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쉬면 들킬까,참으면 터질까, 체한 듯 숨 한 모금이 가슴에 얹혀 잠 못 이룬다.
겨울 창에 남몰래 입김 올려 기대 보지만 아린 숨에 그 자리만 아프다. 밤이 찾아와도 꿈꾸지 못하고 애절한 마음만 편지 위에 그렸다 지웠다, 청춘은 밤을 하얗게 서성인다.
쌀쌀했던 늦은 겨울, 여자중학교에 입학을 앞두고 긴 머리도 똥강아지 같았던 어린시절도 싹둑 잘려 나갔다. 마음은 어디에 몸은 누구, 탁구공같은 나.
태권브이를 꿈꾸던 초등시절은 이젠 안녕, 소리 소문이 껌딱지가 들썩대며 신호를 보내왔다. 있는 듯 없는 듯 움을 트고 앉은 코딱지 만한 망울, 성장통은 나도 모르게 시작되었다.
어느 날은 두 주둥이가 고개 쳐들고 올려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면 더 성이나 보였다. 악독한 종기 같은데 왜 내 껌딱지에 생겼을까?' 나는 자연에 순응하며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가는 애벌레가 아니었다. 모르면 약이 아니고 큰 고민이고 근심거리였다. 빨리 가라앉기를 간절히 애가 타게 기도하다 잠이 들었지만, 나의 바램을 비웃듯 껌딱지는 애벌레처럼 자연스럽게 변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자연인이라는 사실을 어린 나는 몰랐다.
엄마 옆구리에 붙어 앉아 드라마를 많이도 훔쳐보았지만 나에게 이런 못쓸 병이 생기다니... 나의 최선은 서랍을 뒤져 만병통치약처럼 엄마와 할머니가 애용하시던 신신파스를 성난 껌딱지에 한 장씩 나눠 부치고 허공에 간절히 기도하는 일 밖에 없었다.
엄마의 촉은 요즘 데이터나 윈도우보다 빠르다. 풀 죽어 다니는 딸을 모를까, 나는 마주 못해 엄마 앞에서 티셔츠 자락을 올리며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울음이 터졌고 엄마는 웃음이 터졌다.
궤도가 없는 내 우주는 갈팡질팡이었다.
탱자 같은 내 어린 날들, 나는 천천히 변신을 준비하는 애벌레였다.
photo 갱이비밀스러운 것들도 생겨났다. 태권도복을 입으면 슈퍼맨처럼 날아다니던 나는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도장에 가면 장난치고 때리고 도망치며 놀던 남학생들이 조금씩 불편해졌고, 단발머리에 핀을 꽂았다, 묶었다 한참을 거울 앞에 서성대기도 했다.
그런 변화들을 가족들이 아는 체하는 것이 왜 그렇게 부끄럽고 조마조마했을까? 밤이면 별이 내려앉은 지붕 아래 이불 뒤집어쓰고 라디오 속에 들어앉은 별밤지기와 속닥이다 잠이 드는 것이 좋았다.
어느 이른 겨울 아침, 아빠는 배달 우유와 작은 편지 봉투 하나를 들고 들어오셨다. 첫사랑의 고백이 담긴 어느 남학생의 편지, "이거 남자 친구한테 온 편진가보다?" 아빠의 그 한마디에 평온했던 이른 아침은 깨지고 처음 느껴보는 그 야릿한 부끄러움에 그만 편지에 화풀이를 해댔다. 다음날 와싹 구겨진 편지는 잘 펴져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같은 학교, 같은 도장에 다녔던 그 남학생, 학교 가는 길목에 마주쳤던 그 아이를 기억한다.
어리고 순수했던 소년의 마음을 받아주기엔 내 우주가 너무 불안정했다. 나는 그 소년의 첫사랑에 주먹을 날렸다.
이제 멀리멀리서 그날을 돌아보며 애기 애기한 우리들의 우유빛깔 첫사랑과 애벌레의 성장기에 미소 짓고,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성장통은 시간을 건너 황금열매로 자라 지난날들을 더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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