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줄무늬 꼬리는 미끈한 뱀의 몸통이고,
귀신같은 걸음걸이는 깊은 산중의 사냥꾼이다.
호피무늬 두른 뒤태는 세렝게티를 주름잡는 표범이고, 햇빛에 움찔거리는 눈매는 땅 위의 사냥감을 노리는 하늘의 포식자다.
'범 내려온다!'
촉촉한 봄 비가 숲을 적시니 싹도 터지고, 꽃망울도 터지고 '웅성웅성' 아이들 자라듯 쑥쑥 커가는 4월의 숲, 그 한가운데서 나는 그 녀석을 만났다.
한적한 숲길에 서있는 내 모습이 외롭게 보였는지 어느 틈에 다리사이를 쓱 스치고 지나가며 알은체다.
'4월의 숲에서 만난 냐옹이' photo 갱이
'어디서 왔어? 깜짝 놀랐잖아.'
한마디 했더니 꿀 바른 소리로 내 애간장 녹인다.
무늬는 범인데 입 여니 냐옹이다.
'냐옹아! 냐옹아!'
어느새 친근한 이름이 되어 부르고 또 부른다.
우리 집 냥이 간식 반을 덜어 호주머니에 넣으려 하니 발밑에 웅크리고 앉은 냥이, 서운한 눈빛으로 흘겨본다.
'싼쵸야! 엄마가 네 간식 훔쳐간다!'
딸내미가 뒤통수에다 대고 이른다.
'에따! 모르겠다.' 주머니 가득 간식 봉지 쑤셔 넣고 산으로 뛰니 바지춤은 엉덩이에 매달리고, 입 틀어막은 마스크는 '펄럭 펄럭' 심장은 '벌렁벌렁'.
저녁 바람이 살랑대면 바람난 여인네처럼 밥도 팽개치고 홍길동처럼 단숨에 가파른 산을 접어 올라간다.
산길 한복판에 늘어지게 누워 지나가는 사람 구경, 숲 구경하는 냐옹이 만나러 간다.
'냐옹아!' 부르면 착한 어린애처럼 대답해 준다.
어느 날은 '가는 날이 장날'이라 빈자리만 휑하다. 부푼 마음 바늘 끝에 콕 찔린 느낌이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바람 새는 풍선처럼 숲을 뒤져 보고, 공기 반 소리 반 섞어 불러봐도 메아리 조차 대답이 없다.
볼 따귀에 달라붙은 풍선껌처럼 폭삭 꺼진 허탈함으로 미적대며 혹시나 하고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뒷걸음질로 산을 내려왔다.
'별일 없겠지?'
마음이 가니 걱정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예뻐해 주고 걱정해 주는 사람들도 만났겠지만 분풀이를 쏟아내며 지나가는 못생긴 사람들도 만났을 텐데... 냐옹이는 참, 친절하다.
헤어지는 시간이 오면 나는 냐옹이에게 당부한다. '나쁜 사람들이 나타나면 도망가!!'
해가 기울면 산이 다가온다. 그 속에 살고 있는 많은 생명들이 눈에 담기고 귓가에 맴도니 내 마음이 그곳에 닿는다
4월의 끝머리에 접어드니 숲은 더 성숙해 가고 냐옹이의 자리도 나뭇잎에 가려 어른거린다. 풀 잎 사이로 냐옹이가 까꿍, 반가운 마음에 다리보다 입이 먼저 달려간다.
'냐옹아! 냐옹아!'
오늘은 참한 언니 품에 안겨 아기처럼 반긴다.
인연은 서로 닮은 듯 다가오고 우리는 냐옹이를 바라본다.
5월 숲에서 나는 냐옹이와 언니의 이야기를 그리려 한다.
'숲 속의 냐옹이' photo 정민님
'겨울 숲 속에 행복한 냐옹이' photo 정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