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툭’
방문 너머로 곰방대 재 떨어내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할아버지는 팔을 쭉 뻗어 곰방대에 불을 지피고는 두서너 모금을 쭉 빨아들이셨다.
곰방대 머리봉에 소복한 담뱃잎, 빠사시 소리 내자 좁쌀 같은 불꽃이 반짝반짝 드러났다 사라졌다.
할아버지 방에는, 오밀조밀 작은 서랍들이 들어앉은 오래된 앉은뱅이책상이 방문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기다란 곰방대와 놋재떨이가 단짝을 이루고 누워있었다. 서랍 속에는 문종이에 들기름을 입혀 만든 단아한 곽이 들어 있었는데, 곽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꾹 밀면 무시무시한 침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던 상자가 밀려 나왔다.
중국과 대만을 오가며 침술과 약재를 공부하신 할아버지는 다급한 동네 사람들과 가족을 위해 늘 그 침 곽을 꺼내 드셨다. 두 살 터울의 막내 이모는 잘 체하곤 했는데, 징징대며 집안을 돌아다니면 곧이어 할아버지의 불음이 떨어졌다.
"막냉이 방으로 건너오너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모는 경기를 하듯 도리질을 했다. 그러면 삼촌들이 반 강제로 어린 막내 이모를 할아버지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날은 명절 다음 날이었다. 나는 엄마 등 뒤에 찰싹 붙어 숨죽이고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았다. 삼촌들에게 붙들려 들어가던 막내 이모는 발광을 하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이모의 얼굴은 금세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벌겋게 달궈졌고, 악을 쓸 때마다 그 작은 콧구멍에서 누런 콧물이 줄줄이 딸려 나왔다, 숨을 들이켜면 콧구멍 속으로 휙 빨려 들어갔다. 늘 만나면 머리채를 쥐어뜯고 싸우던 이모가 그날은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누런 코를 혹 삼키지는 않을까? 큰삼촌 옷에 묻을까? 둘째 삼촌 옷에 묻을까? 나는 그것이 더 신경 쓰였다.
할아버지의 불방망이 같은 호통이 집안을 뒤흔들자 이모의 울음이 잠시 멎는 듯했다. 할아버지는 재빨리 제일 굵고 납작한 침을 빼 들었다. 번뜩이는 그 침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끝은 마름모꼴로 뾰족하고 몸통은 납작한 모양이었다. 그 침이 이모의 눈앞에 어른거리자 또 한 번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집안을 흔들었다.
삼촌들 사이로 할아버지의 손에 들려진 뾰족한 침이 언뜻 보였다 사라졌다. 나는 엄마 허리를 꽉 움켜잡고 등 뒤로 숨었다. 가슴이 콩닥 댔다. 이모와 할아버지가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러왔다. 잠시 후,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껄떡대는 숨소리만 들려왔다. 극심한 공포가 이모의 울음소리를 먹어버렸다.
나는 레일 꼭대기에 멈춰 선 청룡열차에 올라탄 느낌이 났다. 주먹 쥔 두 손이 반짝반짝 따끔거렸다. 가슴에선 재봉틀 달리는 소리가 났다.
“에구, 막내야! 다 끝났다.”
엄마의 말소리가 등을 타고 들려왔다. 엄마의 옆구리를 헤집고 이모를 건너다보았다. 어깨가 심하게 들썩이며 울음을 할딱이고 있던 이모는 어느 틈에 주먹만 한 눈깔사탕을 양손에 움켜쥐고 코를 훔치고 있었다.
외할아버지, 갱이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