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드세게 지나가는 논 한복판에서 꼬맹이의 누나는 서부의 총잡이처럼 서있었다. 동생을 보자마자 등짝을 후려치던 그 아이는 화가 많이 난 듯 보였다. 둘은 서울에서 온 손님을 까맣게 잊은 채 투닥대며 앞장서서 집을 향해 걸어갔다. 여자아이는 무뚝뚝하고 말이 없었다. 몇 날을 그곳에서 보내는 동안, 나는 그 아이와는 친해지지 못했고 하루 종일 꼬맹이와 들과 저수지를 쏘다녔다.
시골집 가는 길에 드리워진 밤은 모든 낮 빛을 야무지게 먹어 들어갔다. 앞서가던 아이들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논 밟는 소리만 서걱서걱 들려왔다. 멀리 시골집에서 새어 나오던 작은 불빛이 한송이 꽃망울처럼 어둠 속에서 피어나 집안을 비추고 있었다. 도시의 불빛처럼 쨍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곳에는 곱고 참한 등불이 집안 구석구석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밤하늘의 별들과 어우러져 시골집을 품고 있었다. 그 집을 떠나올 때쯤, 푸근하고 따뜻한 등불 아래서 가족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좋았다.
대문 옆 외양간에는 누렁소가 들어앉아 콧바람을 뿜으며 문지기처럼 집을 지키고 있었다. 간 밤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거친 숨소리에 놀라 나는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오래전, 엄마를 모시고 시제사에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다. 그 외양간은 주인을 잃고 휑한 품만 들어냈고, 또 몇 해가 흘러 그 집 앞에 섰을 때는 너저분한 물건들의 창고가 되어 있었다.
우리 집에 손님으로 왔던 그분이 부엌에서 나오며 걱정 어리 말투로 반겨주었다. 마당을 끼고 ㄷ자로 방들이 놓여있었다. 대문을 마주하고 마루가 높게 올려져 마당을 내려다보았다. 인기척이 나자 마루에 붙은 방에서 아저씨가 나오셨다.
그분은 물으셨다. “네가 수명이 딸이냐?”
그 인사말 속에는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 방에는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도 계셨는데, 내 이름은 묻지 않으셨다. “네가 수명이 딸이라고?” 아저씨를 마주 보시며 반기시던 할머니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날 그곳에는 수명이가 있었다.
아주 먼 옛날, 엄마는 그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나는 엄마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학교 가는 길, 어린 동생이 주저앉아 떼를 부리면 오빠는 동생을 업고 달래며, 봄이면 진달래가 만개한 꽃길을 따라가고, 여름이면 쨍한 볕을 이고 작은 시냇물을 건너고, 가을이면 도토리와 밤송이가 굴러 떨어지는 숲을 지나고, 겨울이면 하얀 눈길을 호호 불어대며 걸어갔을 자상한 오빠와 꽃 같이 어여쁜 동생이 어른거렸다. 세월 따라 어린 동생은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자라서 그 집 마당에 서있었다. 푸근한 등을 내어주던 오빠와 신이 나서 업혀 가던 어린 동생이 시골집 마당에 어른거렸다.
꼬맹이를 따라 건넛방으로 들어갔다. 길쭉하게 생긴 방 안쪽 구석으로 두툼한 광목이불이 뜨근한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궁이와 가까웠던 아랫목은 꼬맹이와 그 누나가 이불을 잡아당기며 신경전을 벌일 때마다 시커멓게 타버린 방바닥이 민낯을 드러냈다. 아이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 속에 몸을 쑥 집어넣고는 나에게도 손짓을 했다. 그곳의 날씨는 매우 거칠고 사나웠다. 서울로 돌아왔을 때, 내 양볼이며 입가가 그 아이들처럼 허옇게 터서 입만 움찔거려도 '쩍' 갈라져 피가 났다. 엄마는 밤마다 화장크림과 꿀을 떡지게 발라주셨다.
나는 꼬맹이 옆으로 다가가 슬쩍 이불을 들추었다. 그 묵직한 이불속에는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월이 지나고 나는 간혹 어느 청국장 전문 식당에서, 블루치즈가 담긴 봉지를 뜯었을 때에도, 남편의 여름 양말에서 그 콤콤한 냄새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메주도 덮어주고, 밖을 쏘다니는 아이들도 겨울 내내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구리구리 한 놈을 이긴 것은 얼굴이 얼얼해지고 코끝을 땡땡 얼어붙게 만든 겨울 외풍이었다. 집안에도 바람이 살고 있었다.
