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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랑 풀때기

마음으로 읽는 이야기

by 뺑덕갱

먼 곳에서 찾아온 봄 손님, 쌉쌀한 풀냄새, 향긋한 꽃향기 시골집 마당에 한 보따리 풀어놓는다.

어린 새싹은 땅집고 일어나려 애쓰고 매콤한 봄바람은 풀머리 쓰다듬고 떠나다.


성급한 진달래 꽃, 헐벗은 나뭇가지에 잎보다 먼저 나와 헤헤거리고, '옳거니!' 나물 캐는 봄처자 홀랑 따서 머리춤에 꽂아 버린다.


능선 따라 연두 빛이 잰걸음으로 다가오면 어머니는 소쿠리 옆에 끼고 들로 산으로 마중 가신다. 어린 수명은 어머니 치맛자락 잡고 딸려간다.


똥똥한 배꾸러미 움켜쥐고 흙속에 숨은 산달래, 산마늘 알큰한 아린 냄새, 어머니에게 들켜버렸다.

보송보송 모여 앉은 아기 쑥, 키 커지는 꿈은 꿈일 뿐, 소쿠리에 담겨 금세 풀이 죽었다.

산 모퉁이 돌까 말까 서성대는 꼬부랑 풀때기, 돌돌 머리 말고 수줍게 서있다.

냉정한 어머니 손, 또각또각 분질러 소쿠리에 던져 넣는다.

얼크러진 소쿠리에 봄 향기가 찰랑찰랑, 집으로 향하는 어머니 발걸음은 궁실궁실 구름을 다.


마당 빈자락에 삶은 고사리 너는 어머니, 고실고실 피어나는 아지랑이, 저녁 찬거리 생각에 손이 바쁘다.

화롯불에 올려진 우직한 뚝배기, 두툼한 부두, 감자, 콩된장 바글바글 복닥대고, 쫑쫑 썬 산달래, 산마늘 소복하게 올리니 봄을 품고 잠시 신선로 꿈을 꾼다.


'호호' 무심한 바람에 고사리는 말라깽이 되어가고, 망태기에 담으니 삐죽 빼죽 발길질이다.

다락방 구석에 모아두고 선선한 가을바람 찾아오면, 물에 삶고 통통 불려 조물조물 들기름에 무치고 고기국물에 퐁당 넣으니 고기인양 맛을 훔친다.


찾아오던 봄 손님도 세월을 먹고 어린 딸은 커서 시집을 가고 엄마가 되었어도

어머니는 봄을 따서 큰 딸 손에 꼭 쥐어주셨다.


해마다 할머니집 평상에 누워있던 꼬부랑 풀때기, 검은 봉지에 꾹꾹 눌러 담아 시집간 손녀딸 손에도 들려주시고 길 끝자락에 서 계셨던 나의 할머니, 작은 점이 될 때까지 나는 수십 번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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