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길 위에 버스가 나를 떨구고 부르릉 떠나간다. 정류장 앞에 나란하게 모여 앉은 상가들, 어제도 오늘도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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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버스를 타고 통학했다. 언덕길을 미끄러지듯 달리면, 멀리 또래 학생들이 똑같은 교복에 비슷한 책가방 들고 버스 오는 방향으로 삐딱하게 서 있던 정류장의 아침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을 가득 태운 심술쟁이 버스는 항상 줄지어 선 사람들을 지나쳐 섰다.
순식간에 줄은 흩어지고 사람들은 버스 꽁무니를 따라 몰려갔다. 괴팍한 버스를 만나면 잡힐 듯 멈출 듯 약만 올리고 시커먼 매연만 뿜고 떠나가 버렸다.
뻘쭘하고, 분통 터지고, 약이 올라도 어쩔 수가 없었다.
지각이냐, 대문 통과냐 발을 동동 구르면 아슬하게 버스 한 대가 또 달려왔다. 멸망하는 지구를 떠나는 마지막 우주선, 남학생, 여학생 구분도, 체면도 없다.
버스에 구겨 넣고, 매달리고 발 한 짝 비집고 올라 서면 마지막 우주선에 끼어 탄 지구인이 된 것이다.
꿀꺽꿀꺽 사람들을 집어 먹은 버스는 토할 듯 내달렸다.
숨이 멎기 전, 남학교 정류장 앞에 학생들을 반쯤 토해내고, 버스는 또 달렸다. 하얀 양말 위로 찍힌 이름 모를 발자국들, 얼얼하지만 살아남은 자의 표식이었다.
고등학교 겨울 방학, 남산 도서관을 가기 위해 새벽 버스를 탔다. 선잠 달고 컴컴한 정류장에 서서 어둠 속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속에서 피어난 청어 빛 새벽이 묵은 밤을 차분히 거두어가고, 사물들을 조용히 깨워 나갔다.
주홍빛 눈을 뜨고 새벽을 가르며 달려오는 버스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다리였다.
물기가 덜 마른 버스 안으로 맑은 새벽공기가 몰려 들어왔다. 버스는 묵묵히 수많은 정류장에 도돌이표를 찍었다.
어느 틈에 새벽빛은 공중으로 흩어져 사라지고, 시끌벅적 기계소리, 말소리가 그 자리를 메워갔다.
다시 어둠이 도시에 내려앉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 맡겼다. '부릉부릉' 자장가 소리 베고 꿀잠 먹고 침 흘리다 덜컹 소리에 잠을 깼다..
늦은 밤, 딸아이를 마중하러 큰 길가로 나간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 꽁무니 불빛만 길 위에 벌겋다.
집 앞 신호등은 일찌감치 눈을 감아버렸다.
불 꺼진 상가들 사이로 손님을 기다리는 빵가게만 꽹하다.
큰길에 접어드니 멀리서 어스름한 불빛 안고 버스 한 대가 둥둥 떠밀려온다.
뒤꽁무니를 따라 신나게 달려간다.
버스가 멈춰 서고 앞 좌석에 코를 박고 잠이 든 남학생의 머리꼭지만 앞 뒤로 인사 중이다.
김 빠진 소리와 함께 문이 열였다 닫히고, 버스는 떠나간다.
밤을 가르고 자동차 불빛이 큰길 등선에 올라서면, 다시 고개를 쭉 빼고 누군가의 엄마로 버스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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