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끝자락에서 지나 온 시간을 돌아보고, 내일을 마중하며 잠시 쉬어간다. 마음을 움직이는 축제 같은 이 달이 너무 아까워 보내기가 싫다.
12월이 익어가면 제일 먼저 크리스마스 장식을 꺼내 하나의 의식을 치르듯, 아이처럼 바닥에 철퍼덕 앉아 그것들을 늘어놓는다. 언제부터였는지, 나는 늘 12월을 기다렸다. 빨간 양발 머리맡에 걸어두고 잠이 들었고 아침이 오면 젤 먼저 양발을 뒤적거렸던 어린 시절, 이제 마음의 명절이 되어 매년 가족을 생각하며 트리를 장식한다.
'뽕짝뽕짝, 쿵작쿵작' 캐럴송이 절로 코끝에서 터져 나오고 소나무에 구슬 공 매달며 마음은 둥실 손만 바쁘다.
photo 갱이
12월을 추억하며
너도밤나무가 줄지어 선 낯선 길 끝머리에 작은 시장이 있었다. 그곳에는 언제나 마음 고픈 이들이 오며 가며 잠시 엉덩이 붙이고 따끈한 수프 한 그릇에 빵을 적셔먹었다. 사람과 음식의 온기가 유난히도 훈훈했던 겨울날의 그 식당, 그곳에 마음 기대고 앉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프 한 그릇에 가족들을 떠올렸던 타국에서의 12월, 그해는 마음이 꽤 추웠다.
photo 갱이트리 장식과 아기 자기한 크리스마스 카드가 소소하게 내걸린 상점 가판대, 밤이 오면 거리는 신이 나게 들썩대고 은빛, 금빛 장식들로 치장한 쇼윈도는 선물꾸러미 같았다.
망설이다 집어 든 카드 한 장, 하얀 눈이 뒤덮은 산골 마을에 집집마다 굴뚝에선 몽글몽글 연기가 피어오르고, 빨간 드레스에 초록 머플러 두른 젊은 처자와 총각들이 얼어붙은 호숫가에 삼삼오오 모여 스케이트를 타고 보송보송한 눈송이가 커튼처럼 날리던 카드 속 풍경.
'세상 이렇게 행복한 마을이 있을까?' 그 그림 한 장에 잠시 꿈을 꾸었다.
가족과 선생님, 친구들 카드를 고르며 집었다, 놓았다를 수십 번, 모아둔 용돈 쥐고 설레는 마음으로 선물가게를 기웃대며 진열대에 코를 박고 서 있던 어린 갱이, 구름빵 같았던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말랑한 마시멜로 맛이 나는 캐럴송이 얼어붙은 거리를 달달하게 녹이던 12월, 그해 내 주머니는 텅 비고 마음은 부자가 되었다.
크리스마스와 맞물려 방학이 시작되면 미술시간은 마치 김장철 풍경처럼 책상 위에는 울긋불긋 색종이와 반짝이 풀, 가위와 색연필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머릿속 한가득 겨울 풍경 늘어놓고 산타 할아버지 굴뚝 위에 올렸다, 썰매에 태웠다, 할아버지 수염 떼어 내 코에 붙이고 짝꿍과 머리 맞대고 웃음 터졌던 여고시절. 교과서 팽개치고 카드 한 장에 행복 가득했던 교실, 솜사탕 같은 고민 하다 고개 들어 친구들 둘러보니 책상에 고개 파묻고 그리고, 자르고,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아낌없이 쓰던 12월, 그해 우리들의 웃음은 일등이었다.
12월이 오면 엄마 손에 이끌려 명동을 자주 들락거렸다. 분주한 사람들의 발길, 현란한 네온사인으로 치장한 도심의 건물들, 그 사이로 울려 퍼졌던 청명한 종소리는 짜증 섞인 도시의 소음을 뚫고 사람들 마음을 도닥이고, 구세군의 빨간 냄비에는 희망이 담겼다. 12월이 오면 그해, 그 소리를 나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올 12월은 멀리 떨어져 지내던 나의 벗들과 마음 모아 연주하며 가슴 벅찼고, 보석처럼 박힌 크리스마스에는 스승님과 지인, 좋은 사람들과 연주하며 코로나에 지친 사람들 마음을 함께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그 어느 해보다 더 특별한 추억을 나는 선물로 받았다.
이제 귀한 12월을 마음에서 떠나보낸다.
한 발짝 떼면 새해의 문이 열린다. 지나 온 시간에 고개 숙이고 감사하며, 손 모으고 정중하게 새해를 맞이하련다.
줄지어 기다리는 열한 달,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보내려 계획할 것이고, 가족과 친구들 모두를 존중하며 더 성숙한 어른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다시 찾아와 줄 12월을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 하고 싶다.
'동트는 새벽하늘' photo 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