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상기된 목소리로 엄마를 바쁘게 외치며 현관에 들어섰다. 조막만 한 두 손에 조심히 들려진 상자 하나, 책가방도 신발을 벗는 것도 잊은 채, 세상 행복한 얼굴로 현관에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조심히 상자 뚜껑을 들추며 들여다보라는 손짓을 했다. 컴컴한 상자 안에는 콩알만 한 새끼 햄스터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이게 뭐냐?” 산통 깨지는 소리로 물었다.
‘왜 그랬을까?’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학교를 마치고 문을 나서자 아이들이 담 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리고는 병아리 장사 아저씨를 빙 둘러 에워쌌다. 아이들은 쪼그리고 앉거나 허리를 반쯤 숙이고 서서 상자 속을 들여다보느냐 정신이 팔려있었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 병아리 삐악 대는 소리, 아저씨 야단치는 소리가 뒤섞여 학교 담장은 금세 북적였다. 나는 뒤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나서야 상자 앞으로 다가섰다.
노랑 병아리들이 상자 가득 꼬물거리고 있었다. 서로 몸을 기대어 졸고 있는 녀석도 어미 품을 찾으며 빽빽 우는 녀석도, 어린 내 눈에 짠해 보이고 귀여워 손이 절로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병아리를 조심히 쓰다듬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려 하자, 아저씨는 쌀쌀맞은 말투로 만지지 말고 사고 싶으면 돈을 가져오라 했다. 그리고는 곡식 뒤엎듯 병아리들을 휘적대다 한 마리를 집어 들고는 요리조리 살피다 다시 상자 속으로 휙 던져 넣었다. 벽돌 같이 차가웠던 아저씨의 그 얼굴이 아직도 어렴풋하다. 어린 내 마음에 아프게 새겨졌다.
나는 돈 가지고 올 테니 가지 말라고 아저씨에게 다짐에 다짐을 하고는 집으로 내달려갔다. 신발을 벗어던지고 엄마를 찾았다. 앞 뒤 사정은 잘라먹고 급한 마음에 100원만 달라고 생 때를 부리며 졸라댔다. 엄마는 내 고집을 이기지 못한다는 걸 잘 아신다. 결국에 100원을 얻어 손에 꼭 쥐고, 있는 힘을 다해 학교로 달려갔다. 그날은 이상하게 다리도 무겁고 학교는 멀게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숨이 턱에 차 도착한 학교 앞, 북적대던 담벼락 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저씨의 흔적을 찾다 혹시나 다시 오지 않을까,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성댔다. 담장 그림자가 길어지고 집을 향해 돌아서자 목구멍이 꽉 막혀왔다. 집에 돌아와 엄마 얼굴을 보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엄마는 눈물을 닦아주시고 다음에 꼭 사 오라고 달래주셨다. 100원짜리 동전이 손바닥에 콕 박혀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동전 모양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딸아이처럼 나도 그랬었는데, 가끔은 아이의 얼굴에서 어린 갱이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것 때문에 안 되고, 저것 때문에 안 되고’ 팍팍한 어른이 되어 잊고 살았다.
햄스터는 ‘햄토리’라는 이름으로 우리 가족이 되어 4년을 넘게 살았다. 선택의 여지없이 나는 보모가 되어 때로는 햄토리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말을 걸기도 하고, 마트에 가면 햄토리가 평생 먹을 만큼 큰 봉지에 든 해바라기씨도 장바구니에 구겨 넣었다. 햄토리가 집에 들어앉아 나오지 않으면 큰소리로 ‘햄톨아, 뭐하냐? 나와 봐!’ 힘껏 부르기도 했다. 냄새나는 톱밥을 치우다 가루가 날리면 짜증도 냈다. 햄토리가 집에서 탈출이라도 하면 거실 구석구석을 뒤지며 '잡기만 해봐라 이 놈!!' 호통을 치기도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고 땅콩 몇 알과 물 한 컵을 거실 가운데 놓아두면 최고의 미끼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늘 알게 모르게 우리 한편에서 복닥대며 함께 살아갈 줄 알았다.
언제부턴가 햄토리의 바지런한 움직임도 둔해지고 던져 준 아몬드며 땅콩이 톱밥 위에 널브러져 있을 때, 나는 이별이 다가옴을 느꼈다. 점점 굽어 가는 등도, 허옇게 늘어진 수염도,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 가는 햄토리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시간을 헤아리고 걱정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새까만 눈으로 나를 힘없이 바라보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콩알만 한 것이 내 마음 한편에 사랑이라는 작은 씨앗을 던져놓고 가버렸다.
몇 년 후, 함께 연주하던 첼로 선생의 냥이가 새끼를 배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나는 새끼 냥이를 가족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새벽 동이 틀 무렵이면 머리맡에 앉아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밥 달라고 규칙을 가르쳐 준다. 밥을 주면 그르렁거리며 고맙다고 한다. 밤이 되어 ‘코 자자!’하면 내 곁에 누워 잠을 자고, 악기를 불거나 음악을 들으면 보면대 밑으로 와 슬쩍 잠이 든다. 텔레비전에 빠져 멍 때리고 있으면 애절한 눈빛으로 한 발작씩 다가와 놀아 달라한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깡충 뛰어나와 한 뼘 떨어져 반긴다.
있는 그대로 한 뼘 사랑을 알려준다. 언제부턴가 우리 동네 길고양이도, 산책 나온 강아지도 있다고, 그들도 바라보라고 내게 알려준다.
'피곤한 싼초' photo 갱이‘싼초야, 우리 싼초 어디 있냐?’ 부르면 어느 틈에 나타나 모르는 척 옆에 앉아 에매랄드 눈빛으로 바라본다. 햄토리가 던져 주고 간 씨앗이 싼초라는 이름으로 움을 틔웠다.
그림 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