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이 이어준 인연
까다로운 캐나다 백인할머니도 Mr. Sunshine은 좋아하셨다.
나는 캐나다 요양원에서 15년째 일하고 있다
이곳은 이민자 나라인 캐나다답게 정말 다양한 나라에서 오신 어르신들이 계신다.
저마다 다른 등급을 받으신 많은 분 들이 우리의 도움을 받고 있다.
어떤 분은 몸이 불편해 휠체어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계시지만
정신은 또렷해 또박또박 말씀도 잘하신다. 또 어떤 분은 몸은 건강해 잘 걸어 다니시지만,
치매로 인해 정신이 별나라에 계셔서 우리의 집중을 요구한다.
그중 한 캐나다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계셨고 정신은 또렷했지만,
관절염 통증으로 늘 짜증이 많으시고 요구하는 게 많아 우리가 모시는데 좀 어려운 분이었다.
MR. Sunshine이 이어준 인연.
그날 아침은 내가 할머니의 아침준비를 도와드리는 날이었다.
잔뜩 긴장한 마음으로 방으로 갔는데 역시나 할머니께서는 짜증을 내셨다.
"밤새 아파서 잠도 못 자고 사람을 불렀는데 아무도 안 왔어."라고...
분명 6시간마다 진통제 드시고 잘 주무셨다고 보고받았는데도 말이다.
"너무 힘드셨겠네요. 좀 있다가 아침 드시고 약 드시면 좋아지실 거예요."
라고 위로하고 화장실로 모시고 갔다.
그런데 갑자기 방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깜짝 놀라 확인해 보니 넷플릭스에서 《미스터 션샤인》이 나오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본인이 보시는 매일 보시는 드라마라고 하셨다.
드라마를 볼 때면 통증도 잊게 된다고 활짝 웃으셨다.
나도 좋아한다고 말하고 우리는 드라마 얘기를 한참 나눴다.
그래서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내 손을 잡으면서 정말로 반가워하셨다.
그 후로 나한텐 꼭 웃어주시고, 나도 할머니 마음을 헤아려 미리미리 챙겨 드리니
나를 좋아해 주셨다.
다른 동료들이 어려워할 때 내가 가서 양해를 구하면 흔쾌히 OK를 해주셨다.
그러다가 나는 다른 병동으로 옮기게 되어서 더 이상 그 할머니를 볼 수 없었다.
서너 달 때쯤 지난 어느 날, 복도에서 우연히 그 할머니를 다시 보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는데, 나를 못 알아보셨다. 슬쩍 《미스터 션샤인》 얘기를 했더니,
내 손을 잡으시고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 아니냐며 반가워하셨다.
내가 아니라고 해도 얼굴이 똑같다고 하며 웃으셔서 곤란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2025년 봄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나도 옛날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푹 빠져 있는데,
그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 요새도 한국 드라마 보세요? " 하고 여쭤 보니 그렇다고 하셨다.
할머니께 《폭싹 속았수다》 영어 제목을 찾아 종이에 적어드리고,
요새 새로 나온 드라마인데 정말 재미있으니 꼭 보시라고 말씀드렸다.
할머닌 정말 기대하는 표정으로 꼭 보시겠다고 했다.
높아지는 한국 위상, 그리고 아쉬움
이 할머니뿐 아니라, 캐나다에 살다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많은 이 들이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는 부러워하는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본다.
이전 세대의 부단한 노력 덕분에 한국이라는 브랜드위상은 점점 높아졌다.
내가 처음 캐나다에 왔던 2000년대 초반에도 많은 사람들이 대장금을 얘기했고,
동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자기네 가전제품은 삼성이나 LG라고 자랑했었다.
그리고 연말세일 때 긴 줄 서있는 사람들이 한국 가전제품을 들고 서 있는 거 보면 자랑스럽다.
그 이후로 한국 이미지는 계속 좋아지고 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면 음식, 드라마, BTS, 화장품 이야기를 한다.
나한테 "언니"라고 하고 "아파요"라는 기본 한국말은 흔히들 한다.
많은 친구들이 한국을 가고 싶어 하고 실제로 갔다 와서 감동하고 또 갈 계획들을 세우기도 하지만, 그중에는 일본과 한국을 함께 방문한 뒤 일본이 더 좋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어
씁쓸한 마음이 든다.
세월호나 이태원참사 그리고 특히 계엄이 벌어졌을 때는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계엄사태 때 나의 대답은 " 걱정하지 마! 한국은 이것 보다 더 어려운 일도 다 헤쳐나갔어!"라고...
결국은 잘 해결됐지만 어렵게 쌓아온 한국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도 낯선 타국에서 드라마 한 편, 그리고 한국가수들로 인해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을 직접 본 순간이 나한테는 정말 소중하다.