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눈

귀한 손님

by 뺑덕갱

무심히 바라보던 초저녁 하늘에 날아드는 반가운 겨울 손님. 묵직한 하늘 뒤로하고 여유로운 저녁 비행이다.

고개 내밀어 반기니 낯짝에 달려들어 물이 되어 허망이 사라진다.

얼마나 멀리서 왔을까?

얼마나 고대하다 왔을까?

눈사람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가버렸다.

미안한 마음에 찡긋 코주름으로 인사 건넨다.

팔팔한 겨울바람 등 타고 우왕좌왕, 신이 난 아이처럼 쏟아져 나와 세상 구경이다.


'지구는 처음이지?'


photo 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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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언 바람에도 귀에 걸린 입꼬리가 손님을 반긴다.

쉴 새 없이 밀려드 겨울 손님 덕에 이 밤은 뽀얗게 분 칠한 얌전한 색시가 되었다.


두툼한 외투 속에 몸 집어넣고 벙어리장갑도 꺼내 들었다. 털 장화 신으려니 마음만 바빠 헛발질이다. 이 밤에 찾아든 귀한 손님, 눈에 마음에 꾹꾹 눌러 담으려 밤마실 간다.

모자 위로, 어깨 위로 '시끌시끌' '사뿐사뿐' 내려앉은 발자국 소리에 귓가가 간질간질 마음은 사뿐사뿐 설렌다. 잠은 잠시 접어둔다.

밤도 숨고, 아파트 촌도 숨어버렸다.

고은 눈 길 위에 투박한 내 털 장화도 좋아서 날뛴다.


photo 갱이

언제부터인지 자연의 시계는 삐걱거린다. 아침햇살 먹고 반짝대는 눈 쌓인 담, 손으로 휘저으며 학교 가던 풍경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친구들과 눈 사람 만들고, 콩고물 뒤집어쓴 인절미처럼 눈에 뒹굴던 풍경을 당연하다 생각했다. 탐스러운 눈을 만나도 뽀송한 하늘 아래 있어도 불안한 마음은 해마다 커져 간다.


우리 아이들도 해마다 겨울 눈을 맞이하면 좋겠다.

모든 것은 변해가고... 되돌릴 수는 없지만 내 마음은 간절하다.


모자 푹 눌러쓰고 입김 호호 불며 딸아이와 언 손 꼭 잡고 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눈에 파묻힌 아이의 뒷모습이 어제의 추억이 되고 나는 이 보물을 주어 담아 신이 나는데, 아쉬운 마음이 따라붙는다.


허공에 외쳐본다.

'내년에도 와 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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