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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긴 이별

by 뺑덕갱


벌겋게 불이 번져오는 저녁 하늘, 같이 놀던 친구의 얼굴이 당근 빛으로 익어가고, 공을 차던 아이들도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다. 철봉에 다리를 걸고 거꾸로 매달렸다. 침침한 교실, 심심한 운동장,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이 흔들흔들 그네를 탔다. 쓸쓸한 학교를 뒤로하고 교문을 나섰다. 회색빛 어둠이 초저녁을 이끌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하나둘씩 집 등이 눈을 떴다. 점점 길어지는 그림자, 친구 삼아 집으로 걸어갔다.


학교를 오가는 길모퉁이에 마당이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오래된 집이 있었다. 그 집 담을 끼고 지나다닐 때면 습관처럼 마당을 들여다보았다. 낮은 담장 너머로 멀대 같은 해바라기들이 뒷짐 지고 담벼락에 나란하게 기대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 집 뜰은 늘 심심해 보였다. 삐죽이 밖으로 튀어나온 툇마루 구석에는 둘둘 짜 놓은 걸레가 나뒹굴었고, 엄마가 김치를 담글 때면, 우리 집 수돗가에 널브러져 있던 김치재료들이 그 집 마당 한쪽에 삐뚤빼뚤 앉아 뜰을 지키고 있었다.


그날은 이상한 날이었다. 그 집 담벼락을 막 끼고 돌아섰을 때, 번잡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울부짖는 소리, 마당을 날아다니는 나비조차 지루해 보였던 그 집이 오싹한 무서움을 준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그 집을 지나갔다.


입 다물고 있던 대문도 집안을 드러낼 만큼 활짝 열려있었다. 마당에 드문드문 모여 앉은 칙칙한 사람들, 누군가 목구멍이 터지게 '아이고아이고' 울부짖었고 그 소리는 돌림노래처럼 끝도 없이 그 집을 맴돌았다.


누에고치처럼 주름진 등 하나가 허름한 나무 현관문에 한 동안 매달려있었다. 오래전의 일처럼 시간은 그 집을 지나갔다. 그 집은 예전의 지루함은 회복하지 못했고 맥을 놓은 허깨비처럼 쓰러져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먼발치에서 죽음을 보았고, 연관된 모든 것들, 그 집을 지나가는 꼬맹이조차도 정을 떼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집 마당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갱이


시간이 세월이 되고,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앞에서 나는 그날, 그 집의 슬픈 돌림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죽음은 참 냉정하다. 울부짖고 매달려도 돌아보지 않는다.


누군가의 따뜻한 온기가 사라진 그 집의 쓸쓸함처럼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사랑하는 이들의 육체를 눈에서 놓아주고, 시간의 강 위에서 정신을 다독인다.


할머니, 언니, 따뜻한 집과 같았던 빼뜨꼬 선생님, 모두가 허공을 꿈처럼 빙빙 떠돌면, 나는 눈물 호수에 잠긴다. 그들의 선한 가르침, 수수하고 곧았던 삶이 모든 것에 곱게 배어, 나는 다시 따뜻한 볕이 내려 쬐는 땅 위로 올라선다.


죽음은 나에게 긴 이별일 뿐이고, 사랑하는 이들은 먼 행성으로 떠나갔다.

먼 훗날, 그곳에서 나는 따뜻한 포옹을 할 것이다.

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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