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쓴 맛, 그리고 그날의 위로
3월 한국에 다녀오면서 갓김치와 파김치를 가져왔다.
갓김치는 샀지만 맛이 좋았고,
파김치는 시장에서 할머니들이 직접 재배한 쪽파를 사서 만들었다.
비닐하우스 쪽파는 깨끗하고 크기가 컸지만, 노지에서 자란 쪽파는 작고 여려 보였다.
우리는 주저 없이 노지 쪽파를 선택했다. 그쪽이 훨씬 맛이 있기 때문에...
집에 와서 세 자매가 거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한나절을 다듬었다.
어린 시절 큰언니는 둘째 언니보다 작고 여려서 음식도 가려 먹었다.
큰언니는 김치를 입에 넣기 좋게 작게 잘라 놓았는데,
둘째 언니가 모르고 먹으면 큰언니는 짜증을 내곤 했다.
그래서 둘째 언니는 김치를 먹기 전에 늘 "언니, 이거 먹어도 돼?" 하고
물어보는 진 풍경이 펼쳐졌었다.
이런 얘기로 우리는 웃으며 파 다듬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다듬은 파는 둘째 언니가 본인의 비법 양념으로 버무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내가 떠나는 날 잘 포장해 주었다.
비행기에서 국물이 샐까 걱정했지만, 꼼꼼히 싼 비닐은 밴쿠버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파김치와 갓김치는 씁쓸하고 알싸한 맛이 일품이다.
언니가 파김치 양념이 많으니 양파를 썰어 넣으면 양파김치로 먹을 수 있다고 알려줘서
덤으로 양파김치까지 맛있게 먹었다.
특히 언니 시댁에서 가져온 고춧가루로 만든 양념이라 빨갛고,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맛이 났다.
이곳에서는 찾기 힘든 맛이라 오랫동안 아껴 먹었다.
우리가 느끼는 맛은 단맛, 짠맛, 매운맛, 신맛, 쓴맛이 있다.
쓴맛은 처음엔 손이 가지 않지만, 점점 그 맛에 익숙해지고
그 뒤에 따라오는 깊은 감칠맛으로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어린아이보다는 쓴맛을 경험한 어른들이 더 좋아하는 맛이다.
마치 고진감래처럼...
어린 시절, 뜨거운 여름날 강렬한 햇볕 아래 늦게까지 뛰어놀다 집에 돌아와서
방 한구석에 쓰러져 있었다.
머리에 열이 나고 지쳐 밥 먹으라는 소리에도 대답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는데,
엄마가 내 곁에 오셔서 상태를 확인하고 다시 부엌으로 가셨다.
잠시 후 엄마가 들고 온 접시에는 씀바귀 나물이 담겨 있었다.
"더위 먹었구나,!" 하시며 내 입에 넣어주신 씀바귀는 진저리 치도록 쓴맛이었다.
엄마의 엄한 얼굴을 보며 억지로 삼키면 곧 엄마는 죽을 내밀었다.
물조차 마시기 힘들 정도로 지쳤는데도 씀바귀나물을 삼킨 후에는 넘어갔다.
그리고 푹 자고 난 다음 날 아침,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어나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우리는 인생에서 꽃길만 걸을 수 없다.
오히려 더 많은 가시밭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학창 시절 그토록 지겹고 힘들었던 공부가,
우리를 가시밭길로 보내지 않으려던 부모님의 노력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20여 년 전 캐나다에 올 때만 해도 내 인생은 꽃길이라 생각했다.
결혼과 이민, 그리고 밴쿠버.
당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로 꼽히던 밴쿠버로의 이민은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꽃으로 밥을 먹을 순 없었고, 꽃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기 마련이었다.
나는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했다.
나는 내가 만든 길 위에 서 있다.
그 길이 편안하든 돌투성이든 꿋꿋하게 걸어갈 것이다.
오늘도 씁쓸한 열무김치를 먹었다. 한국의 열무김치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쓴맛 뒤에 숨어 있는 깊은 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위로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