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읽는 이야기
뒷동산에 해가 걸리면 초가집 지붕 위에 뒹굴던 박은 잠시 해를 꿈꾼다.
어머니는 밥 지으러 부엌 턱을 넘어가시고 시골집 굴뚝에 뽀얀 연기꽃이 피어오른다.
댕글댕글 불려놓은 메주콩 한 바가지 가마솥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오동통 살찐 보리와 쌀을 조심히 붓는다.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으신 어머니, 부지깽이로 어린 불씨를 토닥인다.
담장 위에 올라앉은 야스러운 장미꽃다발, 밥 연기 따라 살랑거리고, 여물어 가는 아궁이 속 불꽃들은 궁실궁실 춤을 춘다.
밥물은 보글보글 밖을 넘보고 우직한 솥뚜껑도 덩달아 들썩인다.
어느새 구수한 밥 짓는 냄새는 부엌 턱을 넘고 마당을 뛰노는 아이들의 배꼽시계는 절로 똑딱거린다.
'영차' 두 손 합쳐 솥뚜껑 상투 잡아 올리니 어머니의 부슬거리는 머리카락이 휘청댄다.
살 오른 밥연기는 요 틈에 밀려 나와 어머니 눈앞을 가리고 시커먼 부엌 천장을 뽀얗게 메웠다.
두툽한 나무주걱 장착하고 휘적휘적 밥 연기 가르자 드러난 통통한 밥알들, 비단이 부럽지 않다.
커다란 나무주걱 물에 담가 한숨 쉬어주고 보리밥 등짝 살살 긁어주니 군침이 꼴딱꼴딱,
부뚜막에 쌓아놓은 빈 밥공기가 보리밥을 품는다.
가마솥이 밑천을 드러내니 누우런 콩들은 누룽지가 되어 노릿노릿 바닥에 누워있다.
'나 잡아 잡수!'
버석버석 들고일어날 기세다.
어머니는 이때다 싶어 두 손 모아 한 톨 남길라 박박 긁어모아 쟁반 위에 소복하게 담는다.
댕글댕글 둥굴려 양푼 그릇에 담아 부뚜막 귀퉁이에 면포 씌워 놓으시니, 어머니 입가에 미소가 푸짐하다.
'수명아!' 입 짧은 큰딸 손에 먼저 콩누룽지 쥐어 주고, 작은 아이들 몰려들면 또 하나씩 손에 쥐어 주신다.
슬며시 문틀 너머로 콩누룽지 뜯는 아이들 바라보시는 어머니, 큰 아이도 한 입 베어 물고 작은 아이들도 한 입 베어 무니 절로 웃음이 난다.
구수한 밥 짓는 냄새, 떠다니는 아이들 웃음소리에 시골집 마당에 찾아온 저녁이 슬그머니 자리 잡고 갈 생각이 없다.
'콩누룽지 맛은 어떨까? 전기밥솥은 그 맛을 품을 수 없겠지?'
창 안으로 밀려드는 저녁노을 뒤로 구수한 울 할머니의 밥 짓는 냄새가 딸려 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