그놈은 내 몸을 광목이불속으로 밀어 넣었다.
방을 빙 둘러 벽지 대신 시커먼 신문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뜨끈 뜨근한 아랫목에 등을 대고 누워, 광고 그림을 보거나 의미 없는 글씨들을 중얼거리다 꿀맛처럼 잠이 들었다. 바람은 끊임없이 나무 문짝을 흔들어댔다. 밤이면 더 요란스럽게 '덜컹덜컹' 낯설고 무서웠던 그 소리는 며칠이 지나자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그 집을 떠나 올 때쯤, 나는 그 집 아이들처럼 광목 이불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 몸을 녹였다.
어린 손님을 위해 아주머니는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와 두부를 가득 넣은 된장찌개를 해주셨다.
방 한가운데 놓여있던 화로 위로 뚝배기가 '바글바글' 소리를 내며 엎어질 듯 부글거렸다.
오빠가 저녁상을 들고 들어왔는데, 중학생 같아 보였다. 오빠는 잘생기고 매우 친절했다. 둥근 상에 오빠와 아이들이 모여 앉자, 아주머니가 김치찌개를 들고 들어오셨다. 돼지비계가 두툼하게 달린 고기 한 점을 집어 밥 위에 올려주시며 많이 먹으라 하셨다. 나는 아주머니의 눈치를 보다 꼬맹이 밥그릇에 그것을 살짝 집어넣었다. 아기 너구리 같은 꼬맹이는 내 얼굴 한번 쳐다보고는 모른 척 먹어버렸다.
텔레비전에 길들여진 나는, 그곳의 밤은 심심했다. 우리는 오빠를 따라 문간방으로 건너갔다. 곡식 꾸러미가 차곡차곡 쌓여있던 방은 오빠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푸석하게 마른 풀냄새가 가득했던 그 방에, 우리는 이불을 덮고 등잔불 밑에 얼굴을 맞대고 앉았다.
이상하게 마음이 콩닥거렸다.
나는 그날 밤 콤콤한 이불속에서 메주처럼 잠이 들었다. 잠들기 전, 아주머니가 마루 구석에 요강이 있다고 알려주셨는데, 서울에서 온 어린 손님에 대한 배려 같았다. 그러나 귀신 소굴 같은 화장실이 요강에 앉아 오빠와 마주치는 일보다 훨씬 났다고 생각했다.
밤이 깊어가자 배는 점점 똥똥해지고 한참을 뒤척이다 옆에서 자고 있던 만만한 꼬맹이를 깨웠다. 시골 밤은 먹통이었다. 마루에 앉아 먹물 같은 밤을 뚫어지게 보고 있으니, 댓돌 위에 놓여있던 하얀 고무신이 야광별처럼 빛이 돌며 어질러진 신발들이 제 각각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더듬더듬 내 신발을 찾아 신고, 꼬맹이를 따라 대문 밖 화장실로 향했다. 쉭쉭 대는 소의 숨소리만 들려왔다.
화장실 문짝은 소쿠리보다 더 헐거웠다. 문을 슬쩍 잡아당기자 '삐거덕' 심장이 벌렁거렸다. 기다란 발판에 쪼그리고 앉자, 밖이 부끄럽게 내다 보였다. 나는 문을 반쯤 열고 앉아 꼬맹이의 이름을 쉼 없이 불러댔다.
'야~ 너 거기 있지? 야~'
그때마다 꼬맹이는 또 수줍게 대답해 주었다. 광목이불속 냄새에 혼쭐이 났지만, 수천만 년을 묵었을 것 같은 그 조그만 화장실 속 냄새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바지를 다 올리기도 전에 내 몸은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나는 참았던 숨을 공룡처럼 내뿜으며 냉수 같은 밤바람을 들이켜고 또 들이켰다.
잠시 전까지 불안하고 초조했던 마음은 어느 틈에 싹 가셨다. 그때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처럼 반짝였던 그 수많은 별들과 나는 눈이 마주쳤다. 새까만 밤하늘에 촘촘히 박혀있던 똘망한 별들에 홀려, 나는 넋을 놓아버렸다. 내복만 입고 떨고 있던 꼬맹이가 잡아끌기 전까지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손을 뻗으면 한 움큼 잡힐 듯 수북했던 그 밤하늘에 별들, 그 별들은 내 마음에 콕 박혀 지금도 빛나고 있다.
아기 너구리 같았던 꼬맹이와 똘망하게 깜찍했던 꼬마별들은 그곳에서 맑고 순박하게 자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