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방엔 아버지가 계셨다.
우리 집에는 아버지의 방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서재였지만,
그 방은 근사한 서재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했다.
약간 아늑하고, 먼지가 내려앉은 중고 서점 같은 분위기.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아버지의 방’이라고 불렀다.
그 방에는 오래된 큰 책상과 회전의자,
그리고 아버지가 대학 시절부터 직접 만들어 들고 다니시던 긴 책장이 있었다.
그 책장에는 그 세월만큼이나 오래된 책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책상 서랍을 열면 아버지의 취미인 우표 수집 책, 동전 통, 신문 스크랩 파일, 각종 서류,
그리고 한자가 빼곡한 일기장이 나왔다.
엄마는 우리가 그 방에 들어가는 걸 썩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그 방에는 너무나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서 종종 들어가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한 번은 나와 동갑인 사촌이 이모와 함께 놀러 왔을 때의 일이다.
우리는 그 방에서 숨바꼭질을 하다가 회전의자 놀이를 시작했다.
사촌이 의자에 앉고 내가 돌리는 역할이었다.
너무 신나게 돌리다 보니 오래된 의자가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사촌의 머리가 바닥에 부딪혀서 울음이 터졌고, 곧 어른들이 뛰어오고
난 어쩔 줄 모르고 서있다가 혼이 났었다. 그 놀이는 그렇게 끝이 났다.
시간이 지나고 밖에서 뛰노는 것이 더 좋아질 무렵,
그 방은 더 이상 우리가 찾지 않는 공간이 되었고,
다만 아버지만 드나드시는 조용한 장소로 남았다.
고등학생이 된 어느 날,
나는 그 방에서 책을 찾다가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발견했다.
누렇게 바랜 표지를 가진, 오래전 출간된 그 책을 마주한 순간,
나는 그 방의 진짜 가치를 새삼 깨닫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우표 수집책과 신문 스크랩도 다시 펼쳐 보게 되었고,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그림들도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넉넉지 못한 수입에도 모아두셨던 그림들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그림들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그림은 소정 변관식 선생님의 금강산도였다.
산줄기와 폭포, 정자, 그리고 그 정자를 향해 걸어가는 노인이 그려져 있었다.
어릴 적부터 늘 걸려 있던 그 그림은 우리 세 자매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그림이 다른 그림으로 바뀌었을 때
마치 우리의 추억이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훗날, 미술관에서 다시 그 그림을 마주했을 때 반가움과 아쉬움에 한참 그 앞에 서 있었다.
이제는 너무 멀어진 그림 속에서, 마치 노인이 다시 나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건 유년 시절의 또 한 번의 상실이었다.
아버지는 한 달에 두세 번 책방에 들르시곤 했다.
내 기억 속 아버지는 약주 한 잔 하시고,
한쪽 겨드랑이에 책봉투를 끼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책을 사 오시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나도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서점에 들르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서가 사이를 걸으며 책을 몇 권 골라 한쪽에 기대어 읽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책을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한 번은 아버지와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도 있었다.
반가운 부녀의 그 만남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의 기분 좋은 웃음, 그리고 나의 반가운 탄성...
그 순간만큼은 서로가 정말 많이 닮았다는 걸 느꼈다.
그런 모습을 본 가족들 사이에선
“너는 책방 가는 것까지 아버지를 닮았구나!" 하는 농담도 자주 들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다.
책 취향이 점점 비슷해지면서, 책을 사면 아버지께 보여드리곤 했다.
서로 책을 나누는 일이 작은 기쁨이었고,
같은 책을 두 권 사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나는 아버지의 방을 떠나 있었다.
그 방은 어느새 아버지만의 공간으로 남았고,
시간이 더 흐른 뒤엔 아버지조차 머무르지 못하게 되었고,
우리는 그 방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한국에 도착해 2주 격리를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 4일이라는 시간이 생겼다.
그 짧은 시간에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첫날은 언니들과 함께 했지만, 그 이후 나는 혼자 남아 3일간 정리했다.
오랜만에 다시 본 방은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물건이 쌓여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 몇 년간 서예를 하셨던 덕분에 화선지, 먹, 벼루, 붓들이 방 한가득이었고,
스크랩을 위해 모아놓으신 신문들도 산처럼 쌓여 있었다.
오래된 책들, 수집품, 낡은 모자, 액세서리, 사진들까지… 그 방은 거의 혼돈 그 자체였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때 묻은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나는 아버지가 너무 그리웠고, 책을 꺼내다가 여러 번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곳엔 아버지의 젊은 날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신 뒤, 그리움과 한탄을 담은 일기까지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버리는데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 많은 책과 물건들을 쌓아 둘 수도 없었다.
중고책 수거하시는 분을 수소문해 책을 넘겼고,
종이처럼 부서지던 병풍들은 보존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 결국 모두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시간이 지나, 아버지의 온기를 직접 느낄 수 있는 물건은 거의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몇 권의 일기장과 편지들, 그리고 가슴 깊이 남아 있는 ‘아버지의 방’이다.
그 방에서 읽었던 책들, 보았던 그림들, 그리고 아버지의 손길이 스며 있던 것들—
그것들이 지금도 나를 단단하게 해 주고, 무엇보다 깊은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