좋아하면 조심해야 돼

*날 안 좋아한다면
날 안 좋아한다면, 내가 좋아해 주지
내가 좋아하면,
내가 좋아하면, 조심해야 돼*

(* 부분 반복)

새를 잡았다고 생각해도
날개가 있어서 날아가 버려
사랑이 멀리 있다면 기다리겠지만
기다릴 것 없어요 여기 있는 걸

당신 둘레를 요리 저리로
왔다 갔다 돌아와서
잡은 줄 알았는데 도망가고
도망간 줄 알았지만 붙잡혔지

사랑은, 사랑은, 사랑은, 사랑은!

사랑은 타고난 보헤미안
법도 규칙도 없어
날 안 좋아한다면 내가 좋아해 주지
내가 좋아하면 조심해야 돼

(* 부분 2회 반복)


영화 속에서 프레디와 메리의 관계가 파경에 이를 것은, 이미 메리를 생각하며 프레디가 ‘Love Of My Life’를 작곡하기 이전에 이 아리아로 복선이 깔린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카르멘>의 카르멘처럼, 프레디의 인생 또한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보헤미안의 삶을 살다가 에이즈 투병이라는 비극적인 마침표로 삶을 마무리하게 된다는 복선 또한 이 씬에 포함되어 있었던 셈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감독이 이런 장면에서 소품으로 사용하는 음악을 아무 이유 없이 고르지는 않았을 테고요.)


카르멘이 사랑은 길들여지지 않는 새와 같다고 했던가요? 카르멘 또한 길들여지지 않는 새 같았고, 프레디 머큐리 또한 그런 삶을 살았다는 것 또한 많은 분들이 동의하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았던 새였기 때문에 전설이 되어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https://youtu.be/KJ_HHRJf0xg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오페라단 - 비제 : 오페라 <카르멘> 중에서 ‘사랑은 길들지 않는 새’
매거진의 이전글 프레디 머큐리에게 메리 오스틴은 어떤 사랑이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