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드는 고지서와 광고지로 주인이 바뀐 지 오래된 우편함, 기다림과 설렘을 접은 것이 언제였던가. 서랍장 속 깊숙한 곳에 묵혀있던 낡은 편지 한 묶음, 하던 일 멈추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손글씨로 곱게 눌러쓴 편지와 엽서들, 콘크리트 틈을 비집고 올라 선 노란 민들레를 마주한 느낌이다.
학창 시절, 병아리 같았던 친구들의 고운 이름이 봉투 위에 푸른 잉크꽃을 피워냈다.
어리고 순수했던 맑은 내 친구들의 얼굴이 편지 위로 배어 나왔다.
문방구를 기웃대고, 썼다 지웠다. 애쓰던 친구들의 마음이 편지 속 가득 차 있었다.
편지 한 장 감아쥐고 잠시 타임머신에 올라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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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방학을 뚫고 날아온 친구의 편지는 여름날의 소낙비 같았다.
이어폰 나눠 끼고 소나무 숲에 앉자 푸르게 펼쳐진 하늘 올려다보며, 음표를 그리고 모차르트를 이야기했다.
꿈 많은 우리들의 그날 그 하늘은 너무도 높고 맑았다.
서로의 이야기를 함께 했던 기특한 청춘들, 우리들이 가려는 길을 알 수는 없었지만 서로를 응원해 주었다.
이제 멀리 떠나와 많은 것들이 변하고 우리에게 세월의 꽃이 피었어도 편지 속 친구는 그 자리에 그대로다.
창문 틈으로 펼쳐진 푸른 하늘, 풋사과 같았던 친구들의 얼굴이 구름처럼 피어오르다 흩어진다.
이제 감아 쥔 편지 내려놓고 나는 다시 일을 움켜쥔다.
'안녕! 내 고운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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