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이야기

마중

by 뺑덕갱

어스름한 밤이 찾아오니 가로등이 슬그머니 눈을 다. 잠시 하던 일 멈추고 밤 마중하러 베란다 난간에 기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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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 너머로 무너져 내리는 태양, 초저녁이 활활 타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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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의 비석처럼 차갑게 식어있던 아파트촌이 죽음에서 피어난 흡혈귀처럼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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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 건너가는 이 순간, 태양은 내 눈마저 할퀴고 떠나가고 밤을 실은 구름 떼가 차분히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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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말이 없다. 야금야금 태양의 흔적을 먹어 치 울뿐이다. 밤에 문이 열리면 태양의 꽃들은 숨을 죽이고 다음 날을 꿈 꾼다.

시멘트 위로 피어난 밤의 꽃, 달과 별은 눈이 멀고 기러기들은 불나방이 되어 밤하늘을 허우적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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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지면 숲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포식자들이 눈을 뜨고 쫓기던 생명의 한가닥 비명소리만 무심하게 숲을 떠돌다 사라진다.

숨죽여 지켜보던 풀벌레는 소곤대다 쪽잠 청한다. 밤은 냉철하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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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 거리는 자동차 불빛, 밤에 파묻힌 사람들 사이를 마음이 헤집고 다닌다. 가로등 방패 삼아 딸아이를 마중한다. 모든 것이 가려지고 숨겨져도 어미의 마음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고 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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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늪에 점점 빠져들면 '쉑쉑' 숨소리만 지붕 위를 떠돈다. 화려한 밤의 등꽃도 하나 둘 떨어지고 고개 숙인 가로등만 희뿌옇게 서서 밤을 배웅한.

어둠이 흩어지고 푸른빛이 차오르면 밤은 정중히 물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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