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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먹은 굼벵이

마음으로 읽는 이야기

by 뺑덕갱

동산 위에 올라앉은 달님, 까맣게 속이 타버린 밤을 달래준다.

풀벌레소리 배게 삼아 꾸벅꾸벅 조는 시골집, 쌕쌕 숨소리만 떠다닌다.

잠을 잊은 아버지는 달그림자에 기대어 숨만 고른다.


봄에 정원을 가슴 가득 품은 큰딸, 만개한 계절의 축복을 받으며 꽃가마에 올라탔다.

지나간 순간들이 목메게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아버지얼굴은 애써 웃지만 바람 탄 꽃잎인지 울컥 대는 마음인지 눈앞이 흐려진다.


모두가 떠난 텅 빈 마당, 잔칫집 기름 냄새만 얼쩡거리고 나뒹구는 꽃잎만 바람길 따라 헛춤 춘다.

입벌리던 아기새는 품을 떠나 멀리 날아가고 솜털만 나뒹구는 빈 둥지, 허전함이 지독하다.

어김없이 밤은 오고 불 꺼진 사랑방은 허깨비처럼 눈을 감았다.

달빛 담은 마당이 야속하게 포근하다.


속도 모르는 꼬꼬닭, 새벽을 쫓아버리고 아버지의 하루는 다시 시작된다.

고된 날들을 쉬어 가던 밤은 언제였나, 어둠이 내려오면 아버지의 시름은 툇마루를 서성이게 하고 말없는 달님 부여잡게 한다.

콕콕 박힌 밤하늘의 별들이 얄밉게 반짝인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소식 한 장, 반가움에 마음이 먼저 달려가지만 기쁨은 번개처럼 도망가 버리고 남겨진 글자는 인정머리도 없다.


먼 훗날, 엄마가 된 수명은 산 넘고 물 건너오신 아버지를 떠올린다.

초가삼간 뒤져 모은 굼벵이, 들기름에 튀겨 가루 내고 약이 될라 품에 품고 먼 길 오신 아버지, 딸에게 해가 될라 물 한 모금 안 드시고 떠나가셨다.


엄마의 세월 속에 그날의 할아버지 뒷모습은 점점 짙어져만 가나보다.

허공에 눈을 두지만 울고 있던 아버지의 등은 시간이 세월이 되었어도 흐려지지 않나 보다.


늦가을, 시골집 볏짚머리 거둬내면 주둥이는 반들반들, 똥땅똥땅 살찐 굼벵이 튀어나와 몸서리치게 겁을 준다.

굼실굼실 터질 것 같은 알몸, 아버지는 굼벵이 털어 어린 딸 약을 만들 때면 식욕을 잃고 숟가락을 놓으셨다.

달빛 먹은 굼벵이, 여우골 여우보다, 산을 넘나드는 도깨비불보다 아버지는 징글맞게 무섭다고 하셨다.


이제는 뻐걱거리는 몸뚱이와 세월 속에 쌓인 후회뿐이지만 엄마는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애쓰며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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