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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럼쟁이 옻닭

마음으로 읽는 이야기

by 뺑덕갱

잠을 잃은 새벽은 살금살금 시골집 문지방을 넘어오고 아버지 헛기침 소리는 잠이든 집안을 떠돈다.

덜컹덜컹 방문 여닫는 소리, 삐걱삐걱 마루 밟는 소리, 밤새 가족을 품었던 집도 어머니, 아버지 성화에 기지개를 켠다.

아이들도 하나 둘 이불 밑에서 꼼지락, 아버지 불호령 떨어질라 냉큼 몸 일으켜 세우지만 눈꺼풀은 깨어날 생각이 없다.


뒷마당 꼬꼬네 가장의 기세등등한 나발소리.

허망한 영혼은 어둠이 걸쳐진 새벽 속으로 흩어지고, 붉은 해는 먼 산 가랑이 사이로 돋아난다.


마당 한 곁, 아버지는 불을 지피고 커다란 솥을 건다.

헛간 구석에 기대어 잠자던 참옻나뭇가지 묶여 나온다.

거친 껍질은 걷어내고 뽀얀 속 껍질만 벗겨 뚤뚤 말아 놓는다.

아버지에게는 순한 옻, 어머니에게는 여우골 여우보다 무서운 옻.

옻이 타면 벌겋게 뿔난 아주까리 열매가 되고 간지럼병에도 걸린다.

어머니는 멀찍이 서서 잠시 눈만 두고, 치마꼬리 잡힐라 부엌으로 생하니 들어가신다.

토닥토닥 다스리면 깊은 숲에 웅크린 산삼만큼 약이 되는 것을 아버지는 아신다.


닭뱃속에는 빈틈없이 쑤셔 넣어진 참옻으로 가득하고, 아버지 머릿속엔 횟배 앓은 큰딸 걱정으로 그득하다.

똥똥한 작은 옹기에 옹골차게 들어찬 옻닭, 탄탄한 문종이로 덥고 옹기 뚜껑으로 또 덥는다.

큰솥 밑동에 둠벙지게 물 담고 귀하게 옹기 앉힌다. 커다란 솥뚜껑으로 봉인하고 명약을 맞이할 의식을 끝낸다.


불 앞에 자리 잡은 아버지, 호호 달래고 어르며 기도하신다.

뻐꾸기시계가 세 바퀴를 돌면 아버지도 자리 털고 일어나신다.

조심히 옹기뚜껑 걷어내니 독 품은 김은 허공으로 사라진다.

솥쿠리에 거르니 뼈와 살은 무너져 내리고 진한 약국물이 옹달샘 물처럼 한 줌이 모였다.

방울방울 수증기 오르고 내리고, 지긋이 시간 밟으며 인내하니, 독기는 삭고 진한 약이 내려졌다.


수명아,

어린 딸은 아버지의 정성을 안다.

피할 수 없는 순간이란 것도 안다.

손은 단단히 코를 움켜잡고 곁눈질은 보상으로 놓아둔 눈깔사탕을 움켜잡는다.

귀한 약, 한 방울 남길라 아버지는 천하장군처럼 버티고 앉아 눈으로 엄히 말하신다.

여차하면 불 떨어질라, 수명은 큰맘 먹고 한번 꿈벅, 어느새 꿀꺽, 눈 뜨니 큰일이 지나갔다.

자랑스럽게 입 벌린 딸아이 입속에 아버지는 왕사탕을 상으로 넣어주신다.

한쪽 볼이 불룩하게 나온 수명은 의기양양 집안을 돌아다닌다.

큰딸의 배앓이도 끝나겠지, 시골집 마당 위를 건너가는 구름처럼 아버지의 시름이 지나가니 콧수염이 실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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