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조화는 영원하다. 또는 영화롭다.
그가 조화로 방을 한 가득 메운 이유는 그 때문이리라.
살아있지 않기에 아름답다.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싶었을 뿐이다. 때론 영원에 환멸을 느껴 이들을 모두 갈아치운다. 다시 영원한 미(美).
그는 불완전한 아름다움에 영원의 안식을 주고 싶었다. 아니 갖고 싶어 했다. 언젠가는 사라짐을 알기에 순간을 온전한 상태로, 영원으로 남기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고객을 [재료를] 찾았고 이를 조금씩 천천히 조각해나간다. 결국 유디트는 영원으로 남았다. 한 송이 조화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C에게서 유디트는 사라졌다. 갑작스레 나타나 그의 삶을 뒤흔들어놓고 발자국만을 남긴 채 그에게서 사라졌다. 만약 눈이 내리지 않았다면, 차 안에 갇히지 않았다면, 바라던 대로 그녀의 생일날 자신의 고향인 주문진에 도착했더라면 그녀는 사라지지 않고 머물렀을까. 그녀는 누군가에게서 떠나는 법만 알았을 뿐, 자기 자신에게서 완전히 사라지는 방법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알았지만 이를 당겨줄 방아쇠가 없어 허공에 머물렀던 것일지도.
그러나 그녀는 그를 만났고, 마침내 클림트의 유화 '유디트'처럼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우울을 영원 속에 가둘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사랑을 느꼈다. 죽어가는 이의 아름다움.
영원을 남기고 그는 떠난다. 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들을 느끼기 위해 비엔나로, 피렌체로. 그리고 그곳에서 사라질 것들과 사라질 유희를 즐긴다. 그에게서 에비앙은 결국 사라질 하나의 유흥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권태가 잠시 사그라들 때까지.
미미는 영원을 환멸 했다. 결코 영원할 수 없는 똑같은 것들에 깊은 두려움을 느껴 사라짐을 노래했고 사라져 감을 분출했다. 잊히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그는 비디오를, 조화를, 책을 이해하지 못했고 무대 위에서만 자신을 표현했을 뿐이다. 아, 평생토록 믿던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을 때의 절망감이란. "차라리 섹스를 하지 그랬어." 그랬다면 그녀는 계속해서 도망치며 순간을 놓지 못해 천천히 죽어갔으리라.
그녀의 꽃은 사라졌다. 그렇기에 더욱 환하게 피어올랐다. 선홍색으로 물드는 욕조 속 물도 천천히 빠질 것이다. 그제야 그녀는 안심하고 웃을 수 있었다. 사라졌기에.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영원을 남겼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조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조화들로 가득 차리라. 그리고 다시 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을 느끼기 위해 떠나리라.
그런데 참, 그는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데 앞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할까.
그걸 깨닫고 난 후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박제된 나비가 타올랐을 때처럼 발기가 멈추질 않는다. 그는 누군가 자신에게 조용히 다가와 '멀리 떠나왔는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죠?'라고 묻기를 기다리며 다시 먼 곳으로 떠날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영원에 가두길 바라며.
앞으로도 변할 게 없는 당신에게 누군가 다가와 당신을 박제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