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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아파트의 층간 소음의 결말

그 새벽 나는 오해를 신고했다

by 김유인

캐나다에서 경찰에 신고할 날이 내 인생에 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새벽 3시, 층간 소음 때문에 말이다.

밴쿠버로 처음 이주했을 때, 내가 처음 살았던 집은 50년 이상 된 렌트 아파트였다.
오래된 아파트들은 대부분 목조 건물이라, 걸으면 나무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곤 했다.
그런데 바닥이 카펫이라 그랬는지, 층간 소음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옆집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싸우기라도 하면 그 소리가 들리곤 했다.

2년 전, 나는 새로 지은 콘도로 이사했다.
여기서는 6층 이상이면 하이 라이즈(high-rise)라고 부르고,

개인 소유면 콘도, 렌트 전용이면 아파트라고 부른다.
캐나다 전역이 2000년대부터 개발 광풍에 휩싸이면서 고층 콘도와 도심 밀집 개발이 본격화되었고, 공사 트럭이 하루 종일 오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나도 그 흐름에 휩쓸려 지금의 콘도에 입주하게 되었다.

처음 입주했을 때는 창밖 석양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곤 했다.
새 건물이라 깨끗하고 조용했다.

그런데 10월쯤, 윗집에서 밤새 떠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24시간 주민을 위해 일하는 관리인이 있어서 전화로 얘기했지만, 소용없었다.
내가 사는 곳은 인도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인데, 아마 그때 인도 명절이었던 것 같다.
며칠 동안 민원을 넣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때부터 윗집에 대한 미운 감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가끔 발코니에 떨어진 담배꽁초 같은 게 윗집 때문일 거라고 짐작했고,
어쩌다 들리는 생활 소음도 감정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1시쯤 자려고 누웠는데 윗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다음 날 5시 30분에 일어나려면 이제 자야 하는데, 소음은 그치지 않았다.
여자와 남자가 다투는 소리였고, 주로 여자가 고함을 지르고 남자는 낮게 대답하는 식이었다.
잠을 억지로 자려고 하면 또 고함이 들리고, 내 잠은 멀리 요단강을 건너갔다.
그렇게 1시가 지나고, 2시가 지났다.

이제 그만 그치겠지 싶으면 또 소리 지르고, 결국 새벽 3시가 되었다.
참다못한 나는 경찰에 신고하기로 하고 전화를 걸었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간, 경찰에 전화를 거는 것조차 떨렸다.
여기 캐나다는 비상전화번호가 하나다.
불이 났든, 범죄든, 응급 환자든 전부 같은 번호다.
나는 윗집이 몇 시간째 싸우고 있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정확히 7분 뒤, 경찰에게 전화가 왔다.
로비에 도착했으니 내려오라고 했다.
속으로 ‘나를? 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선 경찰에게 반항하면 안 되니까.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내려가는데, 혹시라도 윗집 사람을 만나면 어떡하나 걱정됐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로비에 도착했을 때

다른 엘리베이터에서 윗집 남자로 보이는 사람이 경찰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다시 올라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0분쯤 지나서 경찰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윗집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아직도 소리가 들리냐고 물었다.
나는 “예, 계속 들립니다”라고 대답했다.

곧 다부진 체격의 경찰 세 명이 내가 사는 층으로 내려왔다.
나는 그들과 함께 복도를 돌며 소리 나는 곳을 찾았다.
그리고 드디어 소리의 진원이 드러났다.
그곳은 윗집이 아니었다.
그토록 원망하던 그 집이 아니라,
우리 집과 벽을 맞대고 있지만 평소 존재조차 의식하지 않았던, 그 ‘옆집’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몇 시간 동안, 완전히 엉뚱한 사람을 미워하고 있었던 거다.

경찰은 나에게 집으로 돌아가 있으라고 했고,
나는 집에 와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출근 준비를 했다.

한 시간쯤 뒤에 경찰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남녀 간의 다툼이 있어서 분리 조치했고, 남자는 체포했습니다.
신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안도감과 함께 윗집을 향한 죄책감을 느꼈다.
새벽에 전화받는 것도 놀랄 일이지만,
경찰이 문을 두드리고, ‘경찰입니다, 문 열어주세요’라고 말하고,
집안을 구석구석 수색하고…
그 새벽에 얼마나 놀랐을까.
그 집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내가 신고한 줄 모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위층의 소음으로 당한 피해에 대한 복수를 해버린 건가 싶기도 했다.

그 새벽의 소동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층간 소음보다 더 무서운 건, 오해였다.
내가 짐작으로 쌓은 미움이 얼마나 쉽게 엉뚱한 사람을 다치게 만들 수 있는지를,
그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이미지: Gem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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