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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날아라

홀씨 공주와 뒤영벌의 지구 여행기

by 뺑덕갱

하늘정원에 어느 날 씨앗 하나가 날아들었어요.

씨앗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밤새 자라나 열매를 맺었지요.

아침에 정원을 돌보던 부부는 깜짝 놀랐어요.

"이게 뭐지?"

열매를 만지려 하자 웅크리고 있던 작은 아이가 기지개를 켰어요.

'아우, 잘 잤다.'

부부는 아이를 '홀씨 공주'라고 이름 지었어요.

공주는 정원을 뛰어다니며 벌, 나비와 함께 놀기도 하고, 부부가 정원 가꾸는 일도 보며 씩씩하게 자랐어요.

공주의 몸에는 언제나 씨앗들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주머니에도 담겼지요.


어느 날, 홀씨 공주는 담을 타고 멋지게 뻗어 올라간 담쟁이덩굴 꼭대기가 궁금해졌어요. 공주는 줄기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어요. 하루 종일을 올라가야 했지요. 그런데 담장 밖 세상은 온통 회색빛이었어요.

'슝슝'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바람소리도 들려왔어요. 벌새보다 더 빠르게 미끄러지듯 달려가는 물체도 보였지요. 공주는 담장 밖 세상이 더 궁금해졌어요. 그때 꽃가루가 잔뜩 묻은 뒤영벌 한 마리가 말을 걸어왔어요.

"거기서 뭐해?" '부릉부릉'

'담장 밖에 가 봤어?' 공주가 벌에게 물었지요.

'갔나? 안 갔나?' 뒤영벌은 고개를 갸우뚱대며 혼잣말을 했어요.

“저곳에 가보려고.” 말이 끝나자마자 공주는 담을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뒤영벌은 겁이 났지만 담장 너머가 궁금하기도 했지요.

“같이 가." '부릉부릉'

공주를 등에 태운 뒤영벌은 담장 밖 세상으로 힘껏 날아갔어요.


얼마만큼을 갔을까요?

'슝슝' 그 소리가 가까이 들려오자 공주를 태운 뒤영벌의 몸이 이리저리 마구 흔들리다 '휙' 하고 웅덩이 속으로 내동댕이쳐졌어요.

'우당탕탕' '퐁당'

고인 물속에는 플라스틱 병이며 비닐봉지가 둥둥 떠다녔어요.

그때 '웽' 소리가 들려오더니 입이 뾰족한 모기떼들이 공주와 뒤영벌에게 무섭게 달려들었어요.

뒤영벌은 발버둥을 치며 날아오르려 했지만 비닐봉지가 몸에 감겨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거기 누구 없어요?" 공주가 있는 힘을 다해 외쳤지요.

두꺼비 한 마리가 눈을 꿈뻑이며 웅덩이 안을 내려다보았어요.

잠시 후, 두꺼비가 입을 천천히 벌리자 순식간에 혀가 날아와 모기를 '휙' 낚아채 갔어요. 공주는 이때다 싶어 손을 뻗어 두꺼비의 혀를 꽉 움켜주고는 뒤영벌과 웅덩이 밖으로 나왔어요.

두꺼비는 순간 너무 놀라 혀를 이리저리 마구 휘둘러댔지요. 그러자 공주를 따라오던 모기떼가 두꺼비 입속으로 '웽웽' 빨려 들어갔어요.

'휴우~'

둘은 다시 길을 떠났어요.


가도 가도 숲은 보이지 않았어요.

홀씨 공주와 뒤영벌은 배도 고프고 지쳤지요.

그런데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들려왔어요.

가만히 보니 바닥에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어요.

"길을 잃었나요?" 공주는 다가가 물었죠.

"나는 잣 까마귀야. 잣을 먹고사는데, 사람들이 잣나무를 다 베어 가서, 배가 고파."

잣 까마귀는 힘 없이 '꼬르륵꼬르륵' 소리만 냈어요.

공주는 잣 까마귀가 불쌍했어요. 주머니를 뒤적거리자 잣 세알이 나왔어요. 공주가 까마귀에게 잣을 던져주자 정신없이 한알을 까먹었어요. 그러자 금세 목소리가 돌아왔어요.

"고마워." '까르륵까르륵'

잣 까마귀는 나머지 잣을 입에 물고 멀리멀리 날아갔어요. 공주는 기뻤어요.


뒤영벌은 배도 고프고 겁도 났어요. 하늘정원에 핀 꽃들도 그리워졌지요. 갑자기 '부릉부릉' 울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더 크게 우는 소리가 쓰레기 더미에서 들려왔어요.

‘엉엉, 꿍꿍꿍꿍 ’

두더지 한 마리가 사람들이 버리고 간 상자 앞에서 울고 있었어요. 그 속엔 아기 두더지가 갇혀 있었지요.

공주와 뒤영벌이 애를 써도 상자는 꿈쩍하지 않았어요. 그때 멀리서 '까르륵까르륵' 소리가 들려왔어요. 잣 까마귀가 친구들을 데리고 돌아왔지요. 단단한 부리로 상자를 '콕콕' 찍어대자, 구멍이 나기 시작했어요. 금세 큰 구멍이 생겨 아기 두더지가 밖으로 나올 수가 있게 되었지요.

아빠 두더지는 너무 고마워서 입을 더 크게 벌리고 울었어요.

‘엉엉' "고마워요." '꿍꿍꿍'


산과 들에는 꽃과 나무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널려있었어요. 동물들도, 곤충들도 모두 떠나고 꿀과 과일을 따던 사람들도 더 이상 오지 않았어요.

홀씨 공주는 하늘정원처럼 그곳을 가꾸면 나무와 꽃도 자라고 동물들도 돌아올 거라 생각했지요.

공주는 가지고 온 씨앗을 땅 위에 뿌렸어요. 하지만 딱딱해진 땅 속으로 씨앗이 들어갈 질 못했지요. 그때 아빠 두더지와 아기 두더지가 흙을 '푹푹' 파고 돌아다니자 땅이 폭식해졌어요.

공주가 다시 그 위에 씨앗을 뿌리자 싹이 나고 쑥쑥 자라 꽃이 피었지요. 이번엔 '부릉부릉' 뒤영벌이 꽃밭을 날아다니며 꽃가루를 옮겨주었어요.

그러자 달콤한 꿀이 '뚝뚝', 딸기와 토마토가 '주렁주렁', 땅속에선 감자가 '댕글댕글' 자라기 시작했어요.

잣나무도 쑥쑥 자라 민둥산은 숲이 되어갔지요. 신이 난 잣 까마귀는 잣을 잔뜩 물고 먼 산으로 날아갔어요.

회색빛 세상은 점점 초록으로 변해갔어요.

꽃과 과일 향기를 맡고 먼 곳에서 곤충들과 동물들이 돌아왔어요. 사람들도 예전처럼 달달한 꿀과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되었지요. 홀씨 공주와 뒤영벌은 행복했어요. 둘은 하늘정원으로 돌아와 더 많은 씨앗을 가지고 친구들을 도우러 다시 먼 길을 떠났어요.


갱이

안데르센의 엄지공주를 모티브로 만든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